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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나를 믿느냐? 그러면 따라 오라

나를 믿느냐? 그러면 따라 오라
(서울대 경제학부 / 이준구 / 2010-04-28)


1. 머리말

‘한반도대운하’의 악몽에서 채 깨어나기도 전에 ‘4대강 살리기’라는 한층 더 끔찍한 악몽에 시달리게 되었다. 단지 악몽이었으면 깨어나는 순간 훌훌 털어버릴 수 있건만, 4대강사업의 해독은 영영 깨어날 수 없는 악몽이기에 더욱 두렵다. 이 땅의 생태계가 온통 뒤집혀 버릴 텐데, 그 속에 평화스럽게 깃들이고 살던 뭇 생명들에게는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아닐 수 없다. 온 천지에 죽음의 씨앗을 뿌리면서 그것을 ‘살리기’라고 우기는 뻔뻔함에 기가 막힐 따름이다.

한반도대운하를 4대강 살리기로 간판만 바꿔 달았을 뿐 대규모 환경 파괴의 본질에는 눈곱만큼의 변화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대운하사업에 반대하던 사람들이 고스란히 4대강사업 반대로 옮겨가게 된 것이다. 이제는 더욱 분명해졌지만 “대운하사업을 하지 않겠다.”는 말은 국민의 의사를 떠받들겠다는 뜻이 아니었다. 시끄러우니까 입을 막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며, 내 방식대로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선언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

정부의 입장에서 대운하사업의 포기를 일종의 후퇴로 받아들이고 있을지 모른다. 대통령선거 때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외쳐대던 공약을 여론에 밀려 포기할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한 가지 역설적인 점은 4대강사업으로 간판을 바꿔 달면서 반대여론을 더 쉽게 억누를 수 있는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약간의 체면을 잃는 대신 실제로는 그보다 몇 배나 더 큰 실속을 차린 셈이다.


2. 4대강사업의 정치화

대운하사업은 기본적으로 경제적 사업의 성격으로 제시된 것이었기 때문에 쉽게 그 맹점을 집어낼 수 있었다. 그 사업이 뛰어난 경제성을 갖고 있음을 선전하기 위해 비용-편익분석 결과를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녔지만, 결과적으로는 스스로 엉터리였음을 선전하고 다닌 꼴이었다. 자기네들이 생각하는 비용과 편익을 낱낱이 공개하면 여기저기서 허점이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국민이 대운하라는 것은 경제성이 전혀 없는 허황된 사업임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 일에서 배운 바가 있었는지 4대강사업 얘기를 꺼내면서 비용-편익분석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비용은 한반도대운하 때보다도 훨씬 더 크게 잡았으면서도, 사업의 편익으로 내세우는 것은 뜬구름 같은 생태복원이니, 용수 확보니, 홍수 방지가 고작이었다. 이 세상의 똑똑한 경제학자를 다 모아 놓더라도 이런 것들의 경제적 가치를 정확히 계산해낼 수 없다. 비경제적 사업으로 포장함으로써 명확한 반대의 근거를 찾을 수 없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 탁월한 술수에 박수갈채를 보낸다.

바로 여기에서 대운하사업과 4대강사업의 결정적 차이를 찾을 수 있다. 전자는 경제적 사업으로 제시되었기 때문에 바로 그 맹점이 드러났지만, 후자는 비경제적 사업으로 포장되어 제시되었기 때문에 그 마각이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정부가 적극적 홍보를 통해 반대여론을 헤쳐 나갈 수 있다고 자신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4대강사업의 타당성에 대한 논의가 과학적, 경제학적 근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사이비 논리가 득세할 수 있는 것이다.

대통령과 정부는 기회 있을 때마다 우리나라가 곧 물 부족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고 겁을 준다. 갈증에 시달리지 않으려면 4대강을 모두 호수로 만들어야 한다고 부르짖는 모습은 자못 비장하기까지 하다. 마치 광야에서 무지한 세상을 향해 홀로 진리를 외치는 선지자와도 같은 모습이다. 이렇게 믿음의 차원에서 4대강사업의 타당성을 설득하고 있기 때문에 평소부터 대통령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사업의 본질적 타당성에 대해 생각조차 하지 않고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낸다.

이게 바로 4대강 살리기의 실체 강을 살린다는 4대강사업으로 인해 죽어간 물고기 떼의 모습입니다. 이게 바로 이명박식 강살리기 실체입니다. ⓒ 운하백지화운동본부

이런 의미에서 볼 때 4대강사업의 성격은 철저하게 정치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사업에 대해 찬성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의 면모를 관찰해 보면 흥미로운 결론을 얻게 된다. 아무리 뛰어난 비판적 지성의 소유자라 할지라도 현 정부를 지지하고 있으면 절대로 4대강사업에 공공연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지 않는다. 입속으로는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말을 웅얼거릴지언정 결코 그 말을 입 밖에 내지 않는다. 사소한 문제를 대문짝만한 기사로 침소봉대하는 보수언론이 4대강사업에 관해서만은 모르쇠로 일관하는 이유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과 정부는 이렇게 4대강사업의 정치화를 통해 편 가르기에 성공했다. 경제적 타당성과는 무관하게 대통령과 정부를 지지하느냐의 여부에 의해 4대강사업의 찬성 여부를 결정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지금 우리가 보는 정도의 반대 여론이 형성된 것만 해도 기적일지 모른다. 지난 대선에서 대통령이 얻은 압도적 지지율을 생각해 보면, 편 가르기가 이루어진 상황에서 반대 여론은 미미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4대강사업이라는 것이 얼마나 형편없는 사업인지를 웅변으로 말해주는 훌륭한 증거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편 가르기를 통해 거센 반대 여론을 뿌리치고 공사를 강행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4대강사업의 정치화는 탁월한 전략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집권세력의 근시안적 관점을 떠나 사회 전체의 관점에서 볼 때 큰 비극의 씨앗을 뿌린 셈이 되었다. 민주화가 이루어진 이래 요즈음처럼 온 사회가 어수선하고 분열과 갈등이 극심한 때가 있었던가? 이렇게 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를 정부의 근시안적 편 가르기에서 찾을 수 있다.

이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목적은 달성했는지 모르지만 우리 사회에는 치유되기 힘든 상처를 만든 결과를 가져왔다.


3. 물 부족 국가?

4대강사업의 정치화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것은 우리나라가 곧 물 부족 국가가 된다는 논리다. 언제 어떤 규모로, 그리고 그렇게 될 확률은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막연하게 우리나라가 곧 물 부족 국가가 된다는 말만 되풀이되고 있다. 그것은 일종의 예언과도 같은 성격을 갖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한지에 대한 논쟁은 철저히 믿음의 차원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물 부족 국가가 된다는 논리는 “나를 믿으면 그대로 따라 오라.”는 신호탄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누가 어떤 근거에서 우리나라가 물 부족 국가가 된다고 예측을 했다는 말인가? 외국의 한 연구기관에서 그렇게 말했다는 것 같지만, 과연 엄밀한 검증을 거친 예측인지 도무지 믿을 수 없다. 상식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잘 알지만, 외국의 이름 있는 체하는 연구기관 중에도 엉터리가 너무나 많은 실정이다. 심지어 돈만 주면 원하는 연구결과까지 만들어주는 기관도 있을 정도다. 외국의 연구기관이 한 말이라고 무조건 믿어야 한다는 것은 한심한 사대주의적 작태일 뿐이다.

우리가 물 부족에 시달리게 될지는 간단한 상식만으로도 충분히 답을 얻을 수 있는 문제다. 물에 대한 수요와 공급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지 생각해 보면 바로 답이 나올 수 있다. 우선 물의 공급 측면부터 생각해 보자. 앞으로 한반도 주변의 강수량이 급격히 줄어든다는 과학적 근거라도 있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지난 몇 십 년 동안 강수량이 계속 줄어들어 왔던 것일까? 기후 변화로 인해 강수량에 큰 변화가 올 수도 있지만, 그것이 반드시 강수량의 급감으로 실현된다는 과학적 근거는 전혀 없다.

결론적으로 말해 공급 측면에서 우리나라가 물 부족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고 자신 있게 예측할 만한 근거는 아무 것도 없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수요 측면을 살펴보기로 하자. 가까운 장래에 물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늘어날 요인이라도 있는 것일까? 내 생각으로는 물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게 만들 그 어떤 이유도 찾기 힘들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갑자기 물을 낭비하는 습관을 갖게 된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물에 대한 수요가 갑자기 늘어날 리가 없다.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는 것도 아니고, 산업구조가 물을 더욱 집약적으로 사용하는 쪽으로 바뀌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장기적으로는 인구가 감소추세로 바뀔 것이며, 산업구조도 물을 상대적으로 더 적게 쓰는 쪽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모두가 잘 알 듯, 서비스산업의 경우에는 세수하고, 설거지하고, 화장실 쓰는 데 필요한 물 정도로 충분히 유지될 수 있다. 우리나라 산업의 중심축이 농업과 제조업에서 서비스산업으로 이동해가고 있음을 모르는 사람은 없으리라고 믿는다.

이처럼 수요와 공급 어느 측면을 보아도 가까운 장래에 물 부족이 심각한 문제로 등장하리라고 예측할 근거를 찾기 힘들다. 우리가 물 부족에 시달릴 것이라는 주장은 종말론, 즉 세계의 종말이 곧 올 것이라는 주장을 연상케 한다. 뜬금없이 사람들에게 위기감을 심어준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기 때문이다. 머지않은 장래에 종말이 올 것이라고 외치면 사람들은 아무 근거가 없는 것을 알면서도 공연히 불안해진다. 바로 이런 불안감이 입만 열면 물부족이라는 주문을 외우는 사람들이 노리고 있는 바다.

백보를 양보해 언젠가 한반도에 언젠가 물 부족 문제가 대두될 수 있음을 인정한다고 하자. 설사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 해도 바로 지금 4대강 주변을 온통 헤집어 놓아야 할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만약 물 부족 문제가 현실로 다가온다면 그때 가서 4대강을 호수로 만들어도 아무 문제가 없을 테니까 말이다. 더군다나 이 정부가 가장 자랑으로 삼는 것은 속도전 능력이 아니던가? 단군 이래 최대의 토목사업을 3년만에 후딱 해치울 수 있는 정부가 뭐 하러 백년 앞을 내다보고 지금부터 공사를 서두르는지 모르겠다.

▲ 4대강정비사업의 낙동강 18공구 함안보 가물막이 공사 현장. ⓒ 오마이뉴스

경제학적 관점에서 볼 때 언제 닥칠지도 모르는 물 부족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많은 비용을 들여가며 생태계를 뒤집어 놓는 것은 졸렬하기 짝이 없는 정책이다. 돈이 남아돌아가 쓰레기통에라도 퍼부어야 할 상황이 아닌 바에야 이런 식으로 낭비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더군다나 현재 우리나라는 빠르게 늘어나는 국가부채 때문에 국제사회의 눈총을 받고 있는 현실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특히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생태계의 교란을 사회적 비용으로 인식하지 않는 태도는 저능에 가까운 경제학적 지능지수다.

결국 때가 되면 모든 진실이 낱낱이 밝혀지게 된다. 지금은 선지자처럼 물 부족 사태를 예언하고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짝퉁 선지자였는지의 여부가 백일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다. 또한 4대강 곳곳에 들어선 거대한 댐들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도 명확하게 밝혀질 것이다. 그런데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그 무모한 공사로 인해 환경이 워낙 대규모로 파괴되어 원상회복이 영원히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만약 조금의 노력만으로 쉽게 원상회복이 가능하다면 이렇게 집요하게 4대강공사를 반대할 이유도 없다.


4. 맺음말

무릇 정치를 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추진하는 정책이 가져올 영향에 대해 두려움을 가져야 한다. 비록 소신을 갖고 추진하는 정책이라 해도 국민에게 뜻하지 않은 악영향을 가져다 줄 수 있음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 된다. 더군다나 지금 벌이고 있는 4대강사업처럼 전 국민의 삶에 두고두고 영향을 미칠 사업이라면, 아무리 철저하게 사전 준비를 한 후 시작한다 해도 충분하지 않을지 모른다.

또한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회에 분열과 갈등의 씨앗을 뿌려서는 안 된다. 대통령과 정부는 자신의 임기 안에 모든 공사를 마무리해 버리면 국민이 이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리라는 계산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강물을 막고 있는 댐들의 시멘트가 채 마르기도 전에 그것들을 헐어 버려야 한다는 말이 나올지 모른다. 지금이 단계에서 충분한 논의를 거쳐 국민의 완전한 동의를 얻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수많은 학자들과 종교인들이 4대강사업에 결사반대를 외치는 이유는 단순하기 짝이 없다. 적절한 절차를 밟지도 않고 철저한 준비도 없이 마구잡이로 밀어붙이고 있는 4대강사업이 생태계에 되돌릴 수 없는 대재앙을 가져올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이런 위험성을 무시하고 오히려 속전속결로 공사를 마무리 지으려는 태도는 지각없는 만용일 뿐이다. 그까짓 풀 몇 포기 뽑혀 나가고 물고기 몇 마리가 죽어간들 무슨 문제냐는 안일한 생각으로 속전속결을 지시했을지 모른다. 얼마나 많은 죄 없는 생명이 죽어나가야 자신들이 위험하기 짝이 없는 불장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까?

 

이준구 /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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