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노 대통령, 한나라당에 이렇게 고언 하시다
(양정철닷컴 / 양정철 / 2011-01-13)
최근의 우리 정치를 보면 가슴이 답답합니다. 기본도 없고, 원칙도 없고, 대의도 없는 듯이 보입니다. 여-야의 질서, 가치와 신념에 대한 믿음, 정치 신의에 따른 도리, 국가와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 등이 모두 실종된 느낌입니다. 오로지 대선 승리와 국회의원 선거만을 계산한 얄팍한 처신이 정치판을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격돌과 이합집산의 변화무쌍을 지켜보며 안타까운 심정을 금할 수 없습니다. 정치가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는 마음에 걱정이 태산입니다. 저에게 유·불리도 없고 득실과 관계되는 일도 아니지만, 한국정치가 다시 불신과 증오의 늪에 빠져 퇴행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에서 저의 생각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정치는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정치는 정치답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저울과 계산기일랑 미련 없이 버려야 합니다. 정치는 남으면 하고 안 남으면 안 하는 ‘장사’가 아닙니다. 공익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는 일입니다. 반사적 이익만으로 정치를 하려고 해선 안 됩니다. 대통령의 낮은 인기를 바탕으로 가만히 앉아서 덕을 본 사람도 있었고, 너도나도 대통령을 몰아붙이면 지지가 올라갈 것이라고 생각해서 대통령 흔들기에 몰두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국민의 지지를 오래 유지할 수는 없습니다. 당 상황이든 책임이든, 분석이 정확해야 합니다. 진단이 정확해야 적절한 처방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분석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책입니다. 대책 중에서 가장 중요한 대책은 기본을 지키는 것입니다. 가장 나쁜 대책은 서로 책임을 미루고 싸우는 것입니다. 운동선수들은 한 번 졌다고 그대로 주저앉지 않습니다. 다시 시작합니다. 패배의 원인을 분석하고, 다시 체력을 보강하고, 기량을 연마합니다. 그중에서도 원인의 분석보다는 이후의 훈련에 주력합니다. 책임을 따지고 싸우는 일은 여간해서 하지 않습니다. 결정적인 잘못이 있고 더 좋은 대안이 있을 때에만 합니다. 이해관계에 몰두하는 정치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정치의 기본은 원칙과 대의입니다. 정치에서 후보보다 중요한 게 정당입니다. 정당은 정체성과 가치를 함께하는 사람들이 신념으로 뭉친 집단입니다. 정당은 원칙과 대의에 따라 행동해야 국민들의 신뢰를 쌓아갈 수 있습니다. 아직도 ‘대권’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이제 한국에서 ‘대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국정에 관한 권한은 대통령과 국회가 나누어 갖고 있습니다. 국회는 법률안 및 예산안 의결권, 각종 비준 동의권, 총리 및 주요 직위의 임명동의권과 각료의 해임건의권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대통령과 국회 간, 그리고 여야 간에 대화하고 타협하지 않으면 국정이 표류하고 마비됩니다. 역대 정부에서 여당은 어려움에 처하자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통해 이를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특히 현직 대통령의 지지도 하락에 부담을 느낀 대통령 후보들이 차별화에 앞장섰습니다. 노태우 前 대통령도, 김영삼 前 대통령도 차기 대선 후보의 차별화와 탈당 압박 속에 당적을 버렸습니다. 지난 국민의 정부에서도 김대중 前 대통령이 총재직을 사퇴하고 탈당하는 불행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차별화와 정부-여당의 균열은 당의 지지도나 대통령 후보들의 지지도를 올리는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당 지지도와 후보 지지도, 국정 지지도를 하락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여권의 분열과 대통령의 고립으로 인해 책임정치가 실종되고, 국정통제시스템이 와해되어 IMF 외환위기와 신용불량자 양산 등의 어려움을 낳는 한 배경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국정도 어렵고 당 또한 어렵습니다. 그러나 가치와 노선보다 정치인의 이해관계에 몰두하는 정치는 선거에서도 역사에서도 성공할 수 없습니다. |
이상, 노무현 대통령 말씀이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청와대와 한나라당 모두에게 깊이 와 닿을 만한 내용 아닙니까?
그러나 착각하지 마십시오. 정말로, 하늘에 계신 노무현 대통령께서 한나라당에 주신 충고의 말씀은 아닙니다.
위 내용은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이 우리 정치상황을 지켜보면서 한국정치 발전에 대한 우려의 심경과 제언을 담아 당신께서 직접 작성한 비슷한 주제의 세 개 글을 제가 압축한 것입니다. 하나는 4월23일 작성했고 또 하나의 글은 4월27일 작성해, 비서실에 정리하라고 내려 보냈습니다. 나머지 하나는 그보다 앞선 2월에 서한 형식으로 작성된 것입니다.
당시, 대통령이 직접 작성한 이 글들을 마지막에 정리하는 일이 제게 주어졌습니다. 워낙 치열한 고뇌가 담긴 글이고 아주 오랜 사색에서 나온 글이어서, 긴 문장 좀 줄이고 조사 약간 바꾸고 띄어쓰기 다듬는 것 외엔 손댈 수가 없는 완벽한 문장이었습니다.
남의 일이지만, 최근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다투는 모습은 참으로 측은합니다. 감사원장 후보자의 낙마를 두고 청와대와 당은 누구의 책임이냐며 서로 잘잘못을 꼴사납게 따집니다. 후폭풍이 거셉니다. 집권당 대표와 원내대표는 서로 책임을 미루면서 으르렁대기도 했습니다. 총체적 난국입니다. 이미 제가 지적 드린 대로, 한나라당이 혼자 살겠다고 이제 와서 표변한 것은 비겁한 일입니다. 무책임한 행태입니다.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사는 게 정치 신의입니다.
마치 4년 후의 일을 예언이라도 한 것처럼 지금 상황에도 딱 맞는 노 대통령 당시 말씀은, 이 땅의 퇴행적 정치역사가 한심하게 반복되고 있음을 아프게 상징하고 있습니다. 생전에 한국정치의 발전을 간절하게 소망했던 한 위대한 정치 지도자의 솔직한 고언을 이 땅의 정치인들이 새겨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양정철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2&uid=227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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