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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KBS와 인터넷언론 ‘뷰스앤뉴스(views&news)’

KBS와 인터넷언론 ‘뷰스앤뉴스(views&news)’
창피하고 기분 나쁜가, 잘하면 된다

(서프라이즈 / 이기명 / 2010-10-21)


박정희 독재시설이다. 그때도 KBS 뉴스는 있었고 기자도 있었다. 명함에도 KBS 아무개 기자라고 파가지고 다녔다. 폼 재면서 취재원에게도 내밀었다.

당시 KBS는 공보부방송관리국 소속의 중앙방송국이었다. 남산자락에 있었다. 그때는 방송국이 하나뿐이라서 기자들이 목에 힘주고 다녔다. KBS 기자는 중앙방송국 방송과 보도계 직원이고 보도계장이 사무관이고 주사와 서기들이 기자 노릇도 했다. 임시직도 있었다.

취재도 별로 없었다. ‘필생’이라는 사람이 신문기사를 베껴 아나운서에게 주고 그걸 뉴스라고 읽었다. 뉴스라야 정부홍보지나 다름없는 모 신문의 기사고 그래서 KBS 기자는 세상에서 제일 편한 직업이었을 것이다. 하기야 월급이라고는 쌀 한 말 값도 못 받아 신랑감으로도 낙제였으니까.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얘기다.

왜 그때 얘기를 하느냐. 이유는 글을 읽노라면 자연히 알게 될 것이다.


독재 시절 기자들의 ‘양심’?… “에게 겨우 요거야.”

그래도 기자라고 출입처는 있었다. 어느 날 보건사회부 공보관과 약속이 있어서 갔는데 아는 KBS 기자가 있었다. 차 한잔하는데 공보관이 귀찮아 죽겠다고 한다. 이유를 물으니 하루종일 죽치고 있단다.

왜 기자실 두고 여기 있느냐니까, KBS 기자는 기자실에 못 들어간다는 것이다. 공무원이 무슨 기자냐고 기자단에도 못 낀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방송공사로 변한 뒤에야 겨우 기자실 출입을 했다.

그때 그 기자는 나중에 KBS 보도본부장까지 지낸 J 아무개다. 그렇게 괄시를 당하면서 오늘의 언론왕국 KBS로, 한 때 신뢰도 1위였던 국민의 방송(?) KBS로 컸다. 신뢰는 다 말아먹었지만.

왜 KBS를 도마에 올려 비판을 하느냐. 왜 기자들을 매도하는가. 아프라고 부끄러우라고 그러는 것이다. 맷집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매는 아픈 것이다. 매와 술에는 장사가 없다지 않은가. 양심은 부끄러움과 함께 다닌다.

한국일보 노조위원장을 지낸 남영진이 한 말이 있다.

“기자를 제일 힘들게 하는 것이 바로 기자의 실명을 거론하며 기사를 비판하는 것이다. 기사 좀 제대로 쓰라는 전화 3번만 받으면 기사 쓸 생각 싹 달아난다.”

똑똑하다고 자부하는 기자들이 왜 개떡같이 쓴 자기 기사를 모르겠는가. 더군다나 사회정의를 부르짖으며 불의를 응징하겠다는 당찬 결의로 기자가 되지 않았는가. 그러나 세상이 맘대로 되는 것은 아니어서 이런저런 압력에 도리없이 기사에 때가 묻었을 때 양심이 소리 없이 우는소리를 들으며 한숨을 쉰다. 그러다가 만성이 된다. 세상이 다 그런 거지 하고 체념한다. 기자생명 끝이다.

그러나 양심은 깊은 땅속에서 솟아나는 샘물과 같다. 그런 양심의 소리가 살아나기를 기대하며 이 글을 쓰는 것이다. 욕이 삼태기로 쏟아질 것이다. 욕먹을 생각 못했다면 내가 도둑놈이다. 기꺼이 듣겠다. 한쪽 귀로만.

당질 되는 녀석이 그 어려운 KBS 기자 시험에 합격했다. 집에서는 잔치를 했다. 그리고 2년 후 그 애는 사표를 내고 울면서 외국으로 떠났다. 아들이 떠났다는 소식을 전하며 누이가 눈물을 훔쳤다.

박정희 전두환 시절, 너 나 할 것 없이 노예였다. 기자라고 별수 있었나. 박정희 독재 때 국민투표가 있었다. 공화당 원내 총무가 방송을 하러 왔다. 녹화가 끝난 후 총무는 봉투를 기자에게 전한다. 당연한 듯 받았다. 내가 눈길을 돌렸다. 기자가 날 보고 웃는다. 안 받는다면 기관에 끌려갈까 봐 겁이 났을지도 모르지.

기자들 사이에 지금도 전설 같은 얘기가 있다. 스포츠 담당기자가 봉투를 북 찢었다. 그는 현찰을 들고 흔들며 ‘에게 겨우 요거야.’ 하며 웃었다.

그때는 독재 시절이었다. 기자 되기 쉬웠다. 쥐나 개나 기자가 됐다. 어느 날 깜짝 놀랐다. 훈련소 동기 녀석이 KBS에 나타났다. 충남도청에 있던 놈이다. KBS 기자가 됐다고 한다. 요상했다. 내가 알기에는 대학 다닐 때 건달이었다. 문장 하나 제대로 쓴 줄 모른다.

저런 놈이 기자라니. 그때는 보도계가 방송과 소속이라서 잘 아는 과장님께 부탁을 했다. 애는 시원치 않지만 잘 좀 봐 주십사고. 그 녀석이 무슨 재주를 부렸는지 승승장구 사회부장에다 TV가 생기고 나니 앵커까지 한다. 나중에 자회사의 사장까지 했다. 알고 보니 고모부가 여당의 어느 지구당 위원장이었다.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살아 있기는 한지.


‘배부른 돼지’가 되어버린 KBS 기자들… 신뢰도는 곤두박질 치고

이 나라의 기자들이 언론자유와 공정보도를 위해 참 열심히 싸웠다.

90년 민주언론쟁취 투쟁 때 KBS 본관 5층 작가실까지 1층 민주광장에서 언론자유를 절규하는 기자와 PD 그리고 직원들의 함성이 들려왔다. 가슴이 떨렸다. 서기원과 최병렬이 손잡은 언론탄압이 절정에 이른 때였다.

전경이 사옥에 진을 치고 사원들이 신분을 확인하고 지금 KBS ‘아침마당’을 진행하는 이금희 아나운서의 전경을 꾸짖는 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이희우 주찬옥 등 작가들과 함께 민주광장에 모인 노조원들을 격려했다. 겁이 없었나 보다. 그렇게 찾은 민주언론이었다.

100% 보장이라는 것은 없다. 그러나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언론자유가 얼마나 억압받았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팀장이, 데스크가, 국장이, 본부장이 압력을 행사해서 기자가 쓴 기사가 죽어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있었는지 한번 묻고 싶다. 

묻자. KBS 기자를 비롯해서 조중동의 기자들까지 대답 좀 해 보자. 소신을 가지고 기사를 쓰는가. 스스로 자문자답이라도 해 보자. 대답을 못하겠으면 웃기라도 해랴.

언론자유를 구가하던 때 KBS의 신뢰도를 1위로 끌어올렸던 기자와 PD들이 MB 정권 출범 후 지방으로 쫓겨 가고 정연주 사장을 몰아내는 데 1등 공신인 자들이 주요 보직을 점거했다. 신뢰도는 곤두박질을 했다.

KBS 기자들은 존경과 신뢰를 받을까? ‘배부른 돼지’는 열 번 죽었다 깨어나도 불가능하다.

배부른 돼지라고 한다. 배만 부르면 된다. 아무리 떠들어도 들어먹지 않는 담벼락을 향해 소리를 지르면 뭘 하나. 목이나 유지하고 넉넉한 월급봉투 챙기며 살자. 지방으로 쫓겨가고 징계당하면 어느 놈이 훈장 주냐. 마누라 자식은 어쩌나. 정부 바뀐다고 우리 괄시할 수 있나. 기자는 왕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어머님도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바람 부는 대로 물결 치는 대로 살아야 목숨을 부지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살지 않아서 부엉이 바위 위에서 몸을 던지지 않았는가.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대한민국의 잘난 기자들. 너희들은 그렇게 생각하는가. 기자들은 모난 돌이 아닌가. 모난 돌이 아니면서 어떻게 진실을 보도하는 바른 기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바람 부는 대로 물결 치는 대로 살면서 사회 비리를 파헤치고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가. 생각하는가.

또 묻자. 너희들이 공범이 아니냐. 부엉이 바위에서 몸을 던진 노무현의 등 뒤에 너희들의 있었다고 하면 아니라고 할 자신이 있는가. 노무현이 부정과 비리의 원흉으로 매도하고 평생을 농민으로 살려고 짓는 집을 아방궁이라고 거짓말을 한 기자들이 살인공범이라고 한다면 아니라고 할 자신이 있는가.

내가 자식처럼 여기던 어느 기자는 노무현이 자살한 후 아직도 나를 만나지 못한다. 미안하고 욕먹을까 겁난다는 것이다. 난 사람으로 여기지도 않는 데 말이다. 그래도 이놈은 양심이 살아 있어 재생가능성은 있다.

KBS 기자들이 기자대우 받으며 산 것이 언제였는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때다. 기자가 신뢰를 받는다는 것은 바로 사람답게 사는 것이다. 얼마나 오랜 세월을 기자취급 받지 못하다가 겨우 대접받을 만 해졌는데 MB 정부 들어 도로아미타불이 됐다. 모두 까먹었다. 기자는 국민의 뇌리에서 사라지고 그 자리에 자리 잡은 것은, 후유. 한숨이 나온다.

동아일보 해직기자며 동아투위 위원장을 지낸 김태진(청와대 출입 YTN 김태진이 아님)이 공개강연 때마다 하는 말이다.

“일제 때 기자는 지사였다. 가벼운 잘잘못은 기자가 가렸다. 기자가 자초지종을 듣고 한 사람의 손을 들어주면 어느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았다.”

왜 이의를 달지 않았을까. 기자들이 잘 알 것이다. 그렇게 기자들은 존경과 신뢰를 받았다. 어떤가. 전설 같은 얘기가 부럽지 않은가. 그런 기자 소리 한 번이라도 듣고 죽고 싶지 않은가. 그러나 어림없다. 배부른 돼지는 열 번 죽었다 깨어나도 불가능하다.


KBS, ‘국민의 방송’에서 ‘정권의 방송’으로…

어느 날 언론계 원로들과의 만남에서다. 시류에 편승해 간에도 쓸개에도 언제이고 붙을 수 있는 그런 세월만 먹은 인간이 아니다. 언론사 감투 근처에 얼씬거리며 인생의 마지막에 조인트나 깨이는 원로가 아니다. 유재천 같은 원로도 아니다. 내게 물었다.

▲ 왼쪽부터 각각 KBS, MBN, 뷰스앤뉴스의 회사 로고 타입

뷰스앤뉴스(views&news)를 아느냐고 한다. 잘 모른다고 했다. 좀 들어가 보라고 한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냥 들어가 보라고 한다. 다른 원로가 MBN을 보느냐고 묻는다. 안 본다고 했다. 한 번 보라고 한다.

내가 지금 똑같은 말을 한다. 뷰스앤뉴스(views&news)에 한 번 들어가 보기 바란다. MBN을 며칠 시청해 보기 바란다. 더 이상 말 안 한다.

KBS 기자들 속이 뒤집어 질 것이다. KBS를 그들과 비교를 하다니. 자존심 상해서 미칠 것 같을 것이다. 미칠 테면 미쳐야지. 자업자득 아닌가. 누굴 원망해. 한 번 들어가서 조용히 기사를 읽어봐라. 케이블방송이지만 공부하는 셈치고 시청해 봐라.

또 항의할 것이다. 누군 몰라서 이러구 있는 줄 아느냐고. 누군 울화가 치밀지 않는 줄 아느냐고. 누군 언론자유 싫어서 가만히 있느냐고. 누군 바른 기사 쓸 줄 몰라서 죽어서 지내느냐고. 누군 병신취급 당하는 거 좋은 줄 아느냐고. 그 역시 자신들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2007년 7월,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이 치열할 때 MB가 연설에서 청중을 향해 외쳤다. 3번 연속해서 ‘믿습니까?’ 소리쳤다. 온갖 의혹에 확실하고 명쾌한 해명 대신 믿음을 주문했다.

세월이 흘러 2010년 10월. MB는 천안함 사건 조사결과를 국민이 믿지 못하자. 다시 꺼내 든 것이 ‘믿습니까?’다.

“대한민국에 살면서 천안함 사건이 북한 소행이 아니라고 믿는 것은 정말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다렸다는 듯이 한 언론사가 바로 다음날 그럴 듯하게 화답했다. 김정일의 큰아들 김정남이 김정일에게 항의를 했다는 것이다. 왜 김정은이 천안함 사건을 일으키도록 묵인했느냐고 말이다. 이 기사를 쓴 기자의 IQ는 몇인가. 기자 시험 보고 들어 온 기자인가. 앵커는 뭐 하러 그 자리에 앉아 있는가.

KBS 망신시킬 일이 그렇게도 없는가. 이래서 신은 인간에게 웃는 제주를 주신 것이 아닐까. 그게 톱기사다.

KBS만이 “믿습니다” 하고 분명히 화답했다. 70%의 국민이 안 믿는다는데 국민이야 믿거나 말거나다. 그리고 KBS는 국민으로부터 엄청난 선물을 받았다. 바로 ‘불신’이란 선물이다.

▲ 9월 14일 KBS ‘뉴스9’ 보도 캡처. 이날 KBS는 중국 정부 내 김정남 측근의 말을 인용 “김정남이 김정일을 만나 ‘김정은이 화폐개혁 실패로 일으킨 천안함 사건을 왜 묵인했느냐’고 항의했다”고 보도했다. ⓒKBS

이건 확실히 KBS의 ‘대통령 물 먹이기’ 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황당한 기사를 내 보낸단 말인가. 심의실은 뭘 하고 있나. 감사실은 이 문제를 심각히 다뤄 보도국 관련자들은 징계해야 한다. 이런 교묘한 국가원수 망신주기가 어디 있단 말인가.

기자협회도 언론노조도 문제 삼아야 한다. 우장균 기협회장과 최상재 언노련위원장도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 이런 방송을 봐야 하는 국민에게 사과 한마디 없는가. 정부만 욕하고 기자들은 비판하지 않는가. 가재는 게 편인가. 자식 사랑하면 매 한 대라도 더 때리는 것이 우리 조상의 교육이었다.

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 있다. 가장 악질적인 청소년 대상 범죄 중에 앵벌이라는 것이 있다. 추운 겨울날 육교 다리 밑이나 지하도에 빈 깡통을 놓고 엎드려 구걸을 하는 애들을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게 바로 앵벌이다.

어린이에게 독한 소주를 먹이거나 약을 먹여 구걸을 시키고 그 돈을 갈취하는 것이다. MB의 발언이나 정부발표를 비판 없이 수용하고 계속해서 보도함으로써 마치 진실인 듯 호도하는 행위야말로 기자들의 앵벌이 행위다. 이성적 행위를 마비시키는 것이다. 이런 행위를 비판하고 막아야 할 언론이 앞장서서 ‘나를 따르라’고 한다면 당연히 국민의 지탄을 받아야 한다.

KBS는 방송시작 때마다 대문짝만 하게 들고 나오는 것이 <신뢰받는 방송 KBS>다. 국민이 낸 세금과 시청료로 월급도 받고 방송도 하면서 방송을 볼 때마다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러우면 고쳐야 한다.

전종철이라고 하는 철부지 기자가 국민의 대표인 최문순 의원에게 ‘최문순 불러 와’라는 망언을 서슴지 않았다. 이 망동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KBS가 무소불위의 으스스한 권력을 행사하던 군사독재 시절의 정보기관으로 착각을 했는가. 기자는 왕이라서 국회의원쯤 우습게 보였나.

그 옛날 남산 KBS 시절 방송국에 상주하던 정보부 조정관이 방송국장 실을 발끝으로 툭 차고 들어가던 그 시절로 착각을 했는가. 그런 못된 기자를 징계하지 않는 것은 분명한 직무유기다.

KBS 사장 김인규는 전종철 같은 무한충성파들의 보호를 받으며 천년만년 자리를 누릴 줄 알지만 울며 매달려도 세월은 간다. 최종원 의원이 김인규 사장에게 “이 사람들은 사장 경호대나 다름없다”고 질타한 의미를 삭여 들어야 한다.

김인규가 “말씀이 지나치다”고 하자 최종원은 KBS 기자들이 조직폭력배냐고 따졌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든 비극이다. 상사에게 충성하는 것은 미덕이 될 수도 있다. 그럼 최문순 나오라고 소리치는 전종철 기자의 행동도 미덕인가. 전종철 어떻게 생각하나. 


깨어나라 KBS!

기자는 사실보도를 하면 된다. 기면 기라고 쓰고 아니면 아니라고 쓰면 된다. 사회정의에 반하면 비판을 하면 된다. 권력자의 반민주적 행위를 규탄하고 정의의 편에서 싸워야 한다. 왜 수백 명의 해직기자들이 생겼는가. 그들이 바로 오늘의 기자들 선배다.

이임호 기자는 민주언론을 위해 싸우다 목숨을 잃었다. 신뢰도 1위에 영향력 1위였던 KBS가 지금은 버려진 개뼈다귀 신세가 됐다. 어느 권력 앞에서도 당당하던 KBS 기자가 이제는 어디를 가도 주뼛거리며 자신이 없다. 공개된 취재현장에서 시민들에게 개망신을 당한다. 주위를 살핀다. 누가 욕을 하지는 않는가 살핀다. 철 든 자식들은 애비가 KBS 기자라는 것을 숨긴다고 한다.

왜 이렇게 됐을까. 정의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자로서 할 일을 다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뷰스앤뉴스>와 MBN을 보면서 KBS가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바탕은 더 없이 똑똑하고 자질이 우수한 기자들을 누가 저렇게 등신을 만들었는가. 얼마나 속으로 억울하랴. 열악한 속에서도 언론의 사명을 다 하는 기자들을 보면 존경스럽다.

주인을 만나지 못한 준마는 달리지 못한다. 위만 보고 눈동자를 굴리는 상사들 틈에서 주눅이 들어 그냥 하루하루 살겠다는 기자들을 보면 저들을 울게 만드는 인간들에 대한 증오가 끓어오른다.

어느 기자는 자기가 쓴 기사를 보지도 않고 듣지도 않는다고 한다. 도저히 볼 수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 인터넷 시대다. 비난을 하는 국민들의 목소리도 안 들을 수가 있다고 하자. 그러나 먼 후일 자식들이 성장해 자기 아버지가 쓴 기사를 보며 쥐구멍을 찾을 생각을 하면 마음이 어떤가.

KBS 입사 2년 만에 외국으로 보따리를 싼 조카의 마음이 이해된다.

김인규와 공정방송과 상관이 있는가. 그가 현역시절에 군사독재대통령을 따라 리포트 한 것을 들었다. 더 말하면 먹은 거 토한다. 김인규는 MB 특보를 지냈다. 국감에서 지적되는 것을 보면 사장실 치장이며 그랜저는 뭔지 정신이 없다. 이런 사장 아래서 KBS 기자들의 뼈대 있는 기사를 기대하는 것은 백일몽이라는 것을 안다.

간과 쓸개가 제대로 있는 기자들은 일할 자리에 없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비판하는 것은 양심은 언젠가 살아날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 지난해 69위로 전년도에 비해 22계단 순위가 추락했지만, 올해는 42위를 기록했다. 그림은 2009년 언론자유지수

‘국경 없는 기자회’ 한국의 언론위상은 42위로 매겼다. 꼴찌가 아닌 게 다행으로 여겨진다. 42위의 한국언론위상을 만드는 데 공헌한 조중동을 비롯해 KBS와 그 밖에 매체에 대해서 경멸을 보낸다.

기자들이 사실 보도를 하지 않으면 국민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귀가 멀고 눈이 멀고 벙어리가 된다. 이런 국민과 더불어 무슨 좋은 정치를 할 수 있을까. 국민들을 병신 만드는데 기자들이 공범이라는 욕을 그냥 넘겨 들을 수 있는가.

기자들이 정신만 차리면 세상이 달라진다. 너무 기자들 미워하지 말라는 충고를 듣는다. 이 글을 읽는 KBS 기자들의 가슴은 오죽이나 미어질까. 백주에 벌거벗긴 채 패대기 처지는 기분일 것이다. 모진 놈 곁에 살다가 벼락 맞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해한다. 그러면서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기자들이 말들을 못한다. 맞으면 자기만 손해라는 것이다. 가만있으면 중간이나 간다든가.

생기는 것도 없이 무슨 짓이냐고 충고한다. 그러나 나는 믿는다. 기자들 가슴속에 숨어 있는 양심과 이성을 믿는다. KBS 기자들이 언제나 마음대로 써먹을 수 있는 용병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믿는다.

얼마나 치열한 경쟁을 이기고 들어 온 KBS 기자인가. 더 이상 그들을 욕되게 하지 말아야 한다.

깨어날 것이다. 반드시 깨어날 것이다. 빌고 또 빈다.

 

2010년 10월 21일
이  기  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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