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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기고] 1933년 독일, 2009년 한국 / 김누리

한겨레
» 김누리 중앙대 독일연구소장
베를린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나에게는 브란덴부르크 문도, 승리의 여신상도, 상수시 궁전도 아니다. 그것은 ‘분서광장’이다. 훔볼트대학 맞은편에 있는 분서광장은 1933년 5월10일 일군의 나치들이 수백명의 작가와 학자들의 책을 불태운 곳이다.

이 역사적 사건을 ‘기억’하는 방식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광장 한가운데 바닥에 투명유리판이 있고, 그 유리판을 통해 보면 아래에 흰색 서가들이 도서관처럼 늘어서 있다. 서가는 텅 비어 있다. 책 한 권 꽂혀 있지 않은 빈 서가가 도열해 있는 모습이 섬뜩하다. 유리판 바로 옆에 있는 작은 청동판엔 이렇게 새겨져 있다. “이것은 서막일 뿐이다. 책을 불태우는 곳에서는 결국 인간도 불태운다.”(하인리히 하이네, 1820)

하이네는 어떻게 백년 후 나치가 저지를 만행을 정확히 예언했을까. 이 광장에서 책을 불태운 나치들은 결국 아우슈비츠에서 인간을 불태우지 않았던가.

사실 1933년의 분서사건은 1931년부터 본격화한 나치의 권력장악 과정의 마지막 단계에 불과했다. 나치가 가장 먼저 장악한 것은 언론계와 문화계였다. 텔레비전이 보급되지 않은 당시로서는 가장 발전된 매체였던 라디오 방송을 접수하기 시작한 것이 이때였고, 강력한 대중적 파급력을 지닌 영화를 손아귀에 틀어쥔 것도 이때였다. 33년의 분서와 뒤이은 학자들에 대한 탄압은 나치의 권력장악이 완료되었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나치는 언론과 대중문화를 장악함으로써 대중에게 나치 이데올로기를 전파할 수단을 확보하고, 이어서 학문세계를 점령함으로써 대학과 연구기관을 나치 이데올로기의 생산기구로 탈바꿈시켰다. 분서사건 이후 대학은 완전히 나치의 수중에 떨어졌고, 양심적 학자와 작가들은 서둘러 망명길에 올라야 했다.

최근 한국 사회의 변화를 보면 자꾸 1930년대의 독일이 겹쳐서 보인다. 정연주, 신경민, 손석희 등 언론인에 대한 집요한 압박에 이어 윤도현, 김제동 같은 연예인들마저 잘려나간 이후, 이제 칼날이 학계를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 최근에 터졌다. 필자가 소장으로 있는 중앙대 독일연구소는 2009년 인문한국(HK) 지원사업에 지원해, 심사 결과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으나, 최종선정에서 탈락하였다. 정부의 학술연구 지원사업에서 1위로 올라온 과제가 탈락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해당 분야 전문가 수십명이 외부와 차단된 상태에서 일주일간 합숙하며 산출해낸 객관적인 심사결과를 정부기관이 나서서 자의적으로 뒤집은 충격적인 사건이다. 연구소 소장이 지난 6월 중앙대 시국선언을 주도했고, 참여교수 대부분이 시국선언에 동참한 교수들이라는 사실은 사태의 본질을 암시한다. 이 사건은 비판적 학자에 대한 정치권력의 보복이 개시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인 것이다. 나아가 이번 사건은 민주주의와 실용의 가면 뒤에 감추어진 이 정권의 권위주의적 본색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주고, 지난 반세기 동안 엄청난 희생을 치르며 힘겹게 쟁취한 한국의 민주주의가 또다시 심각한 위험에 처해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1933년의 독일이 2009년의 한국일 수는 없다. 그래서도 안 된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한다. 나치가 언론계와 문화계를 장악한 후 마지막으로 칼날을 들이댄 곳이 학계였다는 것을. 또한 우리는 알고 있다. 정치가 학문을 유린하는 사회는 파시즘의 문턱에 서 있는 사회라는 사실을 말이다. 최근 우리 학계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은 하이네의 경고를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이것은 서막에 불과하다. 학문을 짓밟는 자는 언젠가는 결국 인간을 짓밟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