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짝논평] 전교조와 빨갱이, 그리고 진보
2010.11.03.수요일
필독
1.
지난 29일, 충남교육청은 민주노동당을 후원한 교사 2명에 대해 해임과 정직 3개월의 처분을 내렸다. 충남 뿐 아니라 31일까지 부산, 대구, 대전, 울산, 충북, 경북, 경남, 제주 등 아홉 개 시도 교육청이 30여명의 교사에게 해임과 정직 처분을 내렸다.
나는 정치적 권리를 타고난 자유시민이 왜 합법적인 정당을 후원하면 안 되는지 잘 모르겠다. 교과부와 교육행정기관들이 어떻게 낚시바늘을 교사들의 코에 걸고 귀에 걸었는지, 그 법리적인 비결도 잘 모르겠다. 전교조는 빨갱이고 민노당도 빨갱이니까 필시 이 불온한 시료들이 화학반응을 일으켜 반국가적인 빨갱이짓을 융합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마찬가지로, 왜 시국선언을 한 교사들이 고유한 정치적 권리를 행사했다는 이유만으로 밥줄이 끊겨야 하는지도 모르겠으며, 학생들에게 일제고사를 거부할 권리가 있음을 가르친 것이 왜 <교육>이 아니라 <범행>이 되는지도 이해하지 못하겠다.
전교조로 대표되는 반골 교사들이 중징계를 받는 동안 성추행을 저지른 교사와 교장은 1개월 정직 따위의 경징계 처분을 받는 쾌거를 이뤄냈다. 성교육이 이념교육보다 중요하다고 믿는 것이 분명하다. 나도 이분들의 뜻에 십분 공감한다. 다만 성교육이 성'과외'가 아니고, 시민의 고유한 자유와 권리를 행함이 정치적 목적을 가진 세뇌로 규정되지 않는 한에서 말이다.
2.
전교조=빨갱이라는 등식은 20세기에 성립되어 아직까지도 그 생명력을 잃지 않고 있다. 아니 잃지 않기는커녕 마지막 남은 에너지를 하얗게 불태우려는듯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일례로 수십 명의 교사들이 상식 이상의 불이익을 받기까지 교과부는 "법원 판결 전이라도 징계를 강행한다"며 각 시도교육청을 압박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간혹 주체사상에 물든 전교조 교사라도 적발되면 이 등식은 더욱 힘을 얻어 미래를 위해 재충전된다. 전교조 교사의 평균적인 질이 비전교조 교사의 그것보다 훨씬 높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머리로는 일반화의 오류를 감지하지만 습관은 이성보다 훨씬 강력한 행동인자다.
나는 세 분의 전교조 교사를 경험했다.
한 분은 중학교 2학년 때 담이이셨던 수학선생님이다. 이분은 수업시간 시작을 알리는 차렷, 경례를 없앴다. 교실은 군대가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대신 반장이 그냥 "안녕하세요", 하고 수업을 시작했는데 우린 이게 무척이나 어색했다. 이상하고 쪽팔렸다. 다른 반 아이들은 국민학교 1학년때부터 경례하던대로 쭉 하는데 왜 우리만 튀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엄정한 절차가 식민지시절에 강요된 군국주의의 잔재라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너그럽고 참을성이 많은 분이었다. 웬만해선 학생들을 때리는 법이 없었다. 딱 한 번 급우의 엉덩이를 교편으로 두 대 때린 적이 있었다. 급우는 그분에게 반말을 했었다. 상대가 너그러우면 우습게 보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하나씩은 있다.
이분은 또 스승의 날 선물을 받지 않으셨다. 받지 않겠다고 몇 번이나 강저했지만, 스승의 날 교탁 위에는 선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현금봉투가 꽂혀있는 것들도 있었다. 선생님은 선물을 모두 돌려보냈다. 그 결과 급우 모두가 평등해졌다. 선생님은 두 학기가 끝날 때까지 우리 반의 모든 학생들을 평등하게 대했다.
다른 한 분은 역시 중학교 시절의 사회선생님. 이분은 자식걱정에 사무치는 학부모들에게 준엄한 경고를 받아야했다. 어느 날 학생들이 선생님께 노래 한 곡 불러달라고 바람을 넣었다. 그분은 아침이슬을 부르셨다. 배경설명도 없었고, 노래를 가르치지도 않았다. 다만 불렀을 뿐. 그걸로도 빨갱이가 되기에는 충분했다.
마지막으로 고등학교 때 윤리선생님. 윤리라기보다는 철학을 가르친 그분을 학생들도 공공연히 빨갱이라고 불렀다. 빨갱이라고 불릴 어떤 발언도 하지 않았음에도.
나도 급우들도 이분들을 어색해했다. 살갗에 금속이 닿은 것같은 이질감. 뭔가 거북한데, 그게 뭔지 알 수 없었다. 이질감은, 선생님들의 부당함이 아니라 내 몸에 체득된 관습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그 권위적인 국민교육헌장의 당위성은 논리가 아니라 반복적 체험에서 성립된다. 촌지과 체벌은 잘못되었지만 당연하다. 그렇게 습관이 들었기 때문이다.
3.
대한민국에서, 보수는 습관이다. 이념이 아니라 질긴 관성이다. 기득권에 속한 계층에게는 지속적 소유를, 그 밖에 있는 사람에게는 학습된 굴종을 의미한다. 보수는 이념이 아니라 욕망이다. 나만 잘살면 되는 이기주의가 모두가 잘살자는 공리주의를 제압한다.
움베르토 에코는 "파시즘은 이념이 아니라 이런저런 요소들이 비논리적으로 조합된 혼합물"이라고 말했다. 박정희찬양과 민족주의는 논리적으로는 교배가 불가능한 조합이다. 반공이 저들의 마지막 보루인 것은 나머지 체계가 모래성이기 때문이다. 이건 이념이 아니다. 그래서 강력하다.
진보는 이념이라서, 기존의 관성을 역행해야 한다. 모든 불리함을 감수해야한다. 우리나라의 진보는 자유와 인권이 말살된 황무지에서 태어나 지금껏 살아남았다. 어쩌면 진보는 생존해있는 것 자체가 이미 승리다. 승리를 확장시키는 일이 고되고 지루하지만, 원래 이렇게 힘든 거다. 원래 느린 거다. 그리 보이지 않아도, 우리는 이기고 있다. 조금씩, 천천히.
P.S. 교육이 뭔지도 모르거나 알면서 모르는 척 하는 쉽새들에게 하극상적 불이익을 받은 교사분들께 삼가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아오 빡쳐 씨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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