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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생각나는 대로 하면 되고…

생각나는 대로 하면 되고…
상식을 배반하는 검찰의 법인식

(노무현재단 / 강기석 / 2010-03-25)


판·검사, 변호사 혹은 법학교수같은 ‘법률전문가들’이 따로 있다는 사실은, 일반인들이 일반적인 상식만 갖고는 법의 세계를 다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고 법이 일반상식의 테두리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법이 때때로 사회의 변화속도에 뒤떨어질 수는 있지만 지속적으로 사회의 일반적인 상식과 크게 어긋나는 상태로 계속 존재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법정에서 치열하게 벌어지는 원고와 피고의 양보없는 공방전도 단순한 법리싸움을 넘어 결국 판사가 대변하는 상식에 대한 호소라는 생각까지 해 본다.
 
그런데도 이른바 ‘한명숙 전 총리 뇌물수수 사건’에서의 검찰은 끊임없이 상식을 우롱하고 있다. 처음부터 없는 사실을 있는 것처럼 만들려다보니 온갖 무리수를 빚게 되고 결국은 상식밖의 돌출행위로 우스갯거리가 되고 있는 형국이다.

23일 일반인의 접근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진행된 총리공관 현장검증에서도 그런 일이 또 발생한 모양이다. 피의자역할을 대신한 검찰 측 사람이 의자위에 놓인 돈봉투를 집어 들어 자신이 앉았던 의자 바로 뒤에 있는 서랍장에 넣는 행위를 시연하고는 '이건 우리 측 추정'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TV나 영화 등을 통해 숱하게 현장검증 장면을 지켜 본 일반인들의 상식은 판사 등 제3자가 그럴듯하다고 믿을 만큼 범죄행위를 재현해 내는 것이 현장검증이라는 것이다. 그 요체는 행위에 대한 입증가능성일 터다.

그런데도 검찰은 '결코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도 없고, 따라서 입증하려는 노력도 해 보지 않았음'을 자인한 그런 행위를 현장검증에서 버젓이 연출했다. 그리고 그 장면은 이날 저녁 TV 뉴스에 '검찰의 추정'이라는 코멘트마저 생략된 채 반복적으로 보도되었다.

결국 이날의 현장검증 전 과정에서 가장 신빙성이 없었던, 돈봉투를 서랍장에 집어넣는 바로 그 행위가 영상미디어의 굴절을 통해 마치 가장 의미있는 행위였던 것으로 둔갑해 시청자들에게 전달된 것이다. 검찰은 자신의 다른 주장에 대한 신빙성까지도 의심받게 할 수 있는 비상식적인 자해행위를 통해 한총리 욕보이기라는 또 다른 노림수를 성공시킨 셈이다.

이로써 검찰이 수사와 재판의 전 과정을 통해 혐의에 대한 입증노력과는 별도로  한 총리의 이미지에 먹칠을 하려는 또 다른 목표를 설정하고 있음이 또 한번 분명해졌다.  그것은 한국언론의 당파적 의도성, 최소한 선정성이란 밑거름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임은 물론이다. 그리고 검찰과 언론의 이런 주고 받기는 이제 '있는 것 뒤틀기'에서 '없는 것 만들어내기 단계'에 까지 접어든 것이다.

재판 자체가 비상식적인 상황에서 만들어 졌다. 뇌물을 주는 것도 죄인데 곽영욱이 이것을 숨기려 들지 않고 오히려 돈을 주었다고 박박 우기는 데에서 시작된 재판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공판 첫머리에서 곽영욱이 '돈을 직접 주었다'는 조서내용을 부인하고 '의자에 놓고 나왔다'로 진술을 바꿨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뇌물사건에서는 뇌물공여자의 진술이 일관되느냐의 여부가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순간적으로 '양심과 상식을 되찾은 이 사람이 바로 의적 아닌가'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하지만 공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곽의 진술번복은 곽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 검찰의 요구에 의한 것이라는 심증이 점점 깊어졌다.

특히 경호원에 대해서는 신문과정에서의 진술과 재판정에서의 증언이 틀린다는 이유로 이틀씩이나 불러 닥달을 한 검찰이 정작 자신들의 손아귀에 있는 곽의 증언번복에 대해서는 비교적 태연했던 상황을 떠올리며 심증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검찰로서는 곽이 여럿이 있는 자리에서 한 총리와 돈봉투를 주고 받을만한 상황이 아니었다는 깨달음이 뒤늦게 왔을 것이다. 한 총리의 옷차림이 그 자리에서 두툼한 돈봉투를 받아 넣을 만큼 큼지막한 호주머니가 달려있지 않다는 데에도 생각이 미쳤을 것이다. 그렇다면 '직접 주었다'는 주장을 계속하다가 깨지느니 차라리 처음부터 곽의 증언을 번복시키는 것이 낫겠다고 여겼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의자에 놓고 나온 봉투를 한 총리가 어떻게 챙겼다고 해야 설득력이 있을까하고 계속 고민하던 중 현장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서랍장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무릎을 쳤을 것이다. 없는 것을 만들어 내는 데에는 상상력이 필요한 법인데 이번 사건에 대한 검찰의 상상력은 수사과정에서 확정된 것이 아니라 이처럼 상황의 변화에 따라 계속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 때문에 때로는 획기적으로 바뀌기도 하고 때로는 없는 것을 만들어 낼 수도 있을 터이다. 이 단계에서 검찰은 이미 상식의 범위를 벗어나 '생각나는 데로 하면 되고…'의 최면상태에 빠져든 것 같다.


강기석 / 노무현재단 홈페이지 편집위원장
(전 경향신문 편집국장)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2&uid=1245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