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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유시민의 발언과 박근혜의 대응

유시민의 발언과 박근혜의 대응
뭐 틀린 말 한 것도 아니구먼!

(서프라이즈 / 서영석 / 2011-03-31)


이명박 씨의 신공항 백지화를 둘러싼 유시민 참여당 대표와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의 대응이 대조적이다. (이하 경칭 혹은 직함 생략)

유시민은 이 발표를 놓고 “이명박을 일방적으로 비난할 수만은 없다”고 했고 박근혜는 “정부가 약속을 어겨 유감스럽다”고 했다. 박근혜는 이명박을 직접 지칭하지 않았지만 뭐 안 봐도 비디오라고 박근혜가 말한 정부란 이명박을 뜻하는 게 분명하다.

이 대조적인 반응에 대한 평가를 결론부터 말한다면 유시민이 맞고 박근혜가 틀렸다고 할 수 있다. 왜 그런가.

ⓒ 박근혜 & 유시민 홈페이지

밀양이 됐건 가덕도가 됐건 신공항 사업은 10조 원의 막대한 돈이 들어가는 국책사업이다. 이명박의 대선공약이긴 했지만 한겨레신문 3월31일자 사설에서도 지적됐듯이 “이번 결정(백지화 결정)은 이미 예견됐던 것이지만 옳은 방향”이기 때문이다.

한겨레신문을 비롯한 진보언론에서는 그간 이명박의 신공항 추진이 막대한 국가재정 낭비이며, 추진하는 것보다는 포기하는 편이 더 낫다고 주장해왔다. 국가재정에 대한 낭비로 따지자면 4대강 개발이 더하긴 하지만, 여기에 수요예측도 불분명한 신공항에까지 돈을 또 10조 원이나 더 때려 붓는다는 건 누가 봐도 미친 짓이었기 때문이다.

유시민은 그간의 여러 발언에서도 그랬지만, 그것이 미칠 파장이나 정치적 득실보다는 누가 뭐라고 하건 자신이 판단하는 합리적 평가를 선호하는 편이었다. 그것은 어쩌면 유시민의 비정치적 성향을 보여주는 것으로, 한편으로는 장점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단점으로 지적돼 온 것이기도 하다.

유시민이 신공항 백지화 과정을 평가하면서 “굉장히 어려운 문제여서 대통령과 정부를 일방적으로 비난하기도 어렵다”고 한 것은 결국 유시민의 이러한 특성이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내가 <Why 유시민>이란 유시민 연구서를 집필하면서도 느낀 것이지만, 유시민은 참여정부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한 이래 나름대로 국가관을 확립해나가면서, 국내 정치인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국가경영의 책임성이란 어려운 문제에 대해 천착해 왔다. 과연 스스로가 대통령이라면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갔을까? 아마도 이런 관점에서의 고민과 숙고가 “일방적으로 비난만은 할 수 없다”는 발언으로 결과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에 반해 박근혜의 태도나 발언은 정말 문제투성이다. 그동안 박근혜는 이 문제에 대해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물론 대구와 경북에 조금은 유리할 듯 보이는 밀양 쪽에 약간의 무게를 둔듯한 애매한 발언은 했다. 그러나 직접적인 언급은 전혀 없었다. 그랬던 박근혜가 결과가 나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지금 당장 경제성이 없더라도 미래에는 분명 필요할 것”이라면서 “동남권 신공항은 계속 추진돼야 한다”고 했다.

박근혜가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이라면 뭐 별로 틀린 자세는 아니다. 야당이란 근본적으로 국정운영에 큰 책임을 지지 않고 있는 것이고, 무작정 반대만 한다고 해서 그리 잘못된 태도도 아니기 때문이다. 야당이란 원래 정부·여당을 견제하는 것이 그 소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근혜가 누군가? 한나라당의 실세 중의 실세로,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는 파워까지 지닌 사람 아닌가. 이명박의 실패는 한나라당의 실패이고, 한나라당의 실패는 결국 자신이 한나라당 차기 대통령 후보가 됐을 때 고스란히 져야만 할 짐이다. 이명박을 망가뜨려 놓고 자신이 그 설거지를 하겠다? 유시민이라면 괜찮은 스탠스이지만, 박근혜라면 돌 맞을 스탠스다.

한나라당의 실세라면 이런 발표가 나기 전에 이명박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아서라도 백지화를 포기시키는 게 올바른 자세다. 자신이 무슨 야당투사인양 결정과정에서는 입도 벙긋하지 않아놓고 백지화 발언이 나오자 그같이 반응하는 것은 무엇보다 옳지 않은 일이기도 하고, 자신에게 별 이익도 되지 않는 행보일 뿐이다.

국회의원 한 석도 없는 정당의 대표는 국가운영의 책임성이란 어려운 문제를 고려하고 있고, 국회의원이 170석도 넘는 거대정당에서 ‘실세 중의 실세’로 군림하는 사람은 과정에 전혀 책임지지 않는 상태에서 결과만 놓고 야당다운 발언을 하는 이런 상황도 참 한국적이라고 느끼기는 한다.

유시민이 “일방적으로 비난만은 할 수 없다”고 한 것은 신공항 공약 자체가 잘못된 것이니만큼 그것을 백지화하는 게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 생략돼 있는 유시민의 생각은 한겨레신문 사설이 지적했던 대로 “뒤늦게라도 그 결정을 잘했다고 칭찬하기에는 정부 대응이 문제투성이”라는 것 아닐까?

유시민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정치공학적으로 볼 때 유시민의 이러한 스탠스는 그에게 불안감을 느끼는 중도 우파적 성향의 유권자에게는 호감으로 작용할 것이 틀림없다. 물론 야당 내 유시민 안티 세력들은 “뭐 이명박에게 얻어 먹은 게 있느냐”고 비아냥거릴 수도 있겠다.


※ 이 칼럼은 <뉴스페이스>에 기고 된 것입니다.

 

서영석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2&uid=248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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