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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마음속에 부팅된 비수 한 자루 - <운명이다>를 읽고

마음속에 부팅된 비수 한 자루 - <운명이다>를 읽고
(서프라이즈 / jazznut / 2010-06-29)


스무 살 무렵 어느 날이었다. 친구의 입대 환송을 핑계로 전날 마신 술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하지만 새벽에 일어나서 며칠 전 읽다 만 책 한 권을 억지로 펼쳤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그날 오후엔 이 책을 읽고 학습 소모임을 가지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안 읽고 가면 우리 ‘써클’을 지도하던 선배로부터 호되게 야단을 맞을 게 뻔한 상황. 의무감으로 책장을 넘겼다. 동이 트고도 한참이 지나 아침 첫 수업에 늦지 않으려면 곧바로 나가야 하는 그 절박한 시간에 나는 눈물과 콧물이 범벅되어 책상 위에 그냥 엎드려 있었다. 나지막이 꺼으꺼으 소리를 내며 울부짖었다. 안락한 대학 생활에 자족하고 있던 나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고, 얄밉고, 무기력했으며, 죄스러웠다. 전두환의 서슬 퍼런 권력이 날뛰던 1985년 어느 초여름 아침이었다.

2010년 6월 하순. 다시 초여름을 맞이하는 이때 <운명이다>를 읽었다. 몇 군 데서 눈시울이 붉어지긴 했으나 끝내 눈물이 흐르지는 않았다. 책을 덮은 뒤 곧장 글을 쓰려 했으나 복잡한 감정이 다스려지지 않아서 무슨 말로 시작을 해야 할지 몰랐다. 시간을 두고 내 감정을 더 정량 분석해야만 겨우 실마리 같은 단어 몇 개라도 추출이 될 듯 아득했다. 한참 동안 갈피를 잡지 못하다가 불현듯 수십 년 전 전태일 평전을 읽었던 그날 아침의 기억이 떠올랐다.

전태일은 조영래 변호사가 집필한 ‘평전’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졌고, 노무현은 그의 정치적 분신이라 할 유시민의 손을 거쳐 ‘자서전’이라는 형식으로 우리에게 다시 다가왔다. 한 사람은 청계천에서 밑바닥 삶을 살면서 노동하던 재단사였다. 다른 한 사람은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변호사, 국회의원, 장관을 거쳐 한 나라의 대통령을 지낸 고위직 인사였다. 한 사람은 동료 여직공들이 열악한 작업 환경 속에서 피를 토하며 스러져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근로기준법’이 적힌 법전을 가슴에 품은 채 자신의 몸을 불살랐다. 다른 한 사람은 전직 대통령으로서 부정직한 권력으로부터 민주화 세력을 보호하고, 자신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열 줄 남짓한 유서를 남기고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을 감행했다.

노동자와 전직 대통령. 이력으로 따지자면 도저히 겹쳐질 수 없는 두 사람의 삶이 나에게는 이상하리만치 하나로 포개진다. 나만의 환영일지 모른다. 허나 <운명이다>의 중반부를 주목해 보면 내 환영이 그렇게 주관적인 것만은 아니지 싶다. 노무현은 1946년생, 전태일은 1948년생이었다. 노무현의 생물학적인 연령을 감안하여 굳이 환산하자면 그는 66학번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의 정치적 각성을 기준으로 보면 책에서도 언급되었듯이 82학번이다. 바로 그 시기에 학생운동 관련자와의 만남을 통해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했고, 못 본 척 숨겨 두었던 자신의 양심에 귀 기울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그로 하여금 적극적으로 정치 일선에 뛰어들게 만든 것은 노동운동의 각박한 현실을 체감하고 직시하면서부터였다.

‘산재사건의 증인으로 법정에 나온 노동자가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일이 있었다. 너무 시끄러운 작업장에서 일한 탓에 난청이 된 것이다. 자신도 산업재해 피해자이면서 그것을 인식하지도 못한 채 다른 사람의 산재사건 증인으로 나온 노동자, 산재사건 재판을 하면서 산재로 난청이 된 증인이 말귀를 알아듣지 못한다고 짜증을 내는 판사와 변호사, 모두가 부조리극에 나온 배우 같았다. 나도 가해자의 한 사람인 것 같아서 참담한 기분이었다.’

그렇다. 전태일과 노무현에게서 발견되는 공통된 지점이 바로 ‘타인의 고통을 나의 고통과 다름 없이 인식하는 성품’이다. 물론 평범한 사람들도 이러한 능력은 거의 모두 가지고 있다. 다만 두 사람이 남다른 점은 고통을 인식한 그 마음을 토대로 삼아 현실을 바꾸려고 가열차게 투쟁하고, 실천했다는 데 있다. 노무현이 즐겨 불렀던 노래를 전태일도 미리 알았더라면 아마 목청 돋워 함께 소리쳤을 것 같다.

사람 사는 세상이 돌아와 너와 나의 어깨동무 자유로울 때 우리의 다리 저절로 덩실 해방의 거리로 달려가누나.

그랬구나. ‘바보회’를 만들어서 활동했던 전태일과 ‘바보’ 노무현. 두 바보들이 꿈꾼 나라가 바로 ‘사람 사는 세상’이었다. 당시 김영삼 총재가 노무현을 정치 무대로 영입했을 때 그는 ‘개인적으로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소박하게 판단했다.’고 적었다. “국회의원이 되면 노동자들을 돕는 데 유리할 것이다.”

한 나라의 국정 운영을 책임지는 최고 통수권자는 노동운동 한 분야만을 고려해서도 안 되고, 현실적으로 그렇게 할 수도 없다. 외교와 국방, 남북관계, 경제 분야와 민생, 치안을 두루 살펴야 한다. 하지만 그 모든 영역을 관통하는 중심적 사고는 ‘사람 사는 세상’이다. 해방 이후 우리 사회에 독소처럼 만연했던 모든 부정의와의 결별 선언과 싸움이 필요했으며, 바보 노무현은 최선을 다했다. 그는 자신의 잘못을 과대 포장하여 둘러대지 않았고, 깨끗이 인정했다. 그 토대 위에 다음 지도자가 더욱 진보적 자세로 풀어가기를 바랐다. 정치 영역의 어느 분야에서든 사람의 값어치를 높이 두는 데에 최우선 가치를 부여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국의 노동운동은 전태일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해도 무리가 없다. 정확한 통계는 기억나지 않지만 노동쟁의 건수와 노조 설립 상황이 급진전된 것도 전태일의 분신 항거 이후부터였다. 종교계를 중심으로 도시산업선교회가 만들어졌다. ‘똑똑한 대학생 친구 하나만 있었으면 너무 좋겠다.’고 고백했던 고 전태일. 뜻을 품은 많은 대학생들이 늦게나마 고 전태일의 친구가 되고자 자신의 기득권을 버리고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조금이라도 양식이 있고, 미래를 전망할 줄 아는 보수 정치가들이라면 노무현의 죽음이 자신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얼마나 위협적인 상황인지 알아채야 한다. ‘바보회’ 회장 전태일의 정신이 수십 년 세월을 거치면서 수많은 노동운동가로 세포 분열했듯이, ‘바보’ 노무현의 화신은 그의 정신을 따르려는 양심적인 정치가들과 깨어 있는 시민들로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면서 그 수가 노도와 같이 불어날 것이다.

두고 보라. 이런 명백한 사실을 부인하고, 검찰을 비롯한 사정 기관을 앞세워 알량한 법조문과 규정집 뒤에 숨어서, 또는 희대의 사기극과 꼼수를 피우면서 그대들만의 이익을 악착같이 고수하려 할 때 어떤 참극이 빚어질지 당신들은 도저히 알 수 없을 것이다. 어차피 당신들은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려는 꿈조차 없던 데다가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어떻게 발전해 나갈지 예측할 상상력도 턱 없이 부족하기에 나는 그대들에게 아무런 기대를 갖지 않는다.

<운명이다>에 담긴 기록은 1980년대 초반부터 30년간의 한국 현대 정치사를 배경으로 아우르고 있다. 초라하고 평범한 내 개인적 삶도 같은 배경을 깔고 전개되었다. 노무현이 바보처럼 굴면서 온몸을 던져 갈구하고, 도전하고, 아파하고, 승리하고, 좌절하고, 세인들로부터 뭇매를 맞고, 평화롭게 은퇴하고, 새로운 민주주의를 모색하고 있을 때 나는 도대체 무엇을 했을까? 30년이라는 역사적 배경을 노무현과 함께 사용하는 호사를 누렸으면서도 과연 나는 사람 사는 세상을 실현하기 위해 그 어떤 소박한 이타적 행동이라도 실천에 옮겼는가?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전태일의 삶에 동감하면서 눈물만 흘렸던 것처럼, 노무현이 외롭고 아파하면서도 무엇인가 시도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을 때 나는 그냥 바라만 보고, 가끔씩 시류에 묻어 그를 힐난하기도 했으며, 때로는 정말 그가 잘 되기만을 바라면서 안타까워했던 게 고작이었다. 나로 인해 내 주변에서 뭐 하나 의미 있게 바뀐 게 없었다. 옳은 것을 옳다고 옹호하거나 주장하는데 몹시 인색했다. 실천해보기 전에 회의부터 했다. 모든 정치 현실에 괄호 치기를 하면서 마냥 유보적 자세만 취했다. 인정한다. 나는 CPU가 전혀 돌지 않음에도 끊임없이 자판만 두드리는 엉터리 고물 386이었다. 그 이유 때문이리라. 스무 살 초반에 전태일 평전을 읽고 눈물범벅이 되었던 내가 <운명이다>의 마지막 장을 넘긴 뒤 가슴이 아득하여 아무 판단도 즉각 내릴 수 없었던 것은. 내 경험이 완숙해졌고, 내 정신이 균형을 잘 잡아서가 아니라 무심하게 하루하루를 견뎌내기만 했던 스스로가 너무 민망했고, 더 나아가 혐오감이 들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운명이다>는 한 386의 가슴에 녹슨 비수 한 자루를 ‘부팅’시켜 놓았다. 나는 지금 창궐하고 있는 보수 반동 세력보다 점잖게 보일 생각이 없다. 억척스레 싸우고 싶다. 그들은 눈앞의 이익만을 중심으로 사고하기 때문에 인간에 대한 유대감과 민주주의의 소중함에 대한 인식이 치명적으로 결여되어 있다. 그들은 스스로 역사의 방향을 깨달을 수 있는 자질도 없으며, 부패와 단절하거나 자정할 능력도 없다. 민주 세력의 명징하고 단호한 응징만이 저들을 역사의 무대 뒤편으로 사라지게 만들 것이다. 노무현은 온몸을 던져 그 사실을 입증했다. 힘이 부족하여 당했으되 결코 반칙을 하지 않았다. 나머지 몫은 살아남은 자들의 것이다. 저들과 두려움 없이 맞서야 한다. 노무현이 내 마음속에 띄워 준 소중한 비수 한 자루를 내려놓을 의사가 당분간 전혀 없다. 그의 자서전을 올바로 독해했다면 모름지기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분들이 부지기수일 것이다. 그분들과 함께 힘과 지혜와 돈을 모을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할수록 저들의 몰락은 …… 운명이다.

 

jazzn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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