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석칼럼] 세종시 수정론자의 3가지 죄 | |
김지석 기자 | |
4대강 사업과 더불어 세종시 문제가 정치적 블랙홀이 됐다. 두 사안의 향배는 이명박 정권 전체의 공과를 가늠할 핵심 잣대가 될 것이다. 특히 여야 사이 전선이 비교적 분명한 4대강 사업과는 달리 세종시 문제는 여권의 전면 분열과 수도권-비수도권 대립 격화까지 내포한 점에서 폭발력이 더 크다.
이 대통령을 비롯한 ‘세종시 수정론자’들은 이미 세 가지 심각한 죄를 짓고 있다. 첫째, 세종시법 무시는 현 정권이 그간 저질러온 탈법·불법 행태의 절정을 이룬다. 비정규직법 무력화 시도와 언론관련법 날치기 처리, 온갖 정부기관을 동원한 정연주 전 <한국방송> 사장 몰아내기 등 정권 차원에서 이뤄진 탈법·불법 행위는 한둘이 아니다. 이 대통령은 국민에게는 법치를 강조하지만 자신은 법 위에 있다고 여긴다.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 ‘나라의 기초를 튼튼히 하려고’ 등의 이유가 제시된다. 그가 아무리 진정성을 주장하더라도, 자신만이 나라의 앞날을 판단한다는 오만한 발상이다. 이런 인식과 정치 혐오가 결합해 행정 독재 또는 관료적 권위주의가 굳어진다. 과거 군사독재 체제에서 이런 모습을 지겹게 봤다. 2005년 소수 여당과 한나라당이 합의해 법이 만들어지고 이미 기반공사가 4분의 1이나 진척된 세종시가 무효화한다면, 앞으로 정부가 하는 모든 일이 불신받아도 할 말이 없다. 세종시 문제가 어떤 식으로 귀결되든, 수정론자들이 민주적 기본질서를 훼손한 원죄는 사라지지 않는다. 둘째, 국민적 가치 짓밟기다. 세종시법(신행정수도 후속대책을 위한 연기·공주지역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을 위한 특별법) 1조는 ‘수도권의 과도한 집중에 따른 부작용을 시정하기 위하여 … 규정함으로써 국가의 균형발전과 국가경쟁력의 강화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했다. 수도권 집중 완화와 지역 균형발전은 오래전부터 합의된 국가적 과제이고, 정부 부처 이전은 고심 끝에 선택된 핵심 수단이다. 부처 분리에 따른 일부 비효율은 그 하위 문제다. 물론 인구 50만의 세종시만으로 두 과제가 해결될 수는 없다. 정부가 이들 과제를 풀겠다는 의지를 갖고 꾸준히 정책을 개발해 실천해나가야 시너지 효과가 생긴다. 하지만 이 대통령과 여권에게는 이에 대한 진지한 문제의식이 없다. 이들은 세종시를 하나의 신도시 또는 충청권 민심의 문제로 축소시킨다. 국민을 속이는 행태다. 세종시 수정론에 반대하는 한나라당 내 친박 진영은 주요 근거지인 경상도 지역을 포함한 다수 국민의 분노를 일정 부분 반영한다. 셋째, 국민 분열이다. 정부는 조세·기업·부동산·교육·노동 등의 분야에서 가진 자 위주의 정책을 펴왔다. 여권 인사들은 지난해 촛불집회 이후 다수 국민을 적으로 몰아붙여왔다.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수도권과 비수도권, 충청권과 그 외의 비수도권을 갈라놓으려 한다. 세종시법을 무효화하려는 이들은 수도권이 더 커져야 한다고 강변한다. 모든 것이 좀더 확실하게 수도권 중심으로 돌아가는 ‘수도권 나라’를 만들어야 나라가 잘된다는 독단이다. 여기에는 수도권에 확실한 발판을 마련해야 정치적으로도 안전하다는 정파적 이해도 작용한다. 세종시 수정론자들의 이런 죄는 하나하나가 무겁다. 그런 줄 알면서도 밀어붙이는 거라면 죄가 더 크다. 지금이라도 상황을 바꾸고 싶은 생각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는 분명하다. 먼저 이제까지 한 일에 대해 진솔하게 사죄해야 한다. 그리고 수도권 문제와 국토 균형발전에 대해 확실하고 종합적인 해법을 내놓고 국민의 폭넓은 동의를 끌어내야 한다. 굳이 세종시 문제를 거론하고 싶으면 적어도 그다음에 국민의 뜻을 묻는 게 순리다. 잘못을 고칠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말기 바란다. 김지석 논설위원실장jkim@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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