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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공권력과 공영방송의 이 누추함을 어찌해야 할까요

공권력과 공영방송의 이 누추함을 어찌해야 할까요
(양정철닷컴 / 양정철 / 2011-03-05)


그냥 돌아가세요. 뭘 찾을 게 있겠습니까. 2년이나 지났습니다. (사진 : 연합뉴스)

○… 어린 시절, 궁금증이 하나 있었습니다. ‘도둑 잡으러 가는 경찰이 왜 순찰차 사이렌을 그리 요란하게 울리며 갈까? 적어도 근처에 가면, 조용히 접근해야 범인을 잡을 텐데….’ 나중에 어떤 영화를 보는데, 영화 속 신참 경관도 고참에게 저와 똑같은 질문을 합니다. 부패하고 노회한 고참은 너무 뻔뻔스럽게 이리 답한 걸로 기억납니다. “그래야 서로 살지!”

비슷한 풍경이 벌어졌습니다. 며칠 전 검찰이 무려 7시간 동안 한상률 전 청장의 집을 압수수색했습니다. 또 그림 로비에 쓰였다는 ‘학동마을’ 그림을 한 전 청장에게 판매한 서미 갤러리도 압수수색했습니다. 화첩과 회계장부, 컴퓨터 디스크 등을 가져갔습니다. 검찰은 회계장부를 통해 한 전 청장이 ‘학동마을’ 그림을 얼마에 사갔는지, 서미 갤러리는 얼마에 구입했는지 등을 확인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언론은 이를 두고 “전격 압수수색” “칼 빼든 檢” “한 전 청장에 대한 ‘강제수사’의 신호탄” “한 전 청장에 대해 수사 의지가 있음을 대내외에 과시한 것” “주요 의혹을 부인하는 한 전 청장을 압박하기 위한 카드” “일단 한씨의 진술을 들어본 뒤 증거를 확보하자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 등으로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이런 장난이 있을까요. 한 전 청장에 대한 의혹이 제기된 게 무려 2년 전입니다. 그는 미국으로 도피했습니다. 검찰은 뒷짐 지고 손끝 하나 까딱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단순한 그림로비 의혹만 받고 있는 게 아닙니다. 전직 대통령을 서거에 이르게 한 보복성 세무조사 기획, 현직 대통령의 핵심 비리의혹 열쇠를 쥐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중요 조사대상입니다.

한 전 청장의 자택과 문제의 갤러리까지 한 전 청장과 함께 미국에 숨어 있다가 같이 귀국을 한 게 아닙니다. 한 전 청장이 국내에 있든 잠적을 했든 미리 할 수 있는 일들이었습니다. 여태 뭐하다 고작 ‘절차상 시빗거리를 없애려는 생색내기 압수수색’을 하면서, 그런 요란을 떠는지 모를 일입니다. 수사 실익이 전혀 없는 일에 장장 7시간 가까운 쇼를 하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그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언론이 의미를 달아 호들갑을 떠는지 유치하기 그지없습니다.

게다가 당사자는 소환조사 때 멀쩡하게 검찰청을 걸어 드나들어 놓고는, 갑자기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재벌, 고위공직자들은 늘 같은 행태를 보입니다. 멀쩡하던 사람이 수사를 받게 되면 갑자기 입원을 합니다. 휠체어에 의지합니다. 환자복을 입습니다. 그리고 단 며칠 만에 산발에 마스크를 쓰고 초췌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이제 속 뻔히 보이는 그런 쇼는 그만 봤으면 좋겠습니다.

○… 공권력의 장난은 또 있습니다. 이른바 ‘스폰서 검사’ 사건을 수사한 민경식 특별검사팀이 항소이유서를 정해진 기간 안에 내지 않은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질러 항소 기각 결정을 받았습니다. 특검이 기소한 전·현직 검사에게 전원 무죄 판결이 나온 데 이어, 절차 문제로 항소 기각 결정까지 받게 된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입니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특검은 지난 1월4일 항소장을 제출한 뒤 같은 달 28일 소송기록 접수 통지를 받고도, 특별검사법이 정한 항소이유서 제출기간인 7일이 경과한 뒤인 지난 15일 비로소 항소이유서를 제출했다”며 “항소장에 다른 구체적 항소이유가 기재돼 있지 않아 항소 기각에 해당한다”고 밝혔습니다.

특검은 늘 기대와 한계를 동시에 안습니다. 그래서 무용론도 나옵니다. 그러나 절차의 실수 때문에 이런 망신을 당한 것은 사상 초유의 일입니다. 다른 대형 이슈가 많다 하더라도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닙니다. 미필적 고의인지 무능인지 따져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그냥 넘어갑니다.

국민 세금 24억여 원이 그들에게 지원됐습니다. 수사진 67명이 투입됐습니다. 55일간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습니다. 검사 4명을 기소했으나 전원 무죄가 나도록, 공소유지를 못했습니다. 특검을 특검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세금 24억 원이 하늘로 증발한 겁니다. 장난도 이런 장난이 없습니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를, 세금 24억 원을 날리고도 절감하지 못한다면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도 봐주기 특검, 장난 같은 특검이 또 이어질지 모릅니다.

‘검사와 스폰서’ 편에서 전화 인터뷰하고 있는 최승호 PD ⓒMBC

○… 뭐가 뛰면 뭐까지 뛴다고, 공권력이 국민을 상대로 장난을 치니, 공영방송들까지 장난 대열에 합류합니다. 정권과 그 정권에 순치된 공영방송 간부들이 공공재인 전파와 방송을 유린하고 있습니다.

MBC는 비판적 프로그램인 <PD수첩>을 못 잡아 난리입니다. 제작진을 날렸습니다. 제작진 교체를 두고 시끄러워지자 MBC 시사교양국장이 항변했습니다. “이번 인사는 누군가의 지시로 인한 것이 아닌, 공정하게 이뤄진 인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훈계를 합니다.

“요즘 <PD수첩>은 발로 뛰는 게 보이지 않는다. 가르치려 하고, 결과가 너무 뻔하다. PD 중심으로, PD들이 단내 나게 뛰어서 땀 냄새 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PD수첩> 제작진이 발로 뛰는 게 아니면, 이제 다른 PD들은 모두 과로사할 겁니다. 기자들은 아예 언론인 생활 못 할 참입니다. 최근 방송뉴스를 보면 치열함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PD들이 만든 시사 프로그램도 연성화 되고 있습니다. 현재의 경영진이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발로 뛰지 않는다니….

참여정부도 <PD수첩>과 아주 불편했습니다. <PD수첩>뿐이 아닙니다. 방송3사 모두의 시사프로그램들이 참여정부 주요 정책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습니다. 파병, FTA 등을 두고는 공개적인 설전도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PD들의 치열한 저널리즘 투혼을 기자들보다 높게 평가했습니다. 언론과 불편한 시기였지만 PD들 행사에 굳이 참여해 격려와 덕담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권력과 언론은 그런 것입니다.

권력의 눈치가 보여 그리 한 것이면 자중할 일이지, 후배 PD들을 모욕하면서까지 스스로 면죄부를 만드는 일은 속 보이는 장난입니다.

○… KBS도 예외가 아닙니다. 수신료인상을 홍보하고, 사내 애사심을 북돋는다는 명분으로 며칠 전 직원 차량에 무단으로 ‘수신료 인상’을 정당화하는 스티커를 부착하고, 직원에게 제공한 휴대폰의 컬러링(통화연결음)을 사전 동의 없이 KBS사가(歌)로 일방 교체해 직원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고 합니다.

과거 독재정권 시절 KBS 직원은 물론 기자나 PD들도 공무원 신분이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 벌어진 일은 그런 시절에나 나올 발상입니다. 경영직이나 관리직은 모르겠습니다. 공영방송 기자나 PD들은 정치적 중립은 물론, 사내 현안에 대해서도 공정성을 지켜야 합니다. 회사 이익과 관련된 일에 기자나 PD들까지 동원된다면 그들의 자존심과 정신은 누추해집니다. 밖에 나가 당당할 수가 없습니다.

KBS는 KBS 직원들의 것이 아닙니다. 수신료 역시 직원들의 홍보나 애사심으로 쟁취할 대상이 아닙니다. 수구신문들이 광고유치를 위해 출입처 기자를 시켜 출입처에 압박을 가해 광고를 뜯어오게 하는 것과 비슷한 발상입니다. 공영방송을 그리 경영하는 행태에 소름이 끼칩니다. 그런 얄팍한 장난은 그만두면 좋겠습니다. 그러니 ‘김비서(KBS)’라는 비아냥을 듣는 겁니다.

 

양정철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2&uid=24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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