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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교화될 수 없는 집단 - 경상도 바로보기 [2]

교화될 수 없는 집단 - 경상도 바로보기 [2]
경상도 사람들이 마음을 열면… 바로 당신입니다

(서프라이즈 / 독고탁 / 2010-02-05)


앞 편의 글( ☞ 1편 보러가기 )에서 경상도를 신랄하게 비판한 탓에 못마땅하게 생각하시는 몇몇 분들이 까칠한 댓글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서프에 즐겨 접속하시는 분들은 알바 아닌 담에야 심정적으로 공감해 주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분들은 이미 알에서 깨어나신 분들이고 조각난 껍질을 바라보면 같은 생각을 가지시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제가 영남인이 아니었다면 이런 글을 쓰기 어려웠을 겁니다. 지역 싸움만 부추기는 꼴이 되었을 테니 말이지요. 제가 어릴 때 동네 아이들과 싸우면 잘못이 있든 없든 늘 저만 직싸게 패시던 어머님이 못내 서운했는데 그 마음을 이해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더군요. 모두가 그런 마음이면 갈등도 줄어들고 치유도 빠르겠지요.

이글을 보시는 영남 분들이 계시면 함께 노력하십시다. ‘씨바, 우리가 남 되자’ 운동부터 시작해야 그나마 일말의 희망이라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댓글을 주신 어떤 분들께서는 'YS의 3당 합당'을 말씀하십니다. 그로부터 영남 민주세력은 초토화되었다는 말씀이시겠지요. 틀린 말 아닙니다. YS는 영남민주세력을 통째로 팔아먹은 위인입니다. 하지만, 모든 원인을 YS에 두기보다는 ‘YS 현상’ 또한 ‘단순무식의 범주 안에 있는 현상의 하나’라는 것이 본질일 테지요.


단순무식의 산 증인 - YS

YS가, (한때 우리가 잠시 속았듯이), ‘민주적 사고와 역사의식을 소유한 인물’이었다면 지금처럼 돌연변이 같은 모습으로 끊임없는 삽질을 반복할 수가 없습니다. 자동차 줄이기 좀체 힘든 속성처럼 민주와 평화의 옷에 익숙한 사람은 절대 거꾸로 돌아갈 수 없는 법입니다. 쉽사리 그렇게 될 수 있는 사람들은 그것이 허상이었거나 자신의 목적을 위해 거짓의 탈을 썼던 것이지요.

그런 부류가 YS이고, 김문수가 그렇고, 이재오, 오세훈, 이명박, 심재철이 그렇습니다. 이들이 민주를 외쳤다는 말은 쓰레기 더미에서 장미꽃이 피었다는 말처럼 황당한 개그입니다. 그들이 했다는 학생운동은 분명 ‘그것이 왠지 폼 나 보였기 때문’이지 그들 머리 속에 민주의식이 들어서가 아니었을 겁니다. 그래서 어쩌면 ‘변절’이라는 말조차 그들에겐 과분한 단어이지요. 잠시 탈을 빌려 쓴 그들은 변절이랄 것도 없이 본질이 그랬으니까요.

YS의 이후 행보를 보면서도, 민주지도자 시절의 투쟁과 단식 그리고 독재와 맞서 싸웠던 배짱을 이야기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당시의 시각으로 보면 민주화 투쟁으로 보였습니다. 민주지도자로 보였던 것도 맞구요. 그러나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그는 허물 벗은 알몸을 우리에게 보여주었고 그 추한 모습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끄러운 줄도 모릅니다. 왜? 단순무식하니까.

하나회 척결, 금융실명제와 같은 실적이 약간의 체면치레가 되긴 했지만, YS는 자신이 대통령 되려는 목적 하나 때문에 민주를 팔아먹고, 개념 없는 쓰레기들과 호가호위하다 결국 말년에 환란을 초래해 국가를 파탄지경에 몰아넣고서도 자신의 잘못을 전혀 깨닫지 못하는 비루한 전직 대통령일 뿐입니다.

만약 그가 호언장담했듯이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 굴에 들어간 것이 맞다면 지금 쥐새끼가 판치는 세상이 오지 않았어야 하는 거고 더구나 쥐새끼를 옹호하지는 말아야 하는 거지요. 그는 호랑이를 잡겠다며 들어가서는 스스로 여우로 전락하고 들쥐떼들과 오랜 동거 끝에 쥐새끼를 낳았을 뿐입니다.

YS 그가 이 세상과 작별을 고할 즈음, ‘아~ 내가 참말로 잘 몬해따… 모든 민주 동지, 후배 여러분들에게 용서를 구한다’라는 참회의 말이 그의 입에서 나올 수 있을까요. 기대난망이긴 하지만, 저는 그가 어느 순간 스스로 깨쳐서 진심으로 속죄하고 조금이나마 가벼워진 마음으로 다음 세상으로 가시길 소망해 봅니다.

분명한 사실 하나는, 어떤 훌륭한 인품이 나서서 예의를 갖추고 미려한 언어나 설득력 있는 글로 그에게 참회를 구하는 조언을 한다 해도, YS 그는 절대로 듣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화를 낼 것입니다. 왜? 자신의 모자란 부분을 단도직입적으로 거론하는 것이 아무 이유없이 싫으니까. 그게 단순무식한 자의 오만입니다.

따라서 차라리, 그가 어느 날 어디에선가 그의 가장 아픈 곳을 찌르는 글을 발견하고, 그 스스로 조용히 그의 과거를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지며 스스로 고통의 홍역을 겪은 후, 거듭 깨어나기를 기대하는 것이 더 가능성이 높을지도 모릅니다.

본의아니게 YS가 모델이 되긴 했습니다만, 바로 이러한 경상도 사람들의 내면과 속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지금 이후 말씀드릴 내용입니다.


무대뽀는 절대 논리적으로 설득되지 않는다

왜? 무대뽀니까. 고집과 무대뽀는 다릅니다. 고집이든 아집이든 그것은 논리적인 설명으로 설득될 수 있는 여지가 어느 정도 존재합니다. 그러나 무대뽀는 논리적으로 설득되지 않습니다. 아니 논리적으로 설득되지 않는 것을 ‘무대뽀’라고 부른다는 말이 적절한 표현일 것입니다.

심심풀이 삼아 잠시 ‘무대뽀’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았습니다.

‘무대뽀’의 어원은 일본어 ‘無鐵砲’로 ‘앞뒤 생각 없이 행동하는 모양’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鐵砲(철포, 일본식 발음은 ‘뎃뽀’)는 일본말로 소총을 뜻한다. 그러므로 無鐵砲란 흔히 하는 말로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이 총도 안 가지고 간다”라는 뜻이다.

잠시, 이번의 글에서 제가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아니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담배를 피운다고 모두 폐암에 걸리는 것이 아님에도 ‘담배를 피우면 반드시 폐암에 걸린다’는 식으로 글을 쓰는 것처럼, 경상도 분들이라고 모두 형편무인지경인 분들이 아닐 터인데 그렇게 전제하고 글을 쓰고 있는 점 이해 바랍니다.

무대뽀, 즉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이 총도 안 가지고 나가는 것’이 건망증에 걸린 어느 군인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대책이 없다는 거죠. 황당한 거죠. 무지한 거고, 무모한 겁니다. ‘앞뒤 생각 없이 행동하는 것’이니 기승전결이 온전할 리가 없습니다. ‘논리 없음’입니다.

경상도 군인이 총도 없이 달려나가는 과정을 상상해 보면 이렇지 싶습니다.

‘뭐시라꼬~ 느 덜 방금 뭐라켓노~ 일로 온나~ 직이삘끼다~ 안오나? 조타 내가 갈끼다~’

라며, 맨손으로 팔 걷고 주먹 쳐들고 마구 달려가는 그 모습입니다. 그게 무대뽀입니다. 그러면 총 맞아 죽기 딱 십상이지만, 죽는 줄 알면서도 그렇게 달려가기도 합니다. 그게 경상도의 기질이고 성깔인데, 유사한 사례로 ‘못 먹어도 Go’가 있습니다.


단순무식함의 미학

경상도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쪽팔리는 것’입니다. 요즘은 거의 전국적으로 보편화된 그 단어의 유래가 경상도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단어를 가장 많이 썼던 지역이 경상도이지 싶습니다.

경상도 기질은 '왠지 쭈굴스럽고’ ‘쪽팔리는’짓은 죽어도 하기 싫어합니다. 그래서 어지간해서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려 들지도 않고, 뒤로 물러서려 하지도 않습니다. 과거 데모할 때 최루탄 가라앉고 나면 돌멩이 들고 덩그러니 남았다가 잡혀간 애들 중 경상도 애들이 젤 많았다는 우스갯소리도 근거 없는 얘기가 아닐 겁니다.

‘쪽팔리구로~ 우째 도망가노’

그게 경상도 기질입니다. 그 기질을 보면 분명 사나이다운 데가 많습니다. 보리 문댕이 둘이 길에서 만나 반갑게 얘기하는 걸 서울사람이 보면 싸우는 걸로 오해할 만큼 목소리 크고 말이 투박하지만, 정에 약하고 한번 준 정 잘 거두어 들이지 못하는 성격이 경상도 기질입니다. 그러다가 한번 틀어지면 끝장을 볼 만큼 다혈질이기도 하구요.

이런 성격과 기질이 복합적으로 만들어 내는 결과물 중 가장 바람직하지 못한 유형이 ‘우리가 남이가'이기도 하고, 한번 보기 시작한 쓰레기 신문 잘 바꾸지 못하는 속성, 친구 따라 강남 가듯 자기 생각 없이 묻지마 지지 하는 것, 틀린 줄 알면서도 끝까지 고집을 부리고 지가 옳다고 우기는… 그런 모습들일 수 있습니다.


경상도 기질을 이해하는 것 - 그 뒤에 해법이 숨어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들을 엮어서 생각해 보면, 왜 설득하는 것보다 스스로 변하길 기대하는 것의 차라리 확률이 높은지 조금은 감이 잡히시리라 생각합니다.

부모든, 형제든, 친구든, 지인이든, 직장 동료든 절대로 경상도 사람을 논리적으로 설득해서 변화시키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한 솥 밥 먹는 가족이라도 손톱도 안 들어가기 일쑤고, 고생만 하다가 외려 떡실신되지 않으면 다행입니다.

오랜 시간, 마음을 투자하기를 권합니다. 그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꾸준하고 일관성 있게 마음을 주어 사람과 사람으로서의 신뢰를 획득하고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절마는 진짜 믿을 수 있다. 조은 놈이다’라는 판단을 해 줄 때까지는 설득이든 교화든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턱없는 소리를 해도 잘 들어주고 그냥 웃어주고 끄덕여 주는 게 낫습니다.

섣불리 끼어들어 뭔가 한 수 가르쳐 주듯 논리를 펼치면 오히려 역효과 납니다. 경상도 사람들은 누가 자신을 가르치려 드는 것을 극도로 싫어합니다. 지가 누군데, 지가 진데, 쪽팔리거든요. 그런 경우 잘못하면 싸움으로 비화하기 십상입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어느 순간 훼까닥~ 하여 완전 황당한 상황에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때가 ‘무대뽀의 진수’를 맛보는 기회이기도 합니다만….

아주 조금씩만 보따리를 열어서, 상대가 궁금하게 만드십시오. 그래서 물어오기 시작하면 절반의 성공입니다. 그리고 해주고 싶은 말이 열 가지라도 한 가지만 말해주고 그걸로 그치십시오. 열 가지 말하려고 하면 열 번째까지 가게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어느 순간 가르치려 든다 생각 들면 ‘됐다~ 고마해라’가 튀어나오고, 뻘쭘해지고 재방송까지 시간 오래갑니다.

특별히 경상도 사람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언가 많이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말없이 차분하게 잘 들어주고 입이 무거운 그런 사람에 대해 깊은 신뢰를 갖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상대가 궁금해 하는 범위 내에서, 상대의 인내심이 견딜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보따리를 하나씩 풀라는 것입니다. 이후 그가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시간을 주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읽을 만한 꺼리를 슬쩍 전해주고 다음 기회를 보시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궁금해 하도록 만들고 스스로 찾아 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줄 수 있을 정도면 거의 독학해도 되는 단계로 가는 겁니다. 경상도 사람들은 남한테 가르침 받는 것은 죽어라 싫어하면서 자신의 힘으로 스스로 깨친 것에 대해서는 강한 자부심과 함께 고집스럽게 맹신하는 기질이 있습니다.

그러한 끈적끈적한 인간관계를 나눈 끝에 사람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게 생기면 ‘니는 내가 학~시리 믿을 수 있는 사람인께네~ 니가 그래 말하는 거 보이~ 니 말이 맞는 것 같다~' 단계까지 발전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인정이 많고, 한번 주기 시작한 정 잘 거두어 들이지 않는 성격 때문입니다. 사실 그때부터가 마음이 열리는 시점이기도 합니다. 


그 모두를 꿋꿋이 실천하셨던 분이 바로 노무현 대통령

우리는 자신이 떨어질 줄 알면서 부산이라는 동토에 민주당 깃발을 꼽고 수도 없이 두들기며 목소리 높여 외쳤던 노무현 대통령님의 모습을 한없이 존경하는 마음으로 바라봅니다.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닌, 그분의 끊임없는 도전을 신비에 가까운 눈으로 바라봅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우리는 노무현 대통령께서 부산에 쏟아 부었던 그 열정을 그저 불굴의 의지 수준으로만 바라보았던 것은 아닌지 묻고 싶습니다. 사실은 대통령님의 그 모습 안에 우리가 구하고자 하는 모든 해답이 들어 있었는데 말이지요.

대통령님 스스로 경상도 기질을 가진 경상도 사람이었기에, 경상도 사람들의 정서와 다를 수 있는 생각을 경상도 사람들에게 펼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무모한 일인지 아셨기에, 경상도 사람들의 마음을 열기 위해서는 자신의 모든 진정성을 담아 두 번, 세 번, 네 번 다가가는 것만이 당신께서 하실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체득하셨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자신의 진정성을 경상도 사람들 마음에 심어주지 못하면 절대로 아무것도 얻을 수 없고, 만약 자신의 진솔한 마음이 경상도 사람들에게 전달된다면 반드시 그 벽을 넘을 수 있으리라는 확신과 믿음이 있으셨기에 두드리고 또 두드리며 오랜 시간과 열정을 담으셨다고 생각합니다.

결과적으로 분명한 것은, 경상도 사람들이 입으로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평소 자신의 생각과 다른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 쪽팔리게 여겨지니까) 노무현을 찍겠다고 떠들지는 않았지만, 선택을 해야 하는 그날 그 순간, 자신의 마음을 바보처럼 두들겨댔던 노무현을 떠올리며 그 이름 석 자 뒤에 빨간 도장을 꾸욱 눌렀던 경상도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경상도 사람들이 어느 순간 자신의 마음을 열면 어떻게 될까요.

당신이 바로 그분입니다.

 

(cL) 독고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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