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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5개월 전만 해도 원전 수출 "실속 없다" 폄하하더니…

5개월 전만 해도 원전 수출 "실속 없다" 폄하하더니…
(블로그 'Finding Echo' / 虛虛 / 2009-12-29)


한 '신문'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가장 빠른 길은 옛신문지 곧 '구문'를 보는 것입니다. 앞말 뒷말이 호응하는 논리 일관성을 갖춘 신문인지, 아니면 그때그때 말이 달라지는 카멜레온 같은 신문인지를 그로써 쉽게 판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알다시피, 이명박 대통령 덕분에 UAE 원전 수출이 타결됐다 하여 지금 조선일보 입이 귀에 걸렸습니다. 내놓는 기사마다 이명박 위인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칭송 일색입니다. 이를테면,

원전에 관해 깊은 식견을 갖고 있는 이 대통령이 입찰을 진두지휘 했고, 이 대통령이 사실상 총감독 역할을 했고, 이 대통령이 수주 전 과정을 막후지휘 했고, 이 대통령이 전화로 상대 실권자의 마음을 움직였고, 이 대통령이 아랍어 통역 같은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 썼고, 이 대통령이 패키지프로그램까지 마련하게 시켰고, 이 대통령이 막판에 UAE로 직접 날아가 외교 총력전의 마침표를 찍었고, 기타 등등 기타 등등.

이 모양의 조선일보를 보다 보면, 이번 수주 건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 대통령 혼자서 해낸 이 대통령의 개인 작품이고, 원전 건설에 평생을 바친 다른 사람들은 기껏해야 엑스트라 내지는 '시다바리'에 불과한 것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여기서 잠깐. 자신들이 보기에도 너무 오버했다고 느꼈는지, 29일자 사설에선 구차하게 <40년 만에 세계 최고에 오른 원전 기술력>(제목)을 치하하고 나섰더군요. 막판 정상외교의 역할도 컸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경쟁력을 갖추지 못했더라면 그것도 통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말에요. 어제 사설에서 "원전, 군사무기와 같은 거대 비즈니스는 정상 외교 능력에 크게 좌우된다"고 거품 물던 걸 금세 잊었나 봅니다. 각설하고,

그러면 도대체 얼마나 남는 장사이기에 이 대통령이 "입술이 쩍쩍 갈라지고 터지도록" 고군분투하고 "막판까지 마음을 놓지 못한 채" 노심초사했다는 것일까요?

조선일보에 따르면, 수주 액수만 물경 400억 달러(47조여 원)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랍니다. 발전소 시공 등 건설 부문의 수주액만 200억 달러로, NF쏘나타 100만대를 수출하는 금액과 맞먹고, 신규 고용 창출 효과도 11만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또 원전 수명 60년 동안 운전, 기기교체 등의 운영에 참여해 추가로 200억 달러를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뿐입니까. 세계적으로 석유와 석탄 값이 오르고 탄소 배출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면서 원자력 발전이 제2의 전성기를 맞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앞으로 세계 각국에서 총 수천조 원이 넘는 시장이 창출될 전망이랍니다. 참으로 어마어마한 국가적 경사 아닙니까.

비록 미국 웨스팅하우스의 특허기술을 사용하는 부분이 아직 남아 있긴 하지만, 이것도 우리 능력으로 볼 때 이런 몇 가지 기술도 경제성만 확보되면 개발하는 것은 시간문제이고, 원전 수출로 완전한 기술 자립도 멀지 않다는 게 조선일보의 설명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불과 5개월 전만 해도 조선일보 지면에서 이와는 전혀 다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는 것, 음색이 다르다 못해 원전 수출을 "폄하하는" 그런 목소리가 새나왔다는 것을 아십니까.

<원천기술 없어서… UAE 원전 수출 '속 빈 강정' 될라>. 2009년 7월 04일자 조선일보 경제면(A18)에 실린 관련기사 제목이 이렇습니다.

요컨대 최종 입찰을 앞두고 핵심기술 가진 美 업체가 "사업 일부 넘겨라" 억지를 부리고 있어서, "우리가 해외 원전 수주에 성공하더라도 원천기술 부족으로 인해 실속은 외국업체에 넘겨주는 '속 빈 강정'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겁니다.

조선일보에 의하면, 우리는 현재 원전설계핵심코드와 냉각제 펌프, MMIS 등 3대 핵심기술을 독자 개발하지 못해 미 웨스팅하우스의 것을 빌려 쓰고 있는데, 까닭에 "UAE 원전을 수주할 경우 그 핵심인 냉각제 펌프와 MMIS 설비 공사 등은 웨스팅하우스에 넘겨야 할 상황"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원전 1기당 3,500억 원이 넘는 알짜 고부가가치 사업을 미국 측에 넘길 수밖에 없고, "웨스팅하우스의 이런 '딴죽'이 반복되면 2020년까지 800조 원대로 예상되는 세계 원전 시장을 원천기술 부족으로 눈뜨고 놓치는 상황이 현실화될 수도 있다"는 거지요. 조선일보는 그 뒤에 "핵심 기술력이 없으면 해외 수주를 해도 껍데기만 남을 수 있다"는 한수원 관계자의 말을 보태기도 했습니다.

핵심기술을 개발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조선일보는 비관적이었습니다. "2012년까지 3대 핵심기술 개발은 사실상 어렵다"는 겁니다. "개발도 안 된 기술을 해외 원전에 적용한다는 것은 무리한 발상"이며 "독자 기술을 개발하더라도 이를 이용해 원전을 짓고 안정적 운영을 하려면 10년은 족히 걸린다"나요?

조선일보는 다시 이틀 뒤인 7월 6일 <원전 수출해도 실속은 원천기술國이 다 가져가니>란 사설을 통해, "우리가 개발한 한국형 원전의 경우 원전설계핵심코드와 냉각재 펌프, 원전 계측제어시스템 같은 핵심기술을 웨스팅하우스에서 빌려 쓰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원전 사업을 따내더라도 실속은 웨스팅하우스가 챙기게 된다"며 어두운 측면만 부각시켰습니다.

이어, "기가 막힐 일이지만 웨스팅하우스의 요구를 무조건 거부하기도 어렵다"면서 "적절한 타협점을 찾는 수밖에 없다. 남의 기술을 빌려 쓰는 데 따른 설움과 한계다"고 개탄 통탄 한탄해 마지 아니 하였드랬습니다. 긍정적 효과와 장밋빛 전망으로만 버무린 작금의 사설과는 완전 딴판 아닙니까.

재미있는 것은 이런 조선일보의 논조에 대해 양명승 한국원자력연구원장이 다음날 곧바로 <原電 수출 폄하 말아야>(제목, A35) 한다고 반론을 게재하고 나섰다는 겁니다. "'원천기술 없어서…UAE 원전 수출 속 빈 강정 될라'는 기사를 보고 한국 원자력산업의 발전을 오랫동안 지켜본 필자로서는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는 게 그 이유.

양 원장은 이 글에서 "현재 한국이 추진하는 UAE 원전사업과 관련, 원천기술이 없어 해외 원전사업을 수주해도 속 빈 강정이 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은 지나친 우려다"고 지적하며 "웨스팅하우스가 공급하는 원자로 설비 부분은 전체 원전 공사비에서 놓고 보면 차지하는 비중이 5~6% 정도다"고 반박했습니다.

이번에 나온 박군철 한국원자력학회장의 인터뷰 한 토막도 빼놓으면 섭합니다. "국산화율이 95%지만, 핵심기술은 외국 것이어서 실속이 없다는 견해가 있다"는 질문에 대한 박 회장의 답변이 이렇습니다.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은) 폄하 세력 아니냐…." 운운.

참으로 놀랠 '노'자 아닙니까. UAE 원전 수출의 의의와 성과를 대서특필하고 이 대통령 띄우기에 여념이 없는 조선일보가, 불과 5개월 전만 해도 "원전 수출해봤자 실속 없다"는 식으로 부정적 보도를 일삼는 '폄하세력'이나 다를 바 없었다는 충격적인 사실 말입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구문을 통해 들통난 자신의 여러 얼굴에 대해 굳게 입 다문 채 말이 없습니다. "속 빈 강정"이요 "실속 없다"던 원전 수출이 느닷없이 한국의 미래를 책임질 대형프로젝트로 둔갑하고, "사실상 어렵다"고 손사래 치던 3대 핵심기술 개발이 갑자기 별것 아닌 문제로 차원을 달리하게 된 것에 대해서도.

'대한민국 일등신문' 조선일보에겐 이명박 대통령을 찬양하고 띄워 주는 것만 중요하지, 논리 일관성이나 신뢰성 책임성 따윈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것일까요?

 

(cL) 虛虛


출처 : http://v.daum.net/link/4934247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2&uid=1051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