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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임진왜란, 명나라 군대, 전시작전권

임진왜란, 명나라 군대, 전시작전권 
(부산일보 / 강명관 / 2010-07-15)


명나라 수군 제독 진린(陳璘)이 조선에 온 것은 선조 31년(1598)이다. 선조실록 31년 6월 26일 조에 선조가 진린을 동작나루에서 전송했다고 나와 있으니, 아마도 6월 말 경에 진린은 서울에 도착하여 선조를 만났고 이내 남해의 전장으로 떠난 것으로 보인다.


타국 군대를 구원병으로 끌어들인 대가

떠날 때 진린은 선조에게 이상한 요구를 한다. “배신들 중 만약 명을 어기는 자가 있으면 모두 군법으로 다스리고 결단코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말에 선조는 분부대로 따르겠다고 한 뒤 신식(申湜)에게 “이 말은 아주 중요한 말이니, 비변사에 알리고 의논해 조처하라”고 말한다. ‘배신’은 천자의 신하의 신하다. 곧 선조는 명나라 천자의 신하고, 선조의 신하는 배신이 된다. 배신 운운하는 말은 조선의 장수들에 대한 지휘권도 진린 자신이 갖겠다는 뜻이다.

다음날인 6월 27일 비변사에서 선조에게 보고를 올린다. 요지는 명나라 군대가 조선 군대와 함께 있기 때문에 전투에 지장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이렇다. 명나라 군대는 필요한 것이 있으면 성화같이 요구하고, 전투의 결정적인 순간에는 자기들 마음대로 한다. 공을 세울 만한 기회가 있으면 조선 군대는 손도 대지 못하게 하고, 만약 일이 잘못되면 책임은 모조리 조선 군대 쪽에 돌린다. 이런 식이다. 비변사의 보고는 이어진다. 진린을 맞이하러 파견되었던 접반사(接伴使) 남복흥의 말에 의하면 진린은 조선 수군을 직접 지휘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는 것이다. 앞의 자신의 명을 따르지 않으면 군법으로 다스리겠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비변사에서는 이럴 경우 통제사 이순신을 비롯한 수군 장수들은 군사 없는 군대를 거느리게 될 것이라 우려하면서 선조에게 진린의 요구를 완곡한 말로 거절하라고 건의하고 있다.

선조는 비변사의 건의를 수용했지만 과연 그가 진린에게 정확하게 거절 의사를 밝혔는지는 의문이다. 이내 곳곳에서 진린이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명나라 군대는 공을 탐하는 데는 유능했지만 전투에는 극히 무능하였다. 거기에 더해 왜군과 내통까지 하였다. 한데, 진린이 거느린 명나라 수군의 가장 큰 해악은 조선 수군의 전쟁 수행 의지를 번번이 좌절시킨 데 있었다. 선조실록 31년 9월 8일 조를 보자. 선조는 이순신이 거느린 조선 수군의 공격을 진린이 허락하지 않아 왜군을 수륙 양면으로 협공하는 계획이 허사가 되었노라고 한탄한다. 이틀 뒤인 9월 10일 조 실록에는 이순신이 급히 올린 보고서가 요약되어 있다.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진 도독(陳都督, 陳璘)이 신을 불러 ‘육군은 유 제독(劉提督, 劉綎(유정))이 모두 지휘하고, 수군은 내가 마땅히 모두 지휘해야 할 것인데, 지금 듣자니 유 제독이 수군을 지휘하려 한다고 합니다. 맞습니까?’ 하기에 신은 모른다고 대답했습니다. 신이 수군을 정돈해 바다로 내려가 기회를 타서 왜적을 섬멸하려 해도, 번번이 도독에게 제지를 당하니, 고민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우월한 조선 수군이 왜군을 섬멸하려 해도, 번번이 명나라 군대에 제지를 당한다는 것이다.

드라마 혹은 소설, 혹은 영화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 명나라 군대의 비협조로 일본은 조선의 인재와 문화재, 기술을 약탈하여 자신들의 나라로 무사히 돌아가는 데 성공했다. 반면 일본의 침략 전쟁으로 조선은 인명과 재화는 물론 당시까지 축적했던 문화적 역량의 대부분을 상실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전범을 다스려 분을 푸는 데도 실패했으니, 제 힘으로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타국 군대를 구원병으로 끌어들인 대가를 톡톡히 치렀던 것이다.


역사적 경험에서 배워야 할 것들

월드컵 열기에 온 국민이 흥분하던 중 이명박 대통령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만나 전시작전통제권의 환수를 연기하는 데 합의했다는 발표가 있었다. 6·25전쟁이 난 지 60년이 지났다. 북한은 세계 최빈국이 되어 끼니를 걱정하는 상황이고, 대한민국은 언필칭 국민소득 2만 달러라는 부국이 되었다. 그동안 자주국방을 외치면서 퍼부어 온 국방예산은 또 얼마인가. 무엇이 두려워 전시작전통제권을 제발 좀 맡아 달라고 미국에 애걸하는지 알 수가 없다. 임진왜란을 수도 없이 되뇌면서 그 역사적 경험에서 배우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순신과 거북선, 한산대첩만 알면 그만인 것인가.

 

강명관 / 부산대 교수, 한문학


출처 : http://news20.busan.com/news/newsController.jsp?subSectionId=1010110000&newsId=20100705000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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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2&uid=1829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