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학습의 시작, ‘조중동 마법’으로부터 깨어나는 것
- 조기숙 노무현시민학교장 “주저 없이 ‘언론강좌’ 개설했는데....”
조기숙/노무현재단 상임운영위원·노무현시민학교장
회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번 학기부터 <노무현 시민학교> 교장을 맡게 된 조기숙입니다. 노무현재단 회원 여러분께 인사드립니다.
그동안 <노무현 시민학교>는 5기에 걸쳐 정치, 경제, 역사, 문화, 사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시민강좌를 개설해왔습니다. 관심을 보내주시고 또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왜 조중동을 확실하게 손봐주지 못했느냐”
저는 시민학교장을 맡아 주저 없이 ‘언론강좌’를 첫 주제로 택했습니다. 언론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생각을 모르는 사람은 노무현에 대해 안다고 말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간 시민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는 “왜 조중동을 확실하게 손봐주지 못하고 홍보에 실패했느냐”는 것입니다. “그렇게 많은 업적을 해놓고도 국민에게 제대로 알리지 못한 건 참모들이 무능하기 때문 아니냐” 라고도 합니다. 또 어떤 분은 “언론에게 포용력을 발휘해서 좀 잘 지내지 어떻게 대통령이 언론하고 직접 싸워서 권위를 떨어뜨리느냐”고 말하기도 합니다.
언론에 대한 노 대통령의 생각을 아신다면 나올 수 없는 질문입니다. 노 대통령에게 있어서 언론은 민주주의 사상의 핵심입니다. 노 대통령은 언론이 정상화되지 않고는 민주주의가 불가능하다고 믿었습니다. 참여정부 시기 언론은 최대의 자유를 누렸지만 결코 정상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참여정부 임기 말, 국민들의 90%는 민주주의가 다 되었다고 믿었습니다.
다수의 국민이 조중동이 만들어놓은 ‘경제파탄’ 주장을 믿고 ‘경제’를 살릴 것이라 생각하여 이명박 후보에게 표를 던졌습니다. 그 결과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민생은 도탄에 빠졌으며 노 대통령은 우리 곁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많은 시민이 깨어났습니다.
저는 이제야말로 노 대통령을 애도하고 그 분의 뜻을 따르려는 사람이 제대로 된 학습을 할 시기라고 생각해 ‘언론강좌’를 개설했습니다. 스타급 강사에 연연하지 않고 노 대통령의 언론에 대한 생각을 가장 잘 알거나 현장에서 언론의 미래를 개척하는 분들로 강사진을 구성했습니다.
그동안 <노무현시민학교>를 가득 메워주신 시민들이 이번엔 참여가 저조합니다. 아주 저조합니다. 언론에 대해선 다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요, 아님 스타강사가 적어서일까요? 그 이유에 대해 혼자 생각해보았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달라진 평가, 왜일까?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 중 지지도가 30~35%를 맴돌아 실패한 정부라는 평을 들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경제를 망쳤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2007년 대선 패배의 가장 큰 원인도 국가경제에 대한 불만 때문이라는 연구가 나왔습니다. 설문 응답자의 32.5%가 5년 전에 비해 가정살림이 나빠졌다고 한 반면, 51.8%는 국가경제가 나빠졌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최근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의 경제성적을 비교한 통계를 많이 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통계로 볼 땐 참여정부가 결코 국가경제를 못했다고 말할 근거는 없습니다. 그러면 국가경제가 나빠졌다는 평가는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요? 조동문의 ‘경제파탄 프레임’이었습니다. 그 결과 노 대통령 임기 중에 경제를 잘 한다는 평가는 15%였지만 서거 후에는 58.6%로 높아졌습니다.
반드시 서거 때문에 노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 건 아닙니다. 2008년 8월 촛불이 타오르면서 국민들은 벌써 임기 중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49%가 노 대통령이 일을 잘했다고 응답했습니다. 서거 후에는 더 높아졌기에 가장 ‘훌륭한 대통령’, ‘우리시대 영웅’으로 선정될 수 있었겠지요. 놀라운 건 대통령의 지지도만이 아니라 지지기반의 변화입니다.
촛불집회 당시 대통령 지지층에 놀라운 변화가 관찰됩니다. 영남의 지역주의가 깨지고 계층적 지지가 형성된 겁니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입니다. 대단한 일입니다. 노 대통령은 “열심히 왔다고 생각했는데 뒤를 돌아보니 그대로더라. 마치 물을 가르고 온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생전에 지역주의를 깨뜨리고 이익에 기초한 계층정치를 만들어 놓았지만 그런 사실을 당신도 모른 채 가신 것입니다.
깨어난 시민들... 경제파탄 프레임의 허구
어떤 사람들이 노 대통령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지 살펴보았습니다. 고학력일수록, 고소득일수록, 수도권 유권자일수록 부정적이었습니다. 진보언론과 지식인은 양극화 때문에 서민들이 참여정부에 등을 돌렸다고 주장했지만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다수의 저소득층은 처음부터 노 대통령을 찍지 않고 한나라당에 투표했습니다. 그러나 서민중산층은 참여정부 임기가 끝나면서 노 대통령의 지지자로 새롭게 다수 편입되었습니다. 노 대통령을 찍었지만 임기 말에 노 대통령에게 등을 돌린 사람은 고학력자, 중상층이었습니다. 참여정부의 복지와 높아진 재산세, 종부세, 종이신문이 영향을 미친 것입니다.
그러나 노 대통령 서거 후에 수많은 시민이 깨어났습니다. 그 중에서도 수도권, 고학력, 30,40대가 ‘조중동 마법’에서 깨어나 민주당을 지지하면서 민주당이 처음으로 지지도 20%를 훌쩍 넘기게 되었습니다. 촛불 당시에도 꿈쩍 않던 한나라당의 지지도가 민주당 아래로 추락했습니다. 결국 경제파탄 프레임이 얼마나 허구였는지 많은 시민이 깨달았습니다.
지난 번 대선 이명박 후보의 승리원인을 제대로 분석해보니 정당이 문제였습니다. 한나라당은 제도화된 정당으로 국민 속에 자리 잡은 반면 열린우리당이 사라지고 야권정당은 여전히 이합집산에 분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야당이 이합집산하게 된 것도 언론의 ‘참여정부 실패 프레임’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겠지요.
지금 이명박 대통령의 실정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의원은 차기 대통령감 1위입니다. 참여정부는 못살겠다고 갈아치웠던 국민이 지금은 살 만하다고 생각해서 그렇습니까? 50%가 넘는 국민이 다음에도 한나라당이 집권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야권이 분열되어 아직도 국민에게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나라당의 지지도가 흔들리는 건 이대통령의 실정 때문이 아니라 한나라당 내분이 있을 때뿐입니다.
대통령이 살아온다고 해도 지켜드릴 수 없는 ‘언론환경’
그런데 아직도 많은 야권의 유력 주자들은 참여정부가 제대로 국가역할을 못했기 때문에 정권이 넘어갔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복지만 잘 한다고 내세우면 정권이 다시 올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참여정부가 다 잘 했다는 게 아닙니다. 노 대통령도 노동시장 유연화에 대해선 유작에서 뼈저린 반성을 했습니다. 하지만 국민은 대통령이나 정부에 대해 총체적으로 평가를 합니다. 완벽하진 않지만 그만하면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가 잘한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노 대통령의 명예는 회복되었지만 야권주자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곤 여전히 참여정부 실패 프레임에 갇혀 자신들의 분열을 정당화합니다. 진실은 사라지고 언론이 만들어 놓은 프레임에 결국은 정치인도 지식인도 빨려 들어갑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언론으로부터 외면당하기 때문이겠지요. 저는 이 현실이 너무도 두렵습니다. 서거 직전 대통령이 ‘혼자’라고 느꼈을 공포와 두려움이 그대로 전해옵니다.
노 대통령을 잃고 정말로 많은 시간을 땅을 치며 통곡하고 애간장이 끊어질 듯 울며 후회했습니다. 그 분이 다시 오신다면 이번에는 정말로 그 분을 지켜드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더 그 분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언론강좌’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을 보며 제가 틀렸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직도 많은 시민들이 조중동에 문제가 많다는 총론에는 공감하지만 언론에 대해 다 안다고 생각하기에 각론에 대해서는 더 알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실패한 역대 총리, 인준도 받지 못한 퇴물 총리를 내세우며 한나라당은 재보궐 선거를 준비합니다. 조중동은 여기에 ‘거물프레임’을 갖다 붙였습니다. 그러자 일부 진보언론과 민주당도 거물이 맞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지역민이 여당 거물을 원하는 건 지역개발 때문입니다. 야당 거물이 지역현안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2등이 1등 따라가면 망하는 게 지름길인데 민주당과 진보언론은 여전히 ‘조중동 마법’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노 대통령이 다시 집권한다 해도, 다시 살아오신다 해도 우리는 그 분을 지킬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지금 상태에서는 그 분을 또 그렇게 보낼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하며 깊은 절망에 빠져 있습니다.
노무현재단 회원여러분께 묻습니다. 제 생각이 틀린 걸까요? 제 질문에 대해 제발 현명한 답변을 주시기 바랍니다.
※ 대학생은 ‘자원봉사’와 ‘시민학교장 장학금’으로도 수강이 가능합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노무현시민학교> 운영을 주관하는 한국미래발전연구원(02-735-7760)으로 문의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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