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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레임덕’, 나만 모르고 있나

‘레임덕’, 나만 모르고 있나
현실을 직시하고 인정해야 불행을 막는다

(서프라이즈 / 이기명 / 2011-01-21)


세상에 이럴 수 있는가. 기가 막힌다. 말발이 서지 않는다. 일을 시켜도 별로 효과가 없다. 뒤에서 험담이나 하고 수군댄다. 별의별 소리가 다 들린다.

세상이 이렇게 변한단 말인가. 땅을 칠 노릇이다. 앞으로 어떤 꼴을 당할지 겁이 난다. 성질을 부려도 소용이 없다.

여기까지 들으면 혹시 대통령의 레임덕 얘기냐고 할지 모른다. 그거야 생각하는 사람 마음대로지만 실은 주위에서 흔히 보는 경우다.

제법 잘 나가던 친구다. 고위 관리도 했고 모두들 알아줬다. 거만도 떨었고 어디를 가나 대우를 받았다. 집에서도 왕이었다. 언제나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사는 맛이 있었다. 나이를 먹어 공직을 물러났다.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니 그 자신이 뭔가 꼭 집어내기 힘든 변화를 체감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게 도대체 뭘까. 왜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일까. 왠지 자신감이 점점 사라지는 것이다. 화를 내는 횟수가 잦았다. 집안의 분위기도 엉망이 되었다. 아내와 자식들의 시선도 전과 같지 않았다.

친구를 만나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얘기를 다 들은 친구가 대수롭지 않게 간단히 정리했다.

‘이봐. 그게 인생의 레임덕이야.’

깜짝 놀랐다. 레임덕이라니. 자기가 무슨 대통령이라고 레임덕인가. 친구가 조용히 충고를 했다.

레임덕은 대통령만 겪는 데 아니란다.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의 레임덕이 있고 가장도 그 나름대로 레임덕이 있다는 것이다. 잘 나갈 때는 말 한마디에도 권위가 붙고 위엄이 있다. 그러나 이제 나이도 먹고 벼슬도 떨어지고 집안에 들어앉아 있는데 옛날 생각을 하면 그건 한참 착각이라는 것이다. 거기다가 주책이나 떨고 체통을 잃으면 영이 서질 않는다.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귀천을 막론하고 인간은 자기 사랑을 자기가 지니고 다닌다. 아무리 막강한 권력을 가졌다 하더라도 권불십년이라 했고 덧없는 것이 권력이다. 아쉽고 억울하지만 도리가 없다. 더구나 국민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권력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레임 덕과 이명박 대통령>

위의 글을 읽은 사람은 혹시 이명박 대통령의 얘길 한 것이 아니냐고 할지 모르나 레임덕의 일반적인 사례를 든 것이다. 레임덕이 왜 우리나라에만 있겠는가. 세계 어느 나라에도 다 있다.

KBS에서 유일하게 즐겨보는 ‘동물의 세계’에서도 ‘레임덕’의 현상은 목격한다. 동물의 왕인 사자가 늙어서 권좌에서 쫓겨나 자신이 거느렸던 암사자나 자식들의 무리들로부터 천덕꾸러기가 되고 심지어 목숨까지 잃는다. 인간의 사회와 무엇이 다른가. 아니 오히려 인간이 더 비정할 수도 있다. 그래서 마무리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요즘 이명박 대통령과 레임덕이 화제에 많이 오른다. 아직 꽤 시간이 남았는데 너무 이른 거 아니냐고 하는 국민들도 있는데 사실 따지고 보면 스스로 자초한 측면도 있다.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자기는 퇴임하는 날 까지 레임덕은 없다고 호언을 하는가 하면 서울시장 때도 퇴임 날 아침까지 근무했다고 자랑한다.

누가 뭐라고 했나. 이럴 때 쓰는 말이 ‘제 발 저리다’는 말이다. 자격지심이다. 인간이 어리석다지만 자기 일에 관한 한 제일 잘 아는 것은 역시 자기 자신이다. 특히 최고의 권력자라면 권력과 관련된 누수현상에 대해서 민감하다. 레임덕에 대해서 가장 촉각을 세운다는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권력의 누수가 오고 레임덕이 시작되면 통치가 어렵기 때문이다. 통치가 어렵다면 대통령 자리가 무슨 소용인가. 그야말로 바지저고리다.

첫째 말을 안 듣는다. 전 같으면 말 한마디면 끝인데 지금은 한 마디가 아니라 열 마디를 해도 불통이다. 통하지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이 불통대통령이란 말이 국민들 사이에 도는데 이제 대통령 말이 아래로 통하지 않아 불통이다.

가장 가까운 예로 정동기 감사원장 청문회만 해도 그렇다. 청문회 통과는 고사하고 아예 청문회장에 들어가 보지도 못했다. 한나라당이 정동기 불가통고를 청와대에 할 때 청와대에서는 30분만 기다려 달라고 애걸(?)을 했는데도 매정하게 거절당했다. 이 무슨 개망신인가.

▲ 12일 감사원장 후보 사퇴 기자회견을 마친 후 떠나는 정동기 후보자

대통령이 화가 날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대통령한테 이런 수모를 준단 말인가. 국민들이 대통령을 뭘로 볼 것인가. 청와대에서 말 한마디 떨어졌다 하면 일사분란하게 로봇 처럼 움직이던 한나라당 아닌가. 그동안에 날치기 법안 통과를 비롯해서 국민이야 뭐라고 하던 청와대 하면 끝이었다.

이제 달라졌다. 달라져도 너무 달라졌다. 온갖 정보가 바로 야당으로 넘어간다. 청와대 고위간부가 안상수 아들 로스쿨 불법입학 관련정보를 제공했다고 해서 청와대가 발칵 뒤집혔다.

이명박 대통령의 새해 연설내용이 언론에 보도되어 대통령이 불같이 화를 냈다. 민정비서실이 관계 수석과 비서관들의 휴대전화 통화내역을 조사했다고 주간동아가 보도했다. 이 무슨 콩가루 집안인가.

여기저기서 마치 오발탄 터지듯 뻥뻥 터지니 도무지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다. 굿이라도 해야 될 판이다. 엎친 데 덮친다고 했던가. 구제역으로 이미 살 처분된 가축은 216만 마리가 넘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한국의 축산은 완전히 절망이다. 보상액만 2조 원이 넘는다고 한다. 민심이 불안하다.

축산농가가 끓는다. 처음부터 백신을 썼으면 이 지경은 안 되었을 거라고 한다. 공무원들도 죽을 맛이다. 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른다. 주부들이 장에 다녀와서는 꼭 강도를 당한 것 같다고 한다. 물가를 잡는다고 법석을 떨지만 믿는 국민이 별로 없다

유언비어를 단속한다고 한다. 국민의 입을 막자는 모양인데 그게 가능한 일인가. 청와대도 입조심이다. 이게 우리나라 얘기라니 기가 막힌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레임덕이 없는 것이다. 아무 걱정 없이 정치에 전념하는 것이다. 국민의 선택으로 당선이 된 이후 국정을 제대로 펼쳐서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퇴임을 하면 정말 행복한 대통령이다. 어느 국민인들 이를 바라지 않겠는가.


<레임 덕, 누가 자초했는가>

국민들이 공공연히 말한다. 이미 이명박 대통령의 레임덕이 왔다고. 언론도 레임덕을 거론한다. 특히 조중동의 논조가 수상하다. 어떤 논설을 보면 레임덕을 드러내놓는다. 청와대로서는 기가 막힐 것이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그래도 이것은 너무 빠른 게 아니냐. 아직도 2년 가까이 남았는데 너무 심한 것 같다. 허나 사실인데 도리가 없지 않은가.

산을 오를 때 보다 내려 올 때 더 조심을 해야 한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내려오다가 구르기라도 하면 대책이 없다. 중상이다. 5년의 임기 중에서 반이 지났다면 그것은 바로 하산 길이다. 발 한 번 삐끗 잘못 디디면 천길 낭떠러지로 추락한다.

누가 발을 헛디디는가. 대통령이다. 조심조심 국민의 눈과 높이를 맞추며 하산을 할 때 추락이란 있을 수가 없다. 오만방자한 독선적 사고와 안하무인적인 독불장군식 통치행위는 반듯이 반발을 일으킨다. 국민이 가만 있지 않는다.

누가 강제로 떠맡긴 레임덕이 아니다. 스스로 자초했다. 취임하자마자 광우병 관련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도 스스로 자초했다. 서울 도심이 촛불로 타올랐다. 대통령이 사과를 했다. 그때 이미 레임덕이 시작됐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국민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22조 원을 퍼부어 강행하고 있는 소위 4대강 개발은 국토파괴행위라고 국민이 규탄한다. 부자 감세와 세종시 반대.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국민정서를 무시한 독선적 정치는 국민으로 하여금 다시 80년대 독재시대로 회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갖게 했다.

뿐만이 아니다. 국민의 가슴속에 그리움으로 자리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은 고향마을 부엉이바위에서 투신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자살 뒤에 저승사자처럼 웅크리고 있는 음험한 괴물의 정체는 무엇인가. 썩은 언론과 빨대 검찰과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게 한 권력. 5백만의 국민이 노무현 대통령의 영정 앞에서 피눈물을 흘렸다.

부모를 죽인 원수라 해도 그럴 수는 없다. 사돈의 팔촌까지 핍박을 받았다. 이렇게 철두철미한 보복은 없었다. 죄도 없이 당한 보복이라고 국민들은 생각했다. 열등감으로밖에 해석이 안 되는 복수극을 보는 국민들의 마음이 떠나지 않는다면 그 역시 이상한 일이다.

한명숙 총리에 대한 재판은 어떤가. 반드시 잡아넣고 죄를 묻겠다는 집념의 검찰은 지금도 여전히 칼을 간다. 이런 집념의 검찰이 조현오에 대한 고발에는 왜 꿀 먹은 벙어린가.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슬퍼한 5백만 국민의 안타까움은 이 나라 역사와 함께 영원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을 죽음의 낭떠러지로 몰고 간 증오는 대한민국에서 노무현 지지세력의 씨를 말리고 싶은지 모르지만 한참 착각이다. 국민의 정서를 이렇게 모르고 있으니 레임덕은 바로 자신들이 불러들인다고 할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물가고에 서민의 가슴은 바짝 말라간다. 부자는 감세의 은혜를 입고 복지예산은 날치기로 사라진다. 천안함 사건과 미국의 턱만 쳐다보는 무능외교. 군 입대를 하면 난리라도 나는지 한결같이 군 면제를 받은 고위공직자들의 지하벙커회의. 이런 정부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최초일 것이다.

죄 없은 민간인을 야당의원과 고향이 같다는 이유로 사찰을 하는 나라가 어디 있단 말인가. 겁이 나서 어디 마음 놓고 숨이나 쉴 수 있는가. 이러면서 레임덕을 피한다면 그 재주가 비상하다.

자주성이라는 눈 씻고 볼 수 없는 무능외교의 극치를 보면서 국민은 울분을 토한다. 언론사의 사장은 마음대로 갈아 치웠다. 드디어 어용방송은 찬란하게 꽃을 피웠다. 향기가 없다. 사람이 안 보인다. 아부와 아첨만이 보인다.

비굴이 얼굴을 덮은 언론인들, 어용뉴스를 보라. 구역질이 나온다. 종편은 뭔가. 조중동을 더 살찌게 할 모양이지만 번지 잘 못 찾았다. 반듯이 망한다고 전문가들이 말한다. 국민이 망하게 할 것이라는 것이다.


<레임 덕 없이 퇴임하는 정치>

정치에는 왕도가 없는가. 있다. 바로 국민의 뜻을 따르는 것이다. 여론은 대통령의 소통이 부족하다고 한다. 왜 내가 소통이 부족하냐. 자신은 늘 소통을 한다고 주장한다.

자신이 얼마나 친 서민적이냐. 시장에 나가 목도리도 훌렁 벗어 주고 차고 있던 시계도 풀러 준다. 시장에서 떡볶이도 사 먹고 어묵도 사 먹는다. 이것이 얼마나 친 서민적이며 서민의 여론을 수렴하는 것이냐.

이게 서민적인 것이 아니다. 국민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냥 이미지를 위한 TV용이라고 생각한다. 아닌가. 그것이 진정 서민을 위한 행위라면 지난 연말에 날치기 예산통과를 안 했을 것이다. 서민들의 복지예산이 몽땅 날라 간 예산안 통과는 아무리 변명을 해도 설득이 안 된다.

말을 안 듣는 국회. 당연하다. 누가 끈 떨어진 망건 같이 인기 없는 대통령의 말을 따를 것인가. 정치라면 닳고 닳은 정치인이다. 영양가 떨어졌다. 지역구 인심이 고약하다. 말이 아니다. 이러다가 다음 선거에서 떨어지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럴 때 그들이 선택해야 할 길은 무엇인가.

상식인이면 알 것이다. 내가 무엇을 잘못하고 국민들의 마음이 왜 멀어지는지. 왜 국민들이 자신을 외면하는지 보통의 상식이면 다 안다. 50%의 지지율인데 무슨 소리냐고 하지 말라. 믿는가.

택시를 몇 번 만 타 보라. 여론조사의 허구를 잘 알 것이다. 도대체 대낮에 노인들이나 있는 집에 전화를 해서 조사하는 여론조사를 믿는단 말인가. 응답률이 몇%인지 아는가. 6%다. 이걸 여론조사를 했다고 조사기관도 한심하지만 이걸 발표하는 썩은 언론들도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알면서 저지르는 죄가 더 무겁다.

레임덕을 두려워 할 것 없다. 레임덕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단 국민의 뜻을 배반하면 인위적 레임덕이 온다. 불행한 레임덕이 온다.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비극의 레임덕이 오는 것이다. 어느 대통령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의 사슬이다.

겸손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나에게는 해당사항 없다고 강변하지 말라. 이미 국민은 알고 있다. 국민의 눈과 귀와 입을 보면서 준비를 해야 한다. 고집과 오만으로 점철된 과오를 바로 돌려놔야 한다. 그것이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 것이다.

살 처분된 소 돼지가 216만 마리, 닭 오리가 360만 마리에 달하는 것은 국가 경영능력의 상실이다. 왜 머리 숙여 사과 한마디 못하는가. 잘못한 것이 없어서인가. 그냥 어물쩍 넘어가려는 것인가. 한참 잘못 생각했다.

레임덕이 오는 것을 두려워 말고 왜 레임덕이 오는지 생각해야 한다. 레임덕 없다고 고집부리지 말고 왜 레임덕이 가속화되는지 겸허하게 반성해 보는 것이 먼저 할 일이다. 막을 수 있는 불행은 막아야 한다.


2011년 01월 21일

이 기 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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