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우리 앞에 놓인 파국
2010.12.01.수요일
물뚝심송
추정이 사실로 드러났다.
이명박 정권의 집권시기에 드러난 가장 충격적인 내용은 이 정권이 대북 정책에 있어서 사실상 아무것도 모른다는 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 동북아 정세가 뭔지, 북한 핵무장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전임 정권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접근했는지...
말 그대로 하나도 모르고 출발한 정권이라는 얘기다.
두둥~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초로 들려온 얘기는, 대통령 직속기구인 평화통일자문위원회를 통해서였다. 이 정권에서는 대북정책의 기조가 "북한정권 붕괴후 시나리오"에 한정되어 있다는 얘기였다. 우연한 인연으로 인해 평통자문위에 인적 네트워크가 있던 상황에서 내가 듣게된 그 얘기는 그야말로 암담 그 자체였는데...
이 정권에서는 어떤 근거에서인지 모르겠지만, 무조건 북한 정권은 이 정권의 임기내에 붕괴할 것이고, 그 붕괴 상황에 대비해서 대북정책을 조율한다라는 것이 기본적인 대북 인식이었고, 그게 이 정권의 대북 인식의 전부였다는 사실. 그 사실이 전달된 것이라는 얘기다.
아들 부시가 채택했던 "Anything but Clinton" 의 한국판인 "Anything but Roh(노무현만 아니면 돼)"를 채택한 이명박 정권은 처음부터 노무현이 추진했던 동북아 균형자론 따위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그리고 추진한 정책은, 일체의 부정, 일체의 단절, 일체의 통제.. 모든 남북 협력의 중단이었다. 모든 남북간의 갈등은 햇볕정책의 부정적 결과물이며, 통일부 장관은 통일 자체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던 사람에게 맡기고, 북한은 오로지 타도의 대상, 붕괴의 대상, 국제적 무법자로 간주하고, 그런 식으로 집권 초중반을 보내 왔던 것이다.
그리고 오늘의 현실은, 무장공비 침투도 아니고, 잠수함 표류도 아닌, 해외 테러도 아닌, 대한민국 영토에 대한 정전협정 이후의 최초의 집중 포격으로 나타나 버렸다.
도대체 이 참혹한 결과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이명박 정권이 북한이 스스로 붕괴하기만을 기다렸다는 것은 알겠는데, 그런 비합리적인 태도를 미국도 용인을 했다는 말인가... 하는 의문이 남아 있던 것이다. 그 의문에 대한 답으로는, 미국내의 강경파들이 골치아프고 번거로운 북한과의 대화,협력은 걷어 치우고, 간단히 북한 정권의 붕괴를 유도하고, 북한정권의 붕괴시 미국이 보유한 강습 스트라이크 부대를 북한 지역에 상륙시켜 정권을 인수하면 되는 거라고 보고 있으며, 그 강경파, 즉 매파들의 논리를 백악관이 추인한 것이라는 추측 밖에 없었던 것이라는 얘기다.
불행하게도, 이 추정은 사실로 드러나 버렸다.
도대체 그 정체를 알기 힘든 위키리크스라는 사이트에서 지난 시간동안 미 국무성이 각국과 대화한 내용을 공개해 버린 것이다. 거기에 보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미 국무성은 실제로, 북한 정권 붕괴시를 대비한 시나리오를 준비해 왔으며, 그 시나리오를 남측 유력 인사와 협의해 왔고, 백악관은 이 결정에 대해 별다른 거부 없이 승인해 왔다는 얘기다.
결국 이명박 정권은 미국 국무성과 합의하에, 북한에 대한 대화/협력 대신, 북한 정권의 붕괴후 시나리오만을 준비해 왔다는 것이다. 이게 현실이라는 얘기다. 이 드러난 현실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일단 이 현실이 실제 현실인가를 검증하기 위해 동북아 정세를 이 관점에서 해석해 보기로 하자.
미국과 남한은 북한 정권의 붕괴후 시나리오를 준비하며 기다려 왔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 시나리오는 북한의 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개념계획 5029에 현실적으로 그려졌다. 이 개념계획은 단순한 개념계획의 차원에서 벗어나(개념계획을 가지고 실제 군부대가 훈련을 하지는 않는다.) 한미연합사 차원의 한미 연합 훈련으로 그 현실성을 테스트 받아 왔으며, 이에 대한 반발로 북한은 연평도에 포격을 가한 것이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미국과 남한이 원하는 북한 정권의 붕괴시 자신들 역시 결코 좌시하지는 않겠다는 메시지를 보내야 할 필요가 생긴다. 그런 이유로, 북한 정권 붕괴후 시나리오를 군사훈련 차원으로 현실화 시키는 미국 7함대 소속 핵항모 전단의 서해상 훈련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사사건건 북한을 옹호하고 나선 것이다.
6자 회담의 결렬 역시 설명이 된다. 조만간 붕괴하고 미국이 접수하게 될 북한 정권에 대해서, 굳이 경수로 지어주고 중유 공급해가며 협상을 할 이유가 미국에게는 전혀 없다. 6자회담의 결렬은 미국의 이익에 따라 결정된 것이다.
거기에 한발 더 나아가자면, 한 국가의 정권 붕괴 시나리오는 미국 정보부의 전매특허라고 할 정도로 여러차례 있었던 일이다. 단순히 내부적 이유로 붕괴하는 정권의 뒷 수습 차원이 아니라, 미국의 공작으로 정권 자체를 붕괴시키고, 그 수습을 빌미삼아 미군이 진주하는 시나리오는 세계 곳곳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시나리오가 된다.
동북아 정세가 제네바 합의와 남북 대표회담 및 공동 성명이후로 연하게 안정되어 가는 것처럼 보이다가 급작스럽게 경색되면서 위기감이 고조된 이유조차도 아주 명확하게 설명이 된다. 붕괴될, 혹은 조만간 붕괴시킬, 북한 정권하고 무슨 협상이란 말인가.
북한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정권 붕괴를 기다리는 미국과 남한에 대해, 전쟁인가 평화적 협상인가를 선택하라고, 그 선택을 압박하기 위해 도발을 한 것이다. 지극히 상식적인 반응일 수 있다. 그 도발에 대응하는 남한의 선택도 지극히 당연하다. 조만간 니들 정권 자체가 붕괴할 것이고, 붕괴 이후에는 우리가 미국과 함께 북한을 접수할 건데, 이런 사소한 도발로 대사를 그르칠 수는 없는 것이다. 확전을 방지하고, 시간을 버는 수 밖에. 압박을 압박으로 받지 않기 위해서는 묵살이 정석인 셈이다. 그 상황에서 발생한 민간인 몇몇의 피해는... 개무시.
이런 상황인 것이다.
애매한 추정이 이렇게 명확하게 현실로 드러난 상황. 그 상황 자체는 우리에게 엄청난 공포를 가져다 주고 있다. 이제 그 공포의 실체를 살펴보자.
노무현 시절, 우리가 채택한 동북아 정책의 기조는 "동북아 균형자론"이었다. 이 비젼의 핵심은, 우리가 한미일 삼각동맹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중-북-러의 반대 삼각동맹과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었다. 결국 학자들이 걱정하는 미소한 국력을 가지고도 어느 일방의 정책에 함몰되는 것을 피해, 동북아에서 벌어지는 대립의 균형추 역할을 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그 결과 남북간의 우호적인 분위기가 필수적인 것으로 부상되었고, 남북의 정상회담이 열리고, 주변 정세에 공동 대응할 수 있는 기초 정도가 형성된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고, 매우 취약한 안전판에 불과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불과 5년밖에 안되는 임기를 마치고 참여정부가 물러난 뒤, 새로 들어온 이명박 정권에서는, 동북아 균형자론 따위는 폐기되었고, 동북아의 절대강자 미국에 올인하는 쪽으로 정책 방향이 설정된 것이다. 그 대목에서 북한 정권 붕괴후 시나리오가 등장하면서, 매파들이 장악한 미 국무성과의 협조하에, 남북간의 협력은 도외시하고 북한 정권의 붕괴를 기다리는, 혹은 물밑 작업을 통해, 북한 정권의 붕괴를 앞당기는 정책이 구사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 경우, 실질적으로 북한 정권이 위험해지는 소요 사태가 발생한다면, 미국은 남한의 협조하에, 클린턴 시절 94년도에 한반도를 위기로 몰고 갔던 바로 그 상황, 북폭 계획을 발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단순한 북폭이 아니라, 한미연합사 관할의 미군 강습부대가 실제로 북한 영토에 상륙하여, WMD를 무력화 시키고 북한을 접수하는 계획이 발동된다는 점이다.
94년 당시 준비되었던 계획에 의하면 북한의 전지역은 72시간내에 장악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공포의 실체는, 이 72시간 동안 남한의 수도권에서는 500만에 달하는 피해자가 발생하고, 80%에 달하는 기반시설의 파괴가 벌어진다는 점이다. 휴전선 이북에 근접 배치된 북한군 포병의 화력은, 오산 이북 지역의 거의 모든 시설을 파괴할 것이고, 사정거리 300Km 이상의 북한군 보유 미사일 화력은 한반도 남부지역의 공업시설까지 대부분 파괴해 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게 94년 당시 시뮬레이션의 결과였다.
거기에 북한은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미군 강습부대가 만에 하나 이 핵무기 시설을 조기에 장악하지 못한다면, 남한 지역에 핵공격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
미국은 사실상 잃을 것이 없다. 미국이 한반도에서 바라고 있는 것은, 한반도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안전이 아니다. 동북아 정책의 입장에서, 미국이 중국의 확장을 제압하고 동북아의 패권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 목적이 위협받지 않는다면, 미국은 한반도에서 천만명이 죽어간다 하더라도 아무런 손해가 없다는 얘기가 된다.
미국은 강습을 통해, 북한 지역을 장악할 수도 있다. 물론 중국의 개입이 없다는 전제하에서이다. 그러나 바로 여기에 우리가 느끼는 공포가 존재한다. 미국의 이익을 위해 발현되는 북한정권 붕괴후 시나리오에서는 "우리는 다 죽는다" 라는 것이다.
우리가 느끼는 공포의 실체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런 참혹한 시나리오에 우리 손으로 뽑은 이명박 정권이 맹목적으로 동조하고 따라가고 있다는 것이다.
말은 쉽다. 북한 정권이 모종의 이유로 붕괴한다. 그러면 우리는 미군과 함께 북한을 접수하러 출동한다. 그리고 북한 정권을 접수한다. 한반도는 미국의 관할하에 자유 민주주의로 통일이 된다.
그러나 그 통일의 실체는 살아있는 시체들의 통일이라는 점이다.
물론 남한 지역에 거주하는 모든 국민들이 죽는 것은 아니다. 시뮬레이션의 결과는 많아야 오백만의 죽음을 얘기하고 있을 뿐이다. 오천만 인구중의 십분의 일에 불과하다. 그러나 오백만이 죽었을 때, 당신들의 가족, 부모, 자녀, 부인과 남편, 연인, 당신이 알고 있는 수십명 중에 서너명은 죽고, 반정도는 다친다는 소리다. 그리고 당신이 일하던 직장은 불타오르고, 당신이 살던 집은 폐허가 되고, 논과 밭은 황무지가 된다는 소리다.
사는게 사는게 아닌 상황이 올 것이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50년 이상 과거로 회귀하게 될 것이다. 당신은 그 상황을 받아 들일 수 있겠는가?
이것은 실질적인 전멸이며, 현실적인 멸망이다. 지하 벙커에서 살아남고 해외로 도주할 여력이 있는 사람들만의 통일을 위해 당신은 이런 시나리오를 받아 들일 수 있겠는가?
연평도에 포탄이 수백발 떨어지고 천명이 넘는 주민들이 집을 잃고 인천의 찜질방에서 기거하고 있다. 두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이거 보고 경악을 하고 분노하는 당신들, 북한에 대한 보복을 외치는 당신들, 당신들이 경악하고 분노하는 상황은 새발의 피도 못되는 상황이다. 당신들이 당신들의 감정에 따라 외치는 주장들은 지금 현 정권과 미국이 함께 추진하는 "북한 정권 붕괴후 시나리오"에 비하면 순진하기 그지없는 상황에 불과하다.
이런 비극을 유발할 가능성에 대해 생각은 해 봤는가?
파국은 피해야 한다.
미국의 입장에서야 동북아 패권을 유지하기에 도움이 되는 상황일지 몰라도 한반도에 거주하는 우리들의 입장에서는 그 시나리오는 파국에 다름 아니다.
이 파국을 막기 위해서는, 우리 손으로 뽑은 우리들의 지도자에게, 파국을 피할 수 있는 정책을 세우라는 명령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안이 없는 것이 아니다. 학술적으로 미흡하고 위험을 헷징하기에 부족한 이론이라 하더라도, 한미일 삼각동맹과 북중러의 반삼각 동맹에 등거리를 유지하며 줄타기 외교를 해야 할 시점이다. 그게 동북아 균형자론이 아니라도 좋다.
단지 미국의 파괴적인 시나리오에 맹목적으로 동참하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 이명박 정권이 그 파괴적인 시나리오를 고집한다면, 더 늦기 전에 정권 자체를 바꿔 버려야 한다.
그게 파국을 막는 길이다. 우리들이 이 한반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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