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마당

제 1회 바보상 시상 보고서

제 1회 바보상 시상 보고서

2009. 10.9
딴지총수

 

제 1회 바보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2008년 5월 24일, 다음 아고라에 "한반도 물 길잇기 및 4대강 정비 계획의 실체는 대운하"라는 양심선언의 글을 올렸던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하 건기연)의 김이태 박사.


노무현의 '이의 있습니다' 포즈를 형상화했다. 아래는 크롬이다.

현 정권에 의해 지난 2년간 대운하 추진에 직, 간접으로 동원되었던 그 수많은 사람들 중, 자신의 양심에 따라 그 기만적 작태를 내부고발을 한 이는 그가 유일했다. 대한민국 전체에서 말이다.

그는 그러니까, 바보가 틀림없다.

문제는 시상 대상이 아니라 시상 자체 였다.

1주일 넘도록 통화를 시도하여 마침내 연결된 그에게 제 1회 바보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음을 통보하자, 그는 이렇게 그 수상을 거절하였다.

" 그 뜻은 너무 고맙지만 그렇지 않아도 저 때문에 고생한 주변 사람들이 많은데, 또 다시 그 분들을 힘들게 할 수는 없네요. 감사하지만 받을 수가 없습니다. 다른 곳에 기부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

백 번 이해갔다.

그저 시상식에 참석하는 것만으로도 적극적인 정치행위로 치부할 게다. 현 정권은. 그러고도 남을 인간들이다. 그에게 또 다시 고통을 안겨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여기서 포기하면 또 본지가 아니다.

이에 본지는 세계 시상 역사상 최초로 "막무가내 출장시상"이란 창조적 수상방식을 고안하기에 이른다. 막무가내로 수상자의 거처로 찾아가 그에게 막무가내로 상을 떠안긴 후 그냥 막무가내로 집을 떠나버리는 것이다. 수상자는 상을 수여, 당하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 본지는 그런 놈들이다.

하여 본지 '막무' 시상팀은 그의 주소를 추적, 10월 어느 야심한 밤, 막무가내로 그의 집 초인종을 눌렀다. 본지 '막무' 시상팀의 출현에 놀란 김박사. 그러나 어쩔 것인가. 이미 대문 앞에 버티고 선 산적 같은 자들을 말이다.


오른 손에 들고 있는 게 바로 '바보상'이다.

어쨌거나 커피라도 한 잔 대접하는 것이 세상 사는 사람들의 기본 예가 아니던가. 그렇게 자택잠입에 성공한 본지 '막무' 시상팀, 수시간에 걸친 회유 끝에 마침내 우격다짐으로 바보상을 일방적으로 떠안기는 미션을 완수하였다. 만세.

다음은 최초의 조우가 1차 정리된 후, 차분하게 마주 앉아 커피 한 잔을 사이에 두고 나눴던 대화의 일부다. 




총 : 박사님은 작년 5월 24일, 다음의 아고라에 그런 주장을 올리셨어요. 국토해양부 TF 팀으로부터 매일 매일 반대논리에 대한 정답을 내놓으라고 요구 받는다.. 왜 몰래 과천의 수자원공사 수도권사무실에서 비밀집단을 꾸몄느냐.. 왜 오가는 메일 및 자료가 보완을 요구하느냐.. 국민의 세금으로 하는 공공사업인데 왜 숨어서 비밀리에 해야 하나.. 4대강이 대운하다..

지금도 그 주장에는 후회가 없으십니까.

김 : 네.

단호하다.


총 : 알겠습니다. 그 이후에 고생 정말 많이 하셨는데 징계 받고 정직된 동안 급여도 안 나오고 생활면에서도 어려움이 많으시죠.

김 : 급여 안 나오는 거야 예상한 거니까...그런데 3년간 활동 제약이니까...

총 : 3년간 활동 제약이라 함은?
김 : 일단 학교 강의 나가는 것도 안 되고..
총 : 강의도요?

김 : 강의 안 되죠. 강의 나가는 거 안 되고. 해외에 연수과정이나 포스트닥도.. 연구내역도 없고.. 또 직장 내 최하등급이고.. 1년 연봉 계약자고.. 인사고과도 최하위고..

총 : 무슨 프로젝트를 하던 자동으로 최하등급이란 건가요?
김 : 그렇죠. 나올 수밖에 없죠. 무조건 7점을 까고 가니까.

3개월 정직이 다가 아니었다. 

총 : 급여는...?

김 : 급여는 당연히 줄어들었죠. 어차피 올해는 한참 못 받았고. 올해 책정된 것도 'E' 등급이니까. 하지만 그런 건 크게 상관하지 않습니다. 경제적으로 풍족해서가 아니라 좀 절약하면 되니까. 그런 건 괜찮은데... 활동의 제약이 있으니까... 입이 있으되 말을 못하는 거죠.

총 : 혹시 그날 이후로. 어디서 경제적 지원을 해주겠다든지 이런 곳은 없었나요?

김 : 과학기술 연합노조라고 있어요. 민노총 소속인데, 우리 연구원이 거기 지부죠. 급여 전부는 아니지만 최소한의 기본생활 할 정도로는 보조를 해줬어요. 정직된 동안에.

총 : 그나마 다행이었네요.

김 : 참 고맙게 생각합니다. 뭐 직장 동료들도 모금해서 도와주겠다고 그랬는데 제가 거절했어요. 회사에 그렇게까지 문제를 일으켰는데 제가 동료들에게 또 그런 부담을 주는 건..

총 : 건기연 사람들만 쓰는 인트라넷 있을 거 아닙니까? 거긴 이런저런 글이 올라오지 않나요?

김 : 올라오죠. 익명게시판이... 노조 게시판이 하나 있거든요. 그런데 요즘 어디 익명성이 보장이 되나요...


총 : 그렇죠. 그것도 그런 의지가 있을 때나 지켜지는 거지.. 징계 이야기를 좀 해보죠. 작년 5월 당시에는 원장이 공석이었고 그래서 부원장이 박사님에 대한 징계는 없다고 공식적인 선언을 했었잖아요?

김 : 그렇죠.

총 : 근데 부원장이 있을 때는 아니라고 하다가 원장이 9월에 낙하산 - 아, 이 표현은 박사님이 아니라 저희의 표현입니다.(웃음) 박사님이 그렇게 말씀하신 게 아니라는 거 분명히 밝혀두고요.(웃음) - 임명된 후에 진행된 거란 말이죠.

당시에는 분명히 징계도 하지 않겠다고 했고 또 박사님은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신사협정을 서로 맺었고. 그리고 실제 박사님은 아무리 기자들이 찾아도 약속을 지키셨단 말이에요. 근데 7개월이나 지나서 12월 23일, 갑자기 낙하된 원장이 징계를 해버렸단 말이죠.

그 징계를 위해  11월 28일부터 12월 12일까지 보름 간이나 박사님 단 한 사람만을 상대로 감사를 했고. 아니 부서를 감사하다 비리가 적발되어 한 사람을 처벌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미리 딱 한 사람 집어서 감사를 합니까. 그러면서 그 인사위원회도 원래는 12명 중에 30% 정도만 부장급으로 채우는데 그때는 전원을 부장급 이상으로 했다고 하더군요. 아무래도 원장이 다루기 쉬우니까. 

김 : 그랬죠. 100%.

총 : 그리고 또 만장일치로 징계를 결정하고. 만장일치가 건기연 생긴 이래 처음이라면서요.

김 : 저도 의외였습니다.

총 : 원래 옳고 그름의 시비를 따지는 자리에서 서로 생각이 다른 12명이나 되는 사람이 모였으면 당연히 여러 의견이 분분한 법인데 만장일치라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그 이전에는 만장일치가 한 번도 없었던 걸텐데. 그렇다면 이건 당연히 처음부터 결과를 정해 놓고 그냥 요식행위만 한 거 아닙니까.

김 : 모르겠습니다...

총 : 과연 징계를 할 만한 것인가 그 여부를 객관적으로 따져보기 위해 그런 자리가 있는 건데, 그때는 미리 결과를 정해놓고 형식만 갖춘 거 아닙니까. 나쁜 새끼들... (일동 폭소) 아, 이 표현은 순전히 제 개인적인 생각이었습니다. (웃음)


김 : 잘 모르겠네요...

총 : 답변 힘드신 건 충분히 이해 가구요. 알아서 새겨 듣겠습니다. 근데 아무리 4대강 밀어붙이기 위한 거라지만, 아무리 그래도 시간도 7개월이나 지났고 원래 징계 안 한다고 공식선언 했었던 자기 말을 스스로 뒤집어 가면서까지

그리고 그 과정에 관례를 사상 최초로 깨면서까지 그렇게 억지로 억지로 징계를 한 건, 이건 정말 무리수라는 말이죠. 상식적으로 보면 가만 내버려 두는 거 보다 훨씬 더 시끄러워 질 텐데. 왜 굳이 그렇게까지 했을까요? 그건 한 번 생각해 보였습니까?

김 : 처음부터 어느 정도의 징계를 받을 건 각오를 했었습니다. 그 글을 올릴 때부터 징계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괜찮다고 하니까 처음에는 반가우면서도 의아하긴 했었습니다. 그랬는데 어느 날 갑자기.. 아무래도 4대강 사업 시작해야 하니까...

총 : 그렇게 단도리를 해서 제 2, 제 3의 김이태가 나오는 걸 원천봉쇄하겠다..
김 : 제가 함부로 단정할 수는 없는 것이고...

총 : 네, 이해합니다. 한 마디만으로도 주변 다른 분들까지 다칠 수도 있는 거니까.. 그렇게 말을 못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건 뭐 스스로들 안 떳떳하고 캥기니까 그런 걸 테고. 하지만 건기연 내에서도 정부하고 연줄이 닿은 사람들이야 모르겠지만, 나머지 일반 연구원들은 마지못해서 입을 닫고 있는 거잖아요?

김 : 네, 그렇습니다. (일동 폭소)

그렇단다.


총 : 아마 처음에는 7개월 전에 징계 안 하겠다고 한 걸 뒤집기가 그들도 부담스러웠을 거예요. 그래서 개인적인 비리, 아무래도 금전적인 거면 더 좋았겠죠. 그런 거 찾아내려고 억지 감사를 보름씩이나 한 거겠죠. 그래서 김이태가 사실은 공금횡령 한 부도덕한 놈이었다.. 그런 식으로 주저앉히려고.

그런데 아무리 해도 그런 게 안 나오니까. 그런데 저 위에서는 무조건 징계하라고 하고. 하는 수 없이 7개월 전으로 돌아간 거죠. 그 정도 무리수를 뒀다는 것만으로도 그것이 원장이나 위원회의 결정이 아니라 반드시 징계 하라는 명령이 미리 있었다는 걸 방증하는 거죠.
 
김 : 어떻게 그렇게 훤히 아세요...

총 : 뭐 나름 선수라.. 게다가 원장이 부임하고 나서 처음부터 한 사람 때문에 회사 전체가 문 닫을 수도 있다고 말하고 다녔다면서요.

김 : 그런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총 : 그럼 뭐 뻔한 거죠. 나쁜 놈들.. 그런데 제가 얼마 전 박원순 변호사를 만났는데.. 왜 그 분이 소송을 당했는데 원고가 대한민국이잖아요?

김 : 아, 네. 잘 알죠.

총 : 그 분한테 물어봤어요. 당신처럼 평생 시민운동하고 정부 상대로 싸운 사람도 그렇게 당하면 위축이 되느냐. 그랬더니 실제로 위축이 된다는 거예요. 자기는 괜찮지만 자기 주변이 피해를 입을까봐. 내가 이 사람 만나면 이 사람도 피해를 입지 않을까 그런 생각 때문에.. 본인도 그런 차원에서 위축이 되시죠?

김 : 당연히 위축이 되죠. 위축이 되고. 그리고 제 눈에도 보입니다. 아무리 저를 평소에 인간적으로 따르고 그랬다고 하더라도 이제는 제가 옆에 있으면 불안해 하는 것이...

총 : 너 김이태랑 친해!(웃음) 이런 말 들을 거 같고.
김 : 피해가 가죠.

총 : 일부러 슬슬 피해 다니는 사람도 있죠? 안 그런 척 하지만.

김 : 네. 신종플루 환자처럼.. 저는 뭐 다 각오를 한 것이지만.. 사실 저 때문에 고생한 사람들도 많고. 회사 차원에서 여러 불이익도 받을 수 있는 세상이고... 사람들 사기도 떨어지고... 하지만 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할 수 없이 그러는 것도 다 이해를 하고...


총 : 정권이 바뀌면 됩니다. 그럼 다 아는 척 할 겁니다. (일동 폭소) 그런데 박사님 본인은 괜찮으십니까...

김 : 저야 뭐 차에 기름만 채워주면 그냥 어디라도 가서 만나고 싶은 사람들 만나서 얘기도 하고... 책도 제가 안 보던 분야도 많이 읽고. 오히려 내공은 더 쌓을 기회다... 문학 쪽에만 관심이 많았는데 이제 경제에도 관심이 생겨서 경제서적도 읽고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내공도 더 쌓이고 잠재력도 키웠다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데... 그런데 생각 외로 부모님부터 시작해서 가족들이 너무 힘들어 했어요. 큰 짐을 지운 거 같은 느낌에 참 미안하고...

실은 그 일을 겪으며 그의 몸무게는 10킬로가 줄었다.

총 : 박사님은 그나마 괜찮으신 것 같은데 사모님 마음 고생이 심하실 것 같네요..
김 : 아유 그럼요. 눈물 보이고 그럴 때는 제가 참... 미안하고...

총 : 그렇죠. 남편이 눈치도 없이 대통령에게 대뜸 정면으로 딴지 걸어 가지고... 그런데 작년 고 3이었던 따님은 원하는 학교에 갔는지..

김 : 원하는 과는 갔는데 원하는 학교는 못 가서..

편 : 집안이 굉장히 시끄러웠으니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겠죠.
김 : 아무래도... 뭐 기자 분들도 매일 찾아오고.. 여기저기서 시끄럽고.. 저도, 집 사람도 아이한테 신경을 제대로 못 써주고.. 그래서 참 미안해요.. 굉장히 내가..

총 : 그래도 아이들은 원망하지 않죠?
김 : 가끔씩은 뭐 이런 걸 보내줘요.. 말로는 잘 안 해요. 문자로.. 


그가 저장해놓고 가끔씩 본다는 딸의 문자.


냉장고에 붙어 있던 딸의 메시지

총 : 아이들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알게 될 겁니다. 아빠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한 건지.

긴 대화가 오갔으나 다 옮길 순 없다. 김이태 박사와 가족의 안녕을 위해.

이제 시상 차례.  

총 : 그나저나 저희가 보다 일찍 왔어야 하는 건데... 상금 200만원은 저희가 드리는 게 아니라 저희 독자들이 만든 기금에서 드리는 겁니다. 정말 생활에 보태시라고. 그러니까 딴 데 기부하고 그러지 마시고 절대로.

지금 기부를 받아야 할 양반이 본인이신데.. 고집피우지 마시고 진짜 고생은 생활 꾸리느라 사모님이 다 하셨으니까... 사모님 꼭 드리셔야 합니다..


김 : 아니 전 어차피 다 각오한 건데...

총 : 아, 글쎄 사모님이 알아서 하실 겁니다. (웃음) 상은 노무현 전 대통령 모습을 형상화해서 따로 제작한 겁니다. 역시 독자들이 기금 마련해서요. 노무현 대통령 별명이 바보였잖습니까. 그래서 상 제목도 바보상입니다. (웃음) 저희가 이 시대의 바보를 찾고 있는데 박사님이 그 첫 번째 수상자, 그러니까 첫 번째 바보인 거죠. (웃음)

김 : 참 의미 있고 영광이지만.. 제가 이런 걸 받아도 되는 건지...
총 : 아니 받는 게 아니라 강제로 수여 당하시는 거죠. (일동 폭소)






그렇게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쑥스러워 하며, 자신이 이런 걸 받아도 되는지 이런 돈은 기부해야 하는 거 아닌지, 끊임없이 계면쩍어 하고 부끄러워했다.

뒤집힌 세상이다.

당대의 가장 큰 거짓말을 온갖 개인적 불이익을 감수하며 고발한 이는 이렇게 한 없이 부끄러워하는데, 정작 그 거대한 거짓을 만들어 낸 자들은 뻔뻔하기 짝이 없다.

그를 만나니 분명히 알겠다.

그는 그저 거짓말을 할 수가 없었던 게다. 영웅이 되려 했던 것도, 논란을 일으키려 했던 것도 아니다. 그저 학자적 양심을 스스로 속일 수가 없었던 게다. 그게 다다.

그게 죄인가.

그걸 죄라 하는 자들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지지리도 후진 세상이다.
그래서 김이태 박사 같은 이의 존재는 그 자체로 커다란 위안이다.

참 고맙다.

이 자리를 빌어 그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그리고 이 시상에 가능토록 해준 독자제위께도.

꾸벅.

 


 

 

자, 그럼 2회 수상식까지, 일단 졸라.

 


- 바보상시상위원회위원장 딴지총수
( chongsu@ddanzi.com )

 

http://www.ddanzi.com/articles/article_view.asp?installment_id=275&article_id=4845



※ 본 글에는 함께 생각해보고싶은 내용을 참고삼아 인용한 부분이 있습니다. ('언론, 학문' 활동의 자유는 헌법 21조와 22조로 보장되고 있으며, '언론, 학문, 토론' 등 공익적 목적에 적합한 공연과 자료활용은 저작권법상으로도 보장되어 있습니다.)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2&uid=9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