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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양들의 침묵(The silence of the lambs)

양들의 침묵(The silence of the lambs)
(서프라이즈 / 0042625 / 2010-07-17)


대한민국 지식인 사회가 비판 기능을 잃어 버렸다. 노무현 시대에는 그렇게도 극성스럽게 진보의 기치를 들고 정부의 정책들과 제도권의 허구성을 까부수던 입들이 사라졌다.

노무현을 향하여 “까분다”고 하던 그 입들은 다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가?
밥그릇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그들을 입을 봉해 버렸는가?

밥상을 차려주어야만 떠들던 입들이 밥상을 물리려 하자 일제히 잠잠해졌다.

박통 시절 해방신학이니 민중신학이니 하면서 기독교 양심 세력들이 라틴 아메리카의 신학들의 이념을 빌어 민주주의 운동을 하던 때가 있었다. 해방신학은 미국의 200년 남미 수탈사를 통하여 민중의 피와 뼈가 말라 비틀어진 끝에 생겨난 라틴 아메리카의 신학이었다. 뒤늦게나마 미국이 전 세계 악의 축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한국의 진보 기독교 세력들이 이를 본받아 하나의 독자적인 신학을 만들고자 했는데 이것이 바로 소위 민중신학이었다.

그 당시 거의 모든 보수교단의 목회자들은 그 해방신학자들을 향하여 사탄의 자식들이라고 나발을 불었다. 기독교는 개인의 구원이 최종목표이지 사회의 구원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영혼의 구원이 아닌 교리를 외치는 자들은 싸그리 이단이고 어둠의 자식들이었다. 하나님의 권세로 책정된 국가의 권력자들에게 항거하는 것은 공중권세 잡은 사탄의 짓거리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그 당시 민중신학자들은, 이를테면 기독교 사회의 전라도 사람들이었다. 박통 시절 어딜 가서 내가 전라도 사람이라고 마음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던가? (이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문소리가 주연한 영화 “사랑해 말순씨”를 보기 바란다. 그 영화에서 셋방 사는 간호사 은숙 씨의 증언을 통해서 박통 당시 전라도 사람들의 비애가 생생하게 그려진다.)

세월이 변하자 입들도 변해갔다. 하 수상하던 군부독재의 시절을 지나서 서울의 봄이 찾아왔다. 민중의 고통을 대변코자 했던 해방신학자들을 향하여 사탄의 자식들이라고 비난하던 기독교 보수세력들이 사회를 향하여 정권을 향하여 일제히 입을 벌리기 시작했다. 욕정에 몸이 단 창녀의 음부처럼…

박통 시절 사회참여를 커다란 죄악으로 비난하던 기독교 보수꼴통 좀비세력들이 어떻게 하면 정부의 실세와 선이 닿을 수 없을까? 안달이 나서 견딜 수가 없다는 욕정을 드러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바로 그 기독교 보수 세력들이 나중에 가서 이명박 정권을 탄생시키는 주역들이 된다.

이러한 기독교집단의 생리와 양태는 대한민국 지식인 사회의 꼬라지를 그대로 반영한다. 대한민국사회에서 지식인들은 늘 힘센 놈의 똘마니 노릇만 해왔었다. 똘마니 역할을 하는 데만 익숙한 지식인들은 늘 힘센 놈들의 기에 짓눌려 눈치만 보면서 살아왔었다. 힘센 놈들의 그림자만 슬쩍 비치어도 한가한 농촌의 오후 마당을 지나치는 매 그림자만 봐도 꼬꼬댁거리는 닭대가리들처럼 알아서 꼬리를 감추는 대한민국 지식인들.

박통 시절의 용어를 빌리자면 대한민국 지식사회가 해바라기 지식인들의 그룹이 아니었던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밥그릇을 위하여 학문을 하고 표절을 밥 먹듯이 하면서도 도대체 낯뜨거워 할 줄 모르는 사람들, 밥그릇을 위하여 인맥을 결성하여 내 사람 아닌 놈들은 동그라미 밖으로 모조리 잔인하게 쫒아 보내는 데 이력이 난 사람들, 아예 자기네 동그라미 속으로는 발붙일 수 없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던 사람들, 밥그릇을 위하여 어떤 이념적 가치나 역사적 사실 또는 학문적 진리까지도 손쉽게 바꾸어 버릴 수 있는 양아치들, 재야에 있을 때는 민주주의니 뭐니 하면서 외마디를 지르다가도 정부권력에 일단 들어가기만 하면 언제 내가 그런 적 있냐고 손쉽게 낯을 바꾸는 사람들, 그래서 아예 정부비판을 좀 한다는 지식인들을 보면 저놈이 정권의 하수인이 되고 싶어 안달이 난 모양이구나 하는 식의 고정관념을 심어주던 사람들, 바로 그들이 군부독재 시절을 거치면서 대한민국 지식사회를 오랫동안 구축하고 있는 인물들이었다.

대한민국에는 도대체 양아치와 지식인을 구별할 수 있는 기준 자체가 부재하다. 지식인 사회가 정부권력과 제도권에 대한 비판 기능을 상실한 채 밥그릇싸움에만 전념하면서 힘센 자들의 눈치만 살피고 있다면 그게 양아치지 달리 뭐라고 달리 할 말이 없지 않은가?

하지만 대한민국 지식사회가 그래 왔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에게 꿈처럼 다가왔던 남은 자들이 있었다. 문익환이 있었고, 김민기가 있었고, 지금은 변절의 시비를 일으키고 있는 김지하와 황석영이 있었고, 하늘의 별처럼 소중한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양심세력들이 있었다. 꿈처럼 왔다가 꿈처럼 사라진 노무현이 있었다.

지식인의 침묵에 관한 한 대한민국 문화권을 들여다보면 탄식은 더 깊어진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민족적 상상력의 원동력이 되던 통일의 꿈이 사라졌다. 기댈 언덕이 종적을 감추자 민족의 혼 또한 흔적을 감추었다. 상상력의 원천을 잃어 버린 예술가들에게 남은 것은 표절밖에 없다.

인간의 모든 가치가 경제적 실존 이코노미쿠스로 환원되자 그렇지 않아도 관념의 유희에만 빠져 있던 문학가들이나 외국문화의 안테나 역할에만 재미를 붙이고 있던 미술가들과 음악가들은 설 땅을 아예 잃어 버렸다. 좌우 이념 논쟁을 통해 새로운 이념적 지평을 지향해 나가야 할 비평가들조차 이명박의 실용주의와 이명박의 앞잡이 유인촌의 장난질에 할 말을 잃어 버리고 말았다.

가히 대한민국 문화의 암흑기라고 할만 하다. 김대중과 노무현의 시대에 꿈틀대던 문화적 혁명의 싹은 여지없이 짓밟히고 그와 더불어 정치적 혁명의 길도 요원해지고 말았다.

지식인들의 침묵이 대한민국의 전 문화권을 휩쓸고 있는 상황이다. 진실은 인터넷에서만 살아 있고, 민족의 혼은 인터넷의 사이버 세상 속에서만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국민을 부하직원쯤으로 여기는 CEO가 다스리는 나라에서 인간의 모든 가치는 바람에 날리는 한 줌의 부질 없는 재가 되고 말았다. 이념의 깃발은 땅에 거꾸로 처박히고 말았다. 살고 싶은, 살아남고 싶은 생존의 욕구 앞에 지식인들은 팬을 꺾고 문학가와 예술인들은 상상력의 원천을 상실한 채 침묵에 빠져들었다.

이명박 정권하의 지식인들 그들은 전형적인 대한민국 지식인들의 표상이다. 양들의 침묵만이 대한민국 지식인 사회를 감싸고 돌 뿐이다. 하지만 양아치들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라 할지언정 지식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고작 은폐된 침묵뿐인가?


※ 슬픈 모노드라마/ 글 / 낭송(宵火) 고은영 - http://cafe.joins.com/cafe/CafeFolderList.asp?cid=secret088&list_id=839479&folder_no=1&list_page=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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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에는 함께 생각해보고싶은 내용을 참고삼아 인용한 부분이 있습니다. ('언론, 학문' 활동의 자유는 헌법 21조와 22조로 보장되고 있으며, '언론, 학문, 토론' 등 공익적 목적에 적합한 공연과 자료활용은 저작권법상으로도 보장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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