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지역 신문사의 반성문
때는 1999년 5월 어느 봄날. 날씨는 따뜻했는지 모르겠지만, 시대는 차가웠다. IMF 시대, 돈 없는 정부는 희대의 악법인 ‘민자유치법’을 제정해서 대기업들에 고속도로와 사회 인프라를 지어달라고 빌고 있던 시절이었다. 정부가 그 꼴인데, 지역 신문사의 사정은 말해 무엇하랴. 도미노 쓰러지듯 무수히 쓰러져 가던 시절이었다. 돈 안 되는 지역 신문사를 운영하는 것은 반쯤은 미친 짓이었다. 더더군다나 새로 돈을 들여 창간한다는 것은 좋게 쳐줘도 몽상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도 차가운 현실과 폐허 위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몽상을 실천해 버렸다. 이름은 경남도민일보였다. 한겨레 신문과 비슷한 방식으로, 도민 주주들을 모았다. 어렵게 어렵게 사람들과 돈을 모아 총자본금 9억 5000만 원. 이 단순하고 간명한 숫자는 경남도민일보의 모든 것이었다. 당시 필자는 울산에서 얌전히 공부 중인 고등학생이었기에 그들이 그 어려운 1999년을 어찌 넘겼는지 알지 못한다. 어쨌든 그들은 새천년을 맞았고, 필자는 대학에서 처음으로 경남도민일보를 볼 수 있었다. 얇은 두께의 신문이었다. 한겨레도 얇았지만, 그들은 더욱 얇았다. 그들이 얇은 신문이 찢어질세라 조심조심 써 내려간 기사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노동자들과 농민들과 고작 몇 사람만이 나와서 운동하는 시민단체들이었다. 경남에서 일어난 이런저런 일들을 적기에도 부족한 지면에, 유독 약자의 애환이 많이 있었다. 소중한 것은 쉽게 잊어버린다고 하던가? 경남도민일보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이만한 지역 신문을 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다. 먼저 중앙에서 우리 진보개혁세력이 이기는 것이 우선이라고 믿었으며, 아무리 작은 집회를 열더라도 경남도민일보만은 꼭 함께해 주었기에 너무 쉽게 생각해 버린 것이었다. 마치 어머니가 늘 옆에서 해주시는 밥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는 것처럼. 내가 사회에 나오자, 경남도민일보는 그렇게 쉽게 잊혀 갔다. 사회에 나오자, 같은 경남에 있다 하더라도 경남도민일보를 보기는 참으로 어려웠다. 사장이 도민일보 기자와 친한 관계이거나, 상당히 진보적 성향을 가지고 있지 않은 다음에야 도민일보를 사무실에서 볼 일이 없었다. 아주 가끔 도민일보를 스쳐 보기도 했지만, 그건 대학동기를 만날 가능성보다도 낮았다. 그러던 2006년 어느 날. 회사생활에 한창 재미를 올리고 있던 무렵이었다. 회식자리였는데, 나는 젊은 직원답지 않게 회식자리를 좋아했다. 신나게 시사 논쟁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근현대사를 전공한 죄(?)로, 지금 50~60대 어르신들이 아련히 기억나는 정치인을 필자는 이력까지 줄줄 욀 수 있으니 상사와도 말이 통했다. 어찌 보면 그게 하나의 처세술이 아니었나 싶다. 그런데 그날은 경남 지역에 관한 이슈였다. 필자는 꿀을 먹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경북 사람이었으며, 실제로 투표일이면 경북 경주 고향까지 애써 올라가 투표했다. (생각해 보니 병신이네. 부재자 투표를 하면 될 것을….) 나는 내 삶이 몽땅 담겨 있는 경남을 전혀 몰랐던 것이다. 이젠 경남을 좀 알아야겠다. 굳이 벼락치기 공부하듯이 알 필요는 없어도, 어찌 돌아가는지는 감으로라도 알아야겠다. 그렇다면 신문을 보자. 어느 신문을? 경남에는 그래도 만 부 이상 발행하는 신문이 4개 정도는 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신뢰를 할 수 없었다. 토호와 결탁되어 있고, 정치판에 휘둘려 이리저리 움직이는 지역 신문. 공무원과 유착하여 관공서에 신문을 대고, 광고를 따면서 도청 홍보지로 전락해 가는 지역 신문.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 나는 기억 한구석에 박아둔 경남도민일보를 떠올렸다. 나는 서둘러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지역 신문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깔끔한 디자인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더 놀란 것은 웹 표준을 지키고 있었다. 필자는 리눅스를 가끔 쓰는데, 당시 웹 표준을 지키는 사이트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경남도민일보 홈페이지는 리눅스, 모질라(파이어폭스의 전신)에서도 깔끔하게 돌아갔다. 이건 돈의 문제가 아니었다. 웹을 공부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성의의 문제였다. 경남도민일보는 온라인을 성의 있게 관리하고 있었다. 게다가 필자가 모르는 사이 경남도민일보는 이미 지역에 넓게 스며들어가고 있었다. 발행 부수는 어느덧 5만 부가 넘어가고 있었고, 모두 유가구독이었다. 어느새 경남의 2번째 언론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었다. 나는 안도했다. 먼저 토호들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언론이 살아남았다는 것에 안도했고, 내가 깊은 안갯속을 더듬는 느낌이 들 때, 사실대로 말해 줄 언론이 있다는 것에 안도했다. 내가 경남을 곧게 알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특히 경남도민일보의 온라인 발전은 지방언론사로서는 엄청날 정도였다. 자체적으로 메타블로그 사이트를 만들고 있었으며, 그건 구색용이 아니라 실제로 잘 돌아가고 있었다. 한 번쯤은 들어봄 직한 ‘김주완-김훤주의 지역에서 본 세상’이라는 블로그는 얼마 전 방문자 수 1000만 명을 돌파했다. 이 두 사람은 현재 경남도민일보의 편집국장과 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온라인의 성과는 오프라인에서도 이어졌다. 신문 마지막 지면 전체를 블로그 포스팅으로 채우는 날도 많아졌다. 늘 부족한 지면이지만 전체적으로 풍성해지고 있었다. 게다가 올 상반기에 이미 스마트폰 전용 홈페이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또한, 지방선거시기부터 트위터 포스팅을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있었다. 경남도민일보는 차곡차곡 성과를 쌓아가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개혁적인 어느 지방 언론사의 성공스토리에 불과하다. 우리가 잘 모르지만 요소요소에 이런 언론사들은 하나씩 있었다. 당장 생각나는 것도 김두관의 남해신문, 조선일보를 몰아낸 옥천의 옥천신문, 강원도민일보 등이다. 아마 전국에 수십 개는 될 것이다. 그렇다. 이것만을 말한다고 하면, 필자 돌 맞아 죽을 것이다. 20세기 다시보기나 쓸 것이지…. 필자가 오늘 이렇게 글을 쓰게 될 결정적 계기가 있었다. 아시다시피 김태호 전 총리 후보자는 경남사람이다. 어쨌거나 경남 사람들에게는 김태호는 키워주고 싶은 인물이었다. 김태호가 총리 후보자로 지명되자, 경남 사람들의 정서는 대부분 이랬다. “우야든동 잘 돼야 할 낀데…” 김태호가 낙마했다. 경남 사람들은 대부분 아쉬워했다. 대부분의 경남 언론들도 이런 심정을 대변했다. 그러나 경남도민일보는 달랐다. 물론 개혁적 언론이니까 김태호 낙마를 ‘당연한 결과’로 평가하고, 정부에 대해 한 소리 시원하게 쏟아붓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공식’일 것이다. 허나 뜻밖에도 경남도민일보는 편집국장이 직접 아래와 같은 기사를 대문에 실었다.
맹세컨대, 경남도민일보는 김태호가 경남도지사 시절 불편한 언론이었다. 필자가 보기에 김태호는 이명박과 성격이나 성향이 매우 닮은 사람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에게 오랫동안 비판의 날을 겨누고 있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지역신문이 도청과 도의회(한나라당 90%)와 모든 토호세력과 모든 여타 지역 신문을 완전히 장악한, 임금이나 다름없는 도지사에게 칼날을 세우기에는 더더욱 어려웠다. 그래도 경남도민일보는 비틀거리면서도 끝까지 칼을 겨누고 있었다. 그럼에도 경남도민일보는 더욱 감시하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사과하고 있다. 감동이다. 필자는 참 복 받은 놈이다. 경남에 살다 보니 김두관에 감동 받고, 경남도민일보에 감동 받고. 노무현 이후 감동보다는 분노와 울분을 참으며 사는 딴지스들에게 미안할 정도로 필자는 복 받았다. 보너스 하나 더. 김태호 낙마 이후 추석이 되었다. 신문사에는 추석은 신나는 명절이다. 뒷돈과 선물이 쌓이기 때문이다. 물론 경남도민일보야 애초에 큰돈을 줄 사람도, 그걸 받을 언론도 아니다. 그래도 소소한 인연으로 쌓인 선물 정도야 애정으로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 지역 신문은 선물을 거부하기 어렵다.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좁은 경남 바닥에서 괜히 상대를 서운하게 할 이유는 없다. 또한 그 단위가 좃중동 찌라시들처럼 뒷주머니 찰 정도도 아니니까 더더욱 그렇다. 감시하는 사람도 없을뿐더러, 고맙게 받아주는 것이 미덕이라는 암묵적 지역 정서도 받는 이의 부담을 덜게 한다. 결국 어쩔 수 없이 경남도민일보도 받았다. 하지만 바로 보낸 이의 이름으로 기부를 해 버린다. 선물 보낸 이는 본의 아니게 선행에 동참한 셈이 된다. 어쩌다 이렇게 철저한 언론이 되었을까? 그 비밀은 1999년 창간 당시로 돌아간다. 경남도민일보는 창간과 더불어 아래와 같은 21가지 약속을 한다.
…… 이 약속이 골수에 새겨져 있기 때문에 가능한 행동이다. 물론 위와 같은 약속을 하기는 쉽다. 게다가 웃기게도 대한민국은 화려한 약속으로 가득 찬 나라다. 독재를 한 이승만과 박정희가 ‘자유당과 민주공화당’을 만들었고, 사람들의 피로 집권한 전두환이 ‘민주정의당’을 만들었다. 독재자들은 자유와 민주, 정의를 약속했다. 수많은 언론이 위와 비슷한 약속을 하고 탄생한다. 그런데 조금 규모가 커지고, 배가 부르기 시작하면 이 약속을 철저히 지키기보다는 ‘탄력적 해석’으로 합리화하는데 더 바빠진다. 위와 같은 약속들이 지켜지려면 절대적으로 필요한 한 가지가 내재되어야 한다. 바로 반성과 성찰이다. 경남도민일보는 반성과 성찰을 하는 신문이다. 경남지역 딴지스들은 꼭 경남도민일보를 받아보길 바란다. 씨바 이건 상업인증소 기사가 아니다. 진심이다. 경남도민일보 : http://idomin.com 전화: (055)250-0100
딴지칭찬하기운동본부 임종금 ※ 본 글에는 함께 생각해보고싶은 내용을 참고삼아 인용한 부분이 있습니다. ('언론, 학문' 활동의 자유는 헌법 21조와 22조로 보장되고 있으며, '언론, 학문, 토론' 등 공익적 목적에 적합한 공연과 자료활용은 저작권법상으로도 보장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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