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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비웃음의 대상

[날치기 공화국]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비웃음의 대상
(서프라이즈 / 워낭소리 / 2010-01-01)


우리 현대사에서 행동하는 양심은 많았으나, 행동하는 양심으로 국가 최고지도자에 오른 이는 김대중-노무현 두 분뿐이다. 이는, 일제강점기의 역사가 청산되지 않아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진 우리 현대사에선 기적과 같은 사건이었다.

뿐만 아니라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의 성과는, 우리 현대사뿐 아니라 제국주의 시대에 식민지를 경험한 제3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자랑이었다. 비록 10년 만에 다시 수구반동의 암흑기로 회귀하긴 했으나, 지난 10년의 민주정 시대의 영광은, 동아시아의 패자로 군림하던 고구려의 전성기와 조선왕조 세종대의 태평성대에 비견될 영광으로 기록될 것이다.

우리가 제3세계 국가 가운데 이 같은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은, 늘 반 걸음 늦은 국민들보다 늘 반 걸음 앞서 걸었던 김대중-노무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런 면에서 "정치인은 국민들보다 반 걸음 앞서야 한다."는 김대중 대통령의 어록은 참으로 명언 중 명언이 아닐 수 없다.

김대중 대통령의 탁월한 통찰은 노무현 대통령의 탄생으로 화려하게 결실을 맺는다. 김대중-노무현의 관계는 조선왕조 영조-정조의 관계와 닮은 구석이 많다. 권력의 계승이나 정책철학의 지향점에서도 공통점이 많지만, 행동하는 양심이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행동하는 양심, 바로 이것이 일그러진 우리 현대사에서 기적을 불러일으킨 원동력이었다. 이게 없었다면, 이 땅에서의 민주주의는, 영국의 기자가 말했듯이,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을 찾는 일" 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현재도 이명박은 김대중-노무현의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노무현에 대한 열등의식은 거의 병적인 것으로, 이는 정의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까지도 던져버리는, 행동하는 양심을 보고 일으킨 일종의 히스테리다.

이명박과 한나라당이 진실로 두려워하는 것은, 행동하는 양심이다. 이 논리를 뒤집으면,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비웃음의 대상이라는 말이 된다. 이명박이 그 동안 국민들을 똥개 다루듯이 다룬 이유는 딱 하나, 양심은 있으나 이를 행동으로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행함은 없고 오로지 관념놀이에만 매몰된 주자학에 대하여 왕수인은 다음과 같이 일갈하였다.

"앎은 행함의 시작이요, 행함은 앎의 완성이다!"

아는 것만으론 어림없다. 행동으로 이를 증명하자. 그래서 2012년까지 갈 것도 없이, 2010년 호랑이 해에 끝장을 볼 각오를 다지자!


[막장정국] 나날이 거칠어지는 MB, 막장 향해 치닫다
(서프라이즈 / 워낭소리 / 2009-12-31)


이명박의 거친 숨결이 도를 더해간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살인범의 숨결 만큼이나 거칠다. 날이 갈수록 거칠어진다는 것은, 그 또한 공포심을 느끼고 있다는 증좌다. 경찰의 방어가 제아무리 철벽이라 해도, 이명박의 공포심까지 방어해주진 못한다.

이명박의 광기가 휘몰아치는 가운데 2009년의 겨울은 저물어간다. 이명박과 한나라당으로 대표되는 수구들의 광란으로 이글거렸던 이 시대를, 조만간 역사는 "광기와 야만의 시대"로 서술할 것이다. 나폴레옹의 몰락 이후 프랑스대혁명의 이념인 자유와 평등을 깔아뭉개고 다시 혁명 이전의 절대주의시대로 회귀하려던 반동적 움직임, 이른바 1815년의 빈체제 하의 유럽대륙의 상황과 비슷하다.

내일 도주하려는 자는 오늘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다만, 붙잡힐까 두려울 뿐이다. 사이코패스에게 도덕성은 없어도 공포심은 있으니까. 그래서 붙잡히지 않기 위하여 이명박은 최후의 살인극을 준비하고 있을지 모른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살인범에겐 오직 동물적 본능만 남아 있을 뿐, 이성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는 없다.

세상에서 가장 다루기 힘든 사람은 광인이다. 그것도 황금에 눈이 뒤집힌 광인을 상대하는 것은, 목숨을 건 모험이다. 희생은 불가피하며, 경우에 따라선 상처뿐인 영광으로 끝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역사의 진보를 믿어야 한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의 경험은, 우리에게 역사의 진보를 믿게 해 주기에 충분하다. 역사는 이 시기를,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황금기로 정의할 것이다. 바로 그 황금기의 경험이, 무너져가는 이 반동의 암흑기를 비춰주는 등불이 되어주리라 믿는다.

"역사에서 진보가 끝나지 않았다."는 카(E.H. Carr)의 말은 오늘 이 시점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것이 헤겔이 말한 "절대정신의 자기실현 과정"인지, 혹은 우연을 통해 관철된 필연인지를 모르겠으나, 어떻든 역사는 진보한다고 확신한다.

한명숙 전 총리가 법정에 선다. 유대인들의 모함을 받고 빌라도 총독 앞에 선 예수의 모습을 닮았다. 그러나 예수가 남긴 진리의 말은 지금까지 불멸의 기록으로 남아 있다.

역사의 진보를 믿을 것과, 이를 위해 투쟁할 것을 다짐하자.

 

(cL) 워낭소리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2&uid=1058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