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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그 모든 진실을 밝혀야 합니다!”

“그 모든 진실을 밝혀야 합니다!”
천안함 사고, 누가 무엇을 왜 감추고 싶어하는가?

(유시민 후보 홈페이지 / 유시민 / 2010-04-02)


요 며칠 뉴스를 보기가 겁이 납니다. 차를 타고 가다 뉴스가 나오면 라디오를 끄기도 합니다. 전쟁이 난 것도 아닌데 50명 가까운 우리 군인들이 일주일 넘도록 물속에 갇혀 있고 우리는 그들의 생사조차 알지 못하는 이 현실이 잘 믿어지지 않습니다. 처음 하루 이틀은 선실이나 파도 속에서 누군가 사투를 벌이며 구조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뉴스 속보에 눈과 귀를 집중하기도 했습니다.

병사들이 갇힌 격실의 산소가 줄어들어 갔던 그 시간, 그들의 생환을 위해 기도하던 가족들의 희망도 그만큼씩 줄어들었습니다. 지켜보는 국민들의 마음속에서는 그만큼씩 아픔과 안타까움이 자라났습니다. 함께 마음 졸이고 애태우는 것 말고는 어떤 도움도 드릴 수 없어서 제 자신에게 화가 납니다. 후배들을 구조하려다 순직한 고 한주호 준위의 죽음을 국민들은 혈육을 잃은 것만큼 슬퍼합니다. 저도 그 슬픔을 함께 느낍니다. 실오라기만큼의 희망이라도 남아 있는 한 구조를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기적에 대한 기대를 끝까지 접지 말고 마음을 모아 우리 군의 구조 활동을 격려했으면 합니다.

‘천안함 사고’와 관련하여 우리는 낯선 말들을 배웁니다. 격실, 어뢰, 기뢰, 피로파괴, TOD 영상 같은 말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이런 전문용어가 아니라 사고의 진상입니다. 여러 사실들이 새로 드러날 때마다 해군과 국방부, 정부의 발표는 더 큰 의문을 불러일으킵니다. 천안함은 왜 사고해역에 갔는가?, 속초함은 왜 사고가 난 후 NLL쪽으로 가서 있지도 않은 ‘북한 잠수정’을 향해 함포를 발사했는가?, 정확한 사고시간은 언제였는가?, 천안함이 동강 난 원인은 무엇인가?, 국방부의 발표가 계속 달라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런 의문들입니다. 앞으로 관련된 사실들이 더 밝혀지고 군 당국이 봉쇄하고 있는 천안함 장병들의 입이 열리면 사고의 진상이 있는 그대로 밝혀질 것이라 믿습니다.

이 시점에서 제 가장 큰 의문은 “천안함 사고와 관련하여 청와대가 어떤 역할을 했느냐”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정전상태에 있는 분단국가입니다. 국군 통수권자는 대통령입니다. 천안함과 같은 대형 초계함이 침몰하는 사고가 나면 해군사령부를 거쳐 곧바로 청와대로 상황보고가 올라갑니다. 이명박 대통령과 관계장관, 청와대 참모들이 회의를 하는 지하벙커 상황실에는 실시간으로 상황을 접수하고 조치사항을 지시할 수 있는 정보 전달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습니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가 이 상황실을 24시간 365일 운영하면서 중대상황이나 예기치 못한 위기상황이 발생했을 때 곧바로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대책을 강구하여 지시를 하달할 수 있습니다. 참여정부 때 만들어서 이명박 당선인 인수위에 그대로 넘겨주었던 바로 그 디지털 시스템입니다. 국가위기 상황을 신속하게 파악하고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그 위기를 관리하는 데 필수적인 장치입니다. 이 시스템이 어떻게 가동되었는지, 저는 그것이 가장 궁금합니다.

천안함 사고는 당일 몇 시에 청와대 안보 상황실에 처음 보고되었을까? 최초의 보고내용은 어떤 것이었을까?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언제 어떤 내용이 처음 보고되었을까? 대통령은 언제 누구와 대책을 상의했으며 어떤 조처를 강구했을까? 대통령의 지시는 누구에게 전달되었으며 그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만약 제때 대통령이 보고받지 못했거나 잘못된 보고를 받았던 것은 아닐까? 초기대응을 잘해서 피해를 줄였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천안함 사고 관련 첫 발언은 혹시 허위보고를 받았기 때문에 나온 것은 아니었을까? 만약 허위보고를 했다면 그 주체는 해군이었을까 아니면 청와대 참모들이었을까? 저는 이런 의문을 가지고 뉴스를 봅니다. 아직 이 의문을 풀 단서는 뚜렷이 보이지 않습니다. 만약 대통령에게 제때 보고되지 않았거나, 허위사실이 보고되었거나, 제대로 보고를 받고서도 대통령이 그런 말을 했다면 이것은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의 국가위기 관리능력을 의심해 보아야 할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천안함 사고의 원인은 정확하게 밝혀야 하며, 저는 그 진실이 쉽게 밝혀질 것으로 믿습니다. 그러나 국군통수권자인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의 국가위기 관리능력에 관한 의문은 그리 쉽게 밝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저는 정부가 무엇인가를 감추기 위해 실종 군인 가족과 국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감추려는 것일까요? 천안함 사고의 원인을 감추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정부가 감추려는 것이 혹시 사고의 원인 그 자체가 아니라 사고가 난 이후 해군이 했던 ‘어떤 일’의 진상이 아닐까 의심할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해군이 천안함 침몰이 사고인 것을 알면서, 그 사고를 북의 도발로 몰고 가려고 했던 것이 아닌지 저는 의심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이것은 매우 위험한 조작 시도입니다. 속초함의 납득할 수 없는 북상과 목표 없는 함포 사격, 아무 근거도 없는 기뢰 또는 어뢰 공격설 유포, 생존 장병에 대한 유례없는 입막음, 불합리한 민간어선의 현장접근 통제 등 그런 ‘합리적 의심’을 가능하게 만드는 징후가 너무나 많습니다. 만약 해군이 이런 의도로 천안함 사고에 대처했다면, 다음 의문은 과연 누가 그런 의도를 가지고 사태를 끌어왔는가 하는 것입니다. 해군사령부, 국방부, 청와대가 모두 이런 의혹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런 일이 없었기를 바랍니다. 더는 ‘합리적 의심’이 일어날 근거가 없도록 모든 것이 명확하게 규명되기를 원합니다. 이렇게 하려면 국회에서 몇 가지 증거를 조사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천안함 사고 시간을 전후해 천안함과 해군사령부 사이에 오고 간 보고와 지시사항의 내용, 해군사령부와 국방부, 청와대 안보상황실로 이어지는 군 지휘라인을 따라 오고 갔던 보고와 지시의 내용을 모두 조사하면 그 진상이 밝혀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국회가 엄정한 국정조사를 실시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국정조사를 하기 전에 청와대 스스로 이 모든 의문을 해소할 수 있는 증거를 제시하면 더 좋을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 실종 병사들과 가족들에 대해 국가가 해야 할 최소한의 예의를 지킬 수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국가위기 관리능력에 문제가 드러났다면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고 위기관리 시스템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군과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해소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천안함 사고와 같은 비극이 재발해 귀한 우리의 청년들이 억울하게 목숨을 잃는 사태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미숙하고 비뚤어진 국정운영에 지친 국민의 분노와 불안을 덜어줄 수 있습니다.

오늘은 정치인으로서가 아니라 30년 전 군 복무를 했던 예비역 병장으로서, 그리고 10년 후에는 군에 가야 할 아들을 키우는 아버지의 입장에서 천안함 사고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외치고 싶습니다. “그 모든 진실을 남김없이 밝혀야 한다!”

 

2010년 4월 2일
예비역 병장 유시민

 

 

출처 : http://usimin.net/5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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