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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박근혜와 유시민, 그리고 정운찬

박근혜와 유시민, 그리고 정운찬
(서프라이즈 / 서영석 / 2009-11-18)


앞으로 3년이나 남은 차기 대통령선거를 전망한다는 건 조금 이른 감도 없지 않지만, 의외로 우리 유권자들이 대선에서만큼은 의외성을 배제해왔다는 점 등을 고려한다면, 현재로서 차기 대선은 한나라당의 박근혜 전 대표와 국민참여당의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양자대결로 굳어져 가는 양상이다.

사실 제1야당인 민주당에 여론의 주목을 받을만한 차기 대통령감이 없다는 것도 비극은 비극이다. 이명박 정권의 독주와 독선을 가능케 하고 있는 하나의 원인이 되고 있기도 하다. 민주당에 차기의 강력한 후보가 존재한다면 정권 이후를 생각해서라도 이명박 정권이 지금처럼 독주와 독선을 하지는 못했을 것이 자명하다. 촛불집회로 거의 죽다 살아난 이명박 정권이지만, 그들의 입장에서 걱정거리는 같은 당 안에 있는 박근혜 전 대표가 될 만큼 야당이 현재 무시당하고 있는 것은 부인하지 못할 현실인 듯하다.

사실 검찰과 경찰, 국정원과 국세청 등 4대 권력기관이 이 정권 들어서 정권의 반대자들에게는 거의 전두환 시대를 방불케 할 만큼 무리한 '탄압'에 열중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결국 따져보면 정권 연장에 대한 자신감이 뒷받침되지 않고서야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차기에 정권이 바뀐다면, 법과 절차를 무시한 독주와 독선, 전횡의 댓가를 뼈저리게 치러야 한다는 점은 뻔한 일이고, 과거의 사례를 볼 때 그러한 전망들은 실제 이들 권력기관의 운신과 행보를 제약하는 요소로 작용해왔다.

하지만, 차기 구도에서 여권의 핵심부가 야심 차게 내놓았던 정운찬 카드가 조기에 효력을 잃을 위기에 처하면서, 더불어 세종시로 인한 분란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내부적으로는 거의 '원수' 사이처럼 지내왔던 박근혜 계보와 여권 핵심 간의 갈등이 더욱 고조되면서, 사태는 조금 이상한 방향으로 발전되고 있는듯하다.

이는 여권 핵심부의 손발이 되고 있는 권력기관들엔 거의 재앙수준의 시나리오가 펼쳐질 듯이 보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즉 정운찬의 자멸로 여권 핵심부로서는 박근혜 전 대표를 대체할만한 더 이상의 카드를 잃은 셈인데, 이로 인해 차기 대선은 박근혜-유시민 양자대결구도로 갈 가능성이 보다 더 높아졌고, 이렇게 되면 누가 당선되더라도 현재의 여권 핵심부에는 지금까지 저지른 전횡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할 상황으로 가고 있다는 얘기다.

이렇게 되면 더 이상 4대 권력기관도 이명박 정권 핵심부의 뜻대로 움직인다는 보장도 없어진다. 누가 다음을 염려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게다가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권과는 달리, 박근혜 진영이나 유시민 진영 모두 이명박 정권에 대해서는 톡톡히 '열'이 올라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정권이 바뀐다면 그동안의 독주와 전횡에 대한 댓가를 톡톡히 치를 개연성이 훨씬 높아진 듯 보인다.

박근혜와 유시민.

이처럼 조기에 차기 구도가 양자대결의 양상으로 굳어져 갈 태세를 보이는 것은 사실 이명박 정권의 자업자득이라고도 할 수 있다. 지금은 거의 '맛'이 가버린 격이 됐지만, 사실 정운찬 카드는 이명박 정권의 회심의 카드였다. 최소한 뚜껑을 열기 전까지는 파괴력이 있을 것으로 예상이 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막상 패를 까보자 정말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인 격이 되고 말았다.

어찌 보면 이명박 정권이 정운찬 카드를 내놓은 시기는 다소 빨랐다고 할 수 있다. 촛불집회 이후 실추된 위신을 만회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의 결과였을 것이다. 사실 정운찬 카드가 성공하려면 이명박 대통령이 그 '희생양'이 돼야만 한다. 즉 이 대통령을 부인해야만 정운찬의 인기와 가치가 올라간다는 얘기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정치 현실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임명을 받아야 하는 총리로서 대통령을 부인하기에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너무 많이 남았다. 역설적인 얘기지만, 촛불집회도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 극 초반에 일어났기 때문에 정권이 무너지지 않았던 것과 유사한 상황이다. 지금 정운찬 총리가 이 대통령을 부인한다면, 즉 이 대통령이 추진하는 각종 정책들에 반기를 든다면, 그건 곧바로 아웃이다. 아직 임기의 반환점도 채 돌지 않은 상태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당초 예상과는 거꾸로 판이 흐르고 있다. 즉 정운찬 총리가 이 대통령의 무리한 국정운영을 견제하는 모양새를 취함으로써 국민적 지지를 확보하고, 이를 토대로 박근혜 전 대표를 무너뜨린다는 전략이 근본부터 무너지고 있다는 얘기다. 지금 정운찬 총리는 이 대통령의 견제 역이 아니라 대변인이요, 하수인이 되고 있는 격이 돼 버렸다. 이래서야 정운찬 카드는 사실 끝장났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뭐, 정 총리가 생체실험으로 그 악명을 높였던 일본의 731부대를 항일독립군 부대로 알았다는 어처구니없는 사실도 '차기후보 정운찬'의 몰락에는 하나의 양념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정치부 기자로 오랜 세월을 보내면서, 역대 정권에서 2인자를 주저앉히고 '대타'를 부상시키려는 노력이 성공한 예를 거의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전두환 시절 때는 심지어 장세동까지 차기로 거론되면서 노태우를 낙마시키려 했지만, 결국은 실패했다. 노태우 시절에는 온갖 꼼수를 부리면서까지 김영삼을 '아웃' 시키려 했지만 역시 물거품으로 끝났었다. 김영삼 때 역시 전철은 되풀이됐다. 다만, 그 대상이 이회창 씨였을 뿐이다.

이명박 정권도 박근혜 전 대표를 낙마시키려 정운찬이란 회심의 카드를 마련하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그 운도 아마 여기까지인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이명박 정권은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던 권력기관들을 총동원한다면, 박근혜 전 대표를 주저앉힐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두 정권을 거치면서 박 전 대표가 살아날 수 있었던 것도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물러터진 도덕주의 덕분이었다고 판단했음직 하다. 정연주 전 KBS사장이나 문국현 전 의원에 가했던 것과 같은 수준으로 권력기관이 가혹한 손길을 뻗친다면, 박 전 대표로서도 살아날 수 없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박 전 대표를 주저앉히면 뭘 하나. 대안이 없는데. 이런 상황은 거꾸로 실제로도 박 전 대표를 주저앉힐 수 없는 상황으로 몰아갈 공산이 크다. 김영삼 정권 말기, 검찰은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포기하다시피 한 선례도 있다.

야권의 상황은 조금 복잡하다. 현재로서는 유시민 외에 대안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그로서는 박근혜에 역부족인 것이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확실하게 이길 수 있는 후보가 아니라면 다른 대안이 나올 경우 주자가 바뀔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과연 어떤 대안이 나올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그러나 모두에 얘기했던 것처럼 우리 정치사에서 적어도 대통령선거에 관한 한 '혜성 같은' 신인의 등장은 없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상이 좀 그런 듯 보이기는 하지만, 면밀하게 따져보면 그렇지도 않다. 노 대통령은 이미 스타였고, 국민의 지지를 받을만한 이력을 충분히 쌓아왔던 것이다.

유시민 전 장관은 노 대통령이 가지지 못한 장점도 많이 갖고 있다. 게다가 최근 들어서는 노 대통령의 '정치적 적자'로서 스스로의 위치를 자각하고 있는 듯 보이기도 한다. 그가 17일 부산에서 했던 노무현 시민학교 강연을 들어보면 정치적 본능도 대선후보로서 역량을 유감없이 보이고 있다. 그는 "선거로 뽑았으니 임기 5년 동안은 참고 견뎌야 한다. 한나라당을 뽑으면 이렇게 되는구나 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면서 "지금 상황에서 많은 국민이 요구하는 것은 이명박 정부가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남은 임기를 보냈으면 하는 것"이라고 이명박 정권을 맹비판한 뒤 "만약 박근혜 의원을 시켜놓아도 같을 것이다. 지금 이명박 정부가 하는 정책은 4대강만 빼면 다 박근혜 의원이 주장했던 것 아니냐"면서 박 전 대표에게 강펀치를 날렸다.

또한, 한나라당이 정운찬이 안될 경우, 만일의 카드로 내세우고 있는 듯 보이는 정몽준 대표에 대해서도 과거 후보단일화 때의 비사를 소개하면서 "정몽준씨는 권력 분점을 요구했다. 노 대통령이 생각했을 때, 믿을만한 국정의 파트너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다 주어도 된다고 했을 것이다. 국가 운영에 충분한 능력이 되었다면, 믿음이 되었다면 반이 뭐냐 각료제청권 등 다 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겪어 보니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믿을 수 없기에 하나도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라고 한 방에 보내버리는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다.

사실 이명박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와 같이 정권과 치열하게 대립각을 세우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의 신사적인 태도는 이 같은 상황에서 감점요인이다. 유시민 전 장관이 본격적으로 정치적 행보를 취할 때 과연 어떻게 업그레이드될지 궁금하다. 현재로서는 박근혜에게 역부족이지만,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차기 대선도 역시 손에 땀을 쥐는 접전이 되리라고 예상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 그동안 프라이빗한 불운과 불행들이 겹쳐 활동이 좀 뜸했습니다. '유시민 프로젝트'도 재개됩니다. 그게 뭔지 궁금한 분은 http://blog.naver.com/sir0413/60091446526 이곳을 클릭해주세요. 그동안 메일 주셨든 분들은 내주 초 일괄적으로 답변드리겠습니다.

 

(cL) 서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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