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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이명박은 결코 지지 않았다. 아직도 그를 모르는가

이명박은 결코 지지 않았다. 아직도 그를 모르는가
신발끈 단단히 동여매고 큰 연대로 결전을 대비해야

(사람사는 세상 / 강기석 / 2010-06-07)


방송과 신문 등 거의 모든 제도권 언론을 장악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천안함 침몰사건이 그 장악당한 언론을 통해 북풍으로 둔갑해 4대강, 세종시 등 다른 이슈들을 잠재웠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이 6·2지방선거를 통해 그나마 이만한 지형을 만들어 낸 것은 대단한 것이었다고 전제한다. 그러나 야당이 완승했다는 평가나 이제 야당이 정국주도권을 회복할 수 있으리라는 전망은 너무나 성급하고 어이없기까지 하다. 목마른 자가 보고 싶어 하는 신기루에 불과할 뿐이다.

이번 지방선거 전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선거결과에 대한 평가 기준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 바 있다. 16개 광역시도 중 영남 5곳, 호남 3곳을 빼고 나머지 8곳의 정치적 비중을 고려할 때 서울 10, 경기 5, 인천 3, 강원 등 나머지 5곳은 각각 2점씩을 주면 적절하지 않을까. 만약 적지나 다름없는 경남을 이길 수만 있다면 6점까지 줘도 좋을 것이다.

그런 가중치를 전제하고 나는 이번 선거에서 야당의 압승 기준을 20점으로 잡았다. 강원에서 제주까지 작은 5곳을 모두 석권한다 해도 고작 10점. 10점을 더 얻으려면 서울을 이겨서 한 방에 채우든지, 서울을 이기지 못할 경우 경남과 경기를 동시에 이겨야 했다. 그런데 결과는 15점에 불과했다(경남 6점+인천 3점+강원 2점+충남 2점+충북 2점). 아주 자의적이고 유치하기까지 하지만, 이 계산법에 따르면 왜 다들 이겼다고 하는데 나만 찜찜할까 하고 고민하는 많은 이들의 의문이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나라당 역시 완승의 기준을 20점 정도(서울, 경기, 강원에서 이겨 17점, 인천, 충북, 대전, 충남 등에서 최소한 반타작으로 4점 이상)로 잡았음직 하다. 그러나 결과는? 서울과 경기에서 이겨 15점을 획득했는데 경남에서 -6점! 결국 9점에 그치고 말았다.


놀랍지만 여전히 부족한 선거결과

그러므로 한나라당이 참패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민심이 이명박 정권에 소통하라, 일방적 국정운행을 당장 중단하라고 명령한 것이다. 하지만 민심은 명령을 내렸을 뿐 그러한 명령을 강제할 만큼의 결정적 힘을 야당에 주지 못한 것 또한 사실이다. 결국 서울과 경기에서의 실패는 이번 선거를 선거혁명이라 부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이명박 정부를 항복시키기는커녕 국정운영에서의 약간의 변화라는 제스처를 끌어내지도 못할 결과를 초래했을 뿐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그 스스로 믿기를, 한나라당 위에 있는 사람이다. 그에게 있어 이번 선거의 결과는 몇몇 바보 같은 한나라당 놈들의 실언과 박근혜의 비협조 등 몇 가지 전술적 오류로 아주 약간의 지방권력을 빼앗겼을 뿐 완패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부른 북풍이 결정적인 서울과 경기를 지켰다는 오판 속에, 자신이 가진 대통령의 권력으로 판세를 뒤집을 수 있다는 오기가 조만간 작동할 것이다. 이러한 분석의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여전히 중앙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이명박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중앙권력은 예산규모 면에서나 검찰과 경찰이라는 현실적 폭력수단, 국정원 같은 정보기관을 독점하고 있다는 점에서나 지방권력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한마디로 지방권력을 다 모아도 중앙권력의 절반은커녕 10분의 1도 안 된다.

둘째, 이번 선거로 표출된 국민의 의지는 4대강 사업 중단하라, 청와대와 내각, 한나라당의 혁신을 통해 소통하는 정치를 하라, 군과 검찰 등 권력기관을 개혁하라 등일 텐데 이명박 정권은 그 어떤 것도 이미 시기를 놓쳤다. 4대강 삽질에 묻어 있는 수많은 토건세력들의 지지와 상호 책임 전가와 허위, 기만 등으로 촘촘히 엮어져 있는 권력 내부의 불안한 역학관계야말로 이 정권의 존립의 근간일 뿐 아니라 이 정권의 본질이요 정체다. 그것을 개혁한답시고 섣불리 손을 댔다가 일순간 방죽 무너지듯 정권 전체가 와르르 무너질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야당과 박근혜 등 정치적 반대세력에 대한 원천적 미움과 불신이 근본적으로 개혁을 불가능하게 한다.

셋째, 이명박 개인이 스스로 굳게 믿고 있는 자신의 무오류성이다. 자신이 하는 일은 다 옳다는 신념을 떠나 이긴 자, 강한 자가 곧 정의라는 굳은 인생관이다. 그러기에 2년이나 지나 자신이 한때 무릎 꿇었던 촛불시위에 대해 오히려 사과를 요구하는 집착이 가능한 것일 텐데 그러한 성격적 요인이 두려움과 미움, 불신으로 증폭돼 자신이 가진 권력을 통해 일대 반격을 꾀할 개연성이 높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패배와 이명박의 패배는 다르다

그러므로 이명박 대통령은 선거 결과에 대한 정치적 평가와 책임문제는 한나라당에 맡긴 채 자신은 언론장악을 더욱 강화하고 검찰과 경찰력을 총동원해, 빼앗긴 지방권력에 대한 견제와 방해를 가속화할 것이다.

강원도지사, 경남도지사, 충청남·북도지사들은 한나라당, 혹은 한나라당보다 더 토착적인 자유선진당 등에게 장악된 도의회의 터무니없는 트집 잡기에 날을 지새울 것이며, 정책을 세우고 예산을 집행할 때마다 사사건건 중앙정부의 간섭에 발목을 잡힐 것이며, 걸핏하면 검·경의 수사와 기소에 시달릴 것이다.

그때마다 언론은, 조중동 등 중앙언론이나 지방언론 구별할 것 없이, 이중잣대를 들이대며 온갖 왜곡보도로 민주당과 친노세력을 무능집단, 부패집단으로 매도함으로써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 한나라당에 유리한 국면을 조성하는데 견마지로를 다할 것이다.


더욱 강화될 공안탄압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첫째, 전국 규모의 이슈를 만들고 전국 규모의 이슈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표출된 민심은 이명박 정권 심판이며 4대강 사업이야말로 이명박 정권의 가장 큰 실정이다. 사소한 도정으로 평가받기보다는 4대강 사업을 저지하는데 최대의 노력을 경주함으로써 더 큰 민심을 얻어야 한다.

둘째, 새로 얻은 권력을 이용해 그동안 한나라당이 장악했던 지자체들이 얼마나 부패와 무능으로 썩었었는지를 최대한 밝혀내고 폭로해야 한다. 이것은 현 집권세력의 정체를 포괄적으로 드러내는 일일 뿐 아니라 앞으로 야당 쪽에 집중될 저들의 공격에 대한 대비이기도 하다.

셋째, 한나라당을 제외한 모든 민주세력들의 지속적인 연대의 틀을 강화해야 한다. 이것은 진용을 구성하는 데서부터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단계에 이르기까지 항상 지켜야 할 대원칙이다. 이번 선거에서 그나마 민주세력이 숨통을 열 수 있었던 계기는 연대에서 비롯됐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민주당이 과연 이번 선거에서 진정 연대의 귀중함을 깨달았느냐의 여부는 차치하고, 다행히 광역지자체 당선자나 기초지자체 당선자 중에는 노무현 사람들이 많다. 타 정치세력과의 연대의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 것이며, 얻은 것을 지키려 하지만 말고 결전의 교두보로 삼아야 한다는 말의 의미가 더 잘 통하게 된 것이다. 6·2 지방선거에서 얻은 이 작은 성과는 나누어야 할 전리품이 아니라 당장 방어와 공격에 재투입되어야 할 노획물인 것이다.

 

강기석 / 전 경향신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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