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북한의 기아를 생각한다 / 구인회 | |
유엔 식량특별조사관으로 활동했던 장 지글러에 따르면, 지구상에서 기아나 영양 결핍, 이와 관련된 질병으로 죽는 사람이 해마다 3600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특히 아이들의 희생이 커서, 10살 미만의 어린이는 5초에 한 명꼴로 죽어간다. 영양 결핍은 살아남는 어린이에게도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긴다. 5살 미만의 어린이 4000만명이 비타민A 결핍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데, 이 가운데 1300만명은 시력을 잃게 된다. 비타민B의 부족은 신경계를 마비시키는 각기병을 일으키고, 비타민C의 결핍은 괴혈병을 일으킨다. 철분 부족을 겪은 영유아는 뇌신경 세포에 치명적인 손상을 받아 평생 정신장애를 안고 살아가게 된다. 2006년 한 해 동안 임신부의 요오드 부족 때문에 치료 불가능한 뇌손상을 입은 채로 태어난 신생아가 2000만명이다.
기아에 처한 아이들에게 건강한 삶을 찾아주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점은 놀랍기까지 하다. 긴급구호 활동가 한비야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단돈 만원의 비용으로 죽어가던 아이를 살린 경험을 이렇게 말하였다. “딱 이주일이었다. 어느날 사이드의 목을 왼팔로 받치고 영양죽을 한 숟가락 떠 입에 넣으려고 할 때다. 글쎄 아이가 나를 보고 방긋, 웃는 게 아닌가. 아! 살아난 것이다. 그저 두 시간에 한 번씩 시간 맞추어 영양죽을 먹였을 뿐인데.” 기아의 희생자는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오지에 몰려 있지만, 우리와 먼 나라의 얘기만은 아니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절 북한에서는 100만명에서 300만명대에 이르는 아사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설가 황석영은 작품 <바리데기>에서 당시 북한의 살풍경을 이렇게 전한다. “가을이 되면서 두만강변은 어디라 할 것 없이 굶주린 사람들이었다. 식구들을 잃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중국에 나가 돈을 벌어 집안을 살리겠다고 몰려왔다. 밤이면 무리를 지어 개천 같은 강을 건너갔다. 경비원들도 병력이 반 나마 부족하고 굶주리기는 마찬가지여서 강을 오가는 이들이 쥐여주는 돈이나 물건에 대개는 모른척했다. 당일꾼이 찾아와 조심스럽게 전하는 이야기로는 온 공화국 천지에 굶어죽는 사람들로 사태가 날 지경이란다.” 북한 식량 문제는 2000년대에 들어서서 가라앉았는데, 여기에는 한국과 국제사회의 지원이 큰 몫을 하였다. 그런데 최근에 다시 사정이 악화되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는 2006년 북한의 식량부족분이 2300만 인구의 최저생계에 필요한 양의 15%가량 된다고 밝혔다. 다섯 달이나 되는 춘궁기에는 고통이 특히 심하여 주민 다수가 단백질·비타민 등의 영양 결핍에 시달린다고 한다. 15살 미만 아동 중 37%가 심각한 만성적 영양실조로 고통을 받았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이 아이들이 당장 겪는 고통도 끔찍스럽지만, 노동력을 잃은 채 자라나는 이들 세대가 민족의 장래를 짊어지고 갈 수 있을지도 걱정이다. 2005년 뉴욕 유엔회의에서는 2015년까지 기아 사망자 수를 절반 아래로 줄이겠다는 계획을 선언하였다. 그런데 글로벌 코리아를 내세우는 우리 정부는 세계식량기구의 거듭된 대북 식량지원 요청에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해 왔다. 그 와중에 두 가족, 11명의 북한 주민이 다시 남쪽으로 넘어왔다. 먹고살기 어려워 탈북했다는 얘기가 들려오니 북한 기아문제가 다시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이제라도 우리 정부가 나서서 한반도 기아제로 프로젝트를 선포해야 할 때는 아닐까? 우리의 인도주의 회복, 이것이야말로 남북 화해를 앞당기고 한민족의 미래를 열어가는 값진 투자가 될 수 있음을 정부는 되새겨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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