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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세상읽기] 새뮤얼 곰퍼스의 명언 / 윤진호

[세상읽기] 새뮤얼 곰퍼스의 명언 / 윤진호
한겨레
» 윤진호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
“파업이 없는 나라를 내게 알려주십시오. 그러면 자유가 없는 나라를 보여드리겠습니다.”(새뮤얼 곰퍼스). 곰퍼스는 미국노동총연맹(AFL)을 창설하고 무려 38년간이나 위원장을 맡았던 미국 노동운동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이다. 평생을 노동자와 노동운동을 위해 헌신한 곰퍼스는 노동운동에 관한 수많은 명언을 남겼는데, 그 가운데서도 가장 유명한 명언은 아마도 글머리에 인용한 말일 것이다. 곰퍼스의 명언은 노사간, 노정간 갈등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는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서도 우리가 귀담아들어야 할 말이 아닌가 한다.

최근 정부는 철도 파업을 불법 파업으로 규정하고 철도노조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한편, 철도노조 간부 15명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체포에 나섰다. 이와 동시에 경찰은 전국공무원노조 사무실에 대해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압수수색을 실시하였다. 그런가 하면 정부의 노동정책을 연구하는 기관인 한국노동연구원은 공공부문에서는 처음으로 직장폐쇄를 단행하였다. 가히 노동자와 노동조합에 대한 엠비 정부의 총공세라 할 만큼 정부는 공공부문 노사분규에 대해 강경일변도의 자세를 보이고 있다.

과거에도 공공부문에서 노정간 충돌과 장기파업, 공권력 투입 등의 사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번 사태는 과거와는 다른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노사분규의 실마리를 정부가 스스로 만든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철도노조 파업의 경우 노사간 단체교섭이 진행중인 과정에서 정부 방침을 이유로 회사 쪽이 단체협약을 일방적으로 해지 통보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경우에도 박기성 원장이 부임하면서 단체협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한 것이 극단적인 노사갈등의 불씨가 되었다. 둘째, 정부가 사무실 압수수색, 노조 지도부 체포 등 공권력에 의존한 강경대응만 고집할 뿐 대화를 통한 해결 방법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즉 정부는 노조에 “항복이냐, 아니면 노동조합 와해냐”의 선택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이 모든 사태가 결국 대통령의 반노동적 태도와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달 공공기관 선진화 워크숍에서 “안정적인 평생직장을 보장받은 공기업 노조가 파업을 하는 것은 국민들이 이해하기 힘들고 이해해서도 안 될 것”이라며 “적당히 타협하고 가서는 안 된다”고 발언함으로써 헌법에 보장된 노동조합의 단체행동권을 부인하였다. 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공공기관장으로서는 대통령의 이러한 태도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고 이는 곧 단체협약의 일방적 해지와 파업에 대한 강경대응으로 나타난 것이다. 즉 과거에는 강경노조의 불법 파업이 문제였다고 한다면 지금은 강경정부의 노조 탄압 정책이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가 이처럼 공공부문 노조에 대해 강경대응을 고수하는 배경에는 공기업 노조의 파업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부정적인 태도도 큰 작용을 하고 있다. 파업으로 철도운행이 지연될 경우 불편을 겪게 되는 일반 시민들로서는 우선 노동조합을 비난하게 된다. 매일처럼 공공부문 노조의 파업을 격렬하게 비난하고 있는 보수언론의 논조도 이러한 비판 여론 형성에 큰 몫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곰퍼스의 명언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 헌법이 노동3권을 국민의 기본권의 하나로 보장하고 있는 것은 결코 노동자나 노동조합을 위해서만은 아니다. 노동3권이 침해되고 파업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한 나라는 곧 국민의 기본권과 자유마저 위태로운 나라이며 그렇게 될 경우 그 피해자는 단지 노동자나 노동조합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이 될 수 있음을 우리는 냉정하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

윤진호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