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병찬칼럼] 사돈 폭탄, 효성과 선경의 경우 | |
곽병찬 기자 | |
아둔한 사람을 놀릴 때 흔히 ‘닭대가리’라는 말을 쓴다. 닭의 기억력이 3초를 넘지 않는다고 하는데, 모이를 두어 번 쪼고는 고개를 들어 갸웃하는 모습은 영락없이 ‘내가 뭘 했지’라는 표정이다. 그러나 닭보다 결코 낫다고 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니 민망스럽다.
요즘 기억 능력은 가진 돈과 권력에 비례한다. 슈퍼컴퓨터 등 각종 기기는 물론 기억을 환기시키는 부하 직원까지 거느린다. 최고 권력자의 경우 그 용량은 무한대에 가깝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권력자는 전임자의 잘못된 전철을 고스란히 밟는다. 닭만도 못하다. 노태우 대통령은 재임 중 친·인척 전횡과 정치자금 강제헌납 등으로 원성을 샀던 전임자의 전철을 밟다가 일패도지의 상황에 이르렀다. 이런 문제를 이용해 지존의 자리에 오른 김영삼 대통령 역시 자식 문제를 뭉개다가 종이호랑이가 되었다. 노씨의 경우는 상징적이다. 그 임기 6개월을 남기고 제2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을 강행했다. 연기를 요청하는 여론이 다수였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심사 결과는 예상대로 사돈 기업인 선경의 낙점이었다. 다음날인 1992년 8월21일 김영삼 당시 민자당 대통령후보는 강릉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은 정직하고 깨끗해야 합니다. 나도 가정을 소중히 생각하지만, 그보다는 나라를 더 사랑합니다.” 초등생 수준의 어휘력과 사고력을 보여주는 문장이었다. 그러나 이 두 문장은 노씨를 간단히 식물 대통령으로 만들어 버렸다. 한국 정치사 최고의 초식이었다. 물론 노씨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긴급 수석비서관회의가 소집됐다. 회의 뒤 정무수석은 대통령의 진노를 전하면서 “이기적이고 분별없는” 김씨의 대선 전략을 대놓고 비판했다. 관계를 단절하겠다는 메시지였다. 실제 노씨는 일주일 뒤 민자당 총재직을 버리고, 9월엔 아예 탈당했다. 정치자금과 관권 지원 등 여당 후보의 프리미엄을 중단할 것임을 행동으로 옮긴 셈이다. 역시 강력한 초식이었다. 그러나 대결은 싱겁게 끝났다. 도덕성의 급소를 맞은 노씨의 초식은 초등생 회초리만도 못했다. 안간힘을 쓰면 쓸수록 수명만 재촉했다. 지금 새로운 시한폭탄이 돌아가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사돈 기업 효성 문제다. 효성의 의혹은 기억하기 힘들 정도로 여럿이다. 얼개만 추리면 이렇다. 한편에선 불법으로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했고, 다른 한편에선 사주 3세들이 막대한 규모의 국외 부동산과 자사주를 매입했는데 그 출처가 어디냐는 것이다. 여기에 더 치명적인 권력의 비호 의혹이 따른다. 정권 출범 초부터 이에 대한 논란이 계속됐지만, 사정기관은 핵심 혐의자의 국외도피 방조, 꼬리 자르기 식 수사 등의 편법으로 ‘몸통’을 보호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엊그제 검찰총장이 국외 부동산 매입자금의 출처를 따져보겠다고 말했지만, 액면 그대로 믿기 힘들다. 17년 전 선경은 이통 사업자 선정에 대한 잡음이 일자 일주일 만에 사업을 깨끗이 포기했다. 그로 말미암아 쓰나미는 노씨에게서 그쳤다. 효성 사건은 너무 질질 끌었다. 그사이 너무 많은 이들이 사건 처리에 말려들었다. 게다가 이 정권은 불과 5개월 전까지 전직 대통령의 사돈의 8촌까지 뒤졌다. 한편에선 전임자가 죽을 때까지 뒤지고, 다른 한편에선 제 사돈 봐주기에 전념한 사실이 드러나면, 그땐 막장이다. 그렇다고 뭉갤 수도 없다. 박근혜 전 대표는 엊그제 “정치는 신뢰다. 신뢰가 없다면 정치도 없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식언을 겨냥해 날린 초식이다. 언제 “나도 가족을 사랑한다. 그러나 국가를 더 사랑한다”는 초식까지 날릴지 모른다. 집권 2년차라는 게 다행일 뿐이다. 이 대통령에겐 뇌관을 제거하고 사태를 수습할 시간이 있다. 곽병찬 편집인chankb@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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