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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정치] 우리는 무엇을 느꼈던 것일까

[정치] 우리는 무엇을 느꼈던 것일까


2010. 12. 28. 화요일

물뚝심송

 

 

우리는 무엇을 느꼈던 걸까. 이런 얘기를 했었어.

며칠 전에 딴지 필진 모임이 있었거든. 연말이 되어가면서 너무 술도 많이 먹고 해서 영 부담스러웠지만, 그래도 안 나갈 수 있나, 다들 얼굴도 좀 보고 그래야 되잖아.

하필 또 국민학교 동창생(우리는 국민학교를 나왔단 말이다.)들 망년회하고 겹쳐서 초저녁에 일어나야 하는 바람에, 더 일찍 갔었지. 갔더니, 소주가 아니라 충남 공주산 가야곡 왕주가 나오더라구. 삼겹살에는 관심도 없고 대구형한테 누군가 딴지스가 보내준(samdori형. 동네도 가까운데 친하게 지냅시다)거라면서 아예 말통에서 주전자로 따라서 돌리더군.

그거 마셔가며 이런 저런 얘기를 하던 중에 일어날 시간은 다가오고 해서 마침 산하형이 저쪽에서 술을 먹고 있길래, 그 옆으로 간거지. 인사라도 할겸 해서 말야.

 


근데 노무현 얘길 하고 있더라구.

그게 내가 가는 바람에 그 얘기를 꺼낸건지, 아니면 그 얘기를 하는 중에 내가 낀 건지는 잘 모르겠어.

내가 또 위장전향 노빠잖아. 원래부터 난 좀 날라리 노빠였다고. 노빠활동을 하기 시작한 것도 2003년이나 되어서야 했고, 그 전에도 뭐 지켜보고 문성근 연설 보고 울컥해서 돈질도 좀 하고 했긴 하지만, 실제 오프활동은 지각생이었지 뭐. 아마 딴지에 출몰하는 닉 중에서 가장 짬밥 깊은 노빠는 영웅본색형일건데, 노사모 아이디 알려주면 알만한 사람들 많을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솔직히 이라크 파병하고 FTA 추진과정은 도저히 동의를 할 수가 없더라구. 물론 왜 그랬는지도 대충 알아. 이해해 줄 수도 있어. 그러나 내가 글질좀 한다는 입장에서 내 스스로 논리적 일관성을 유지할려면 어쩔 수가 없었다구. 잘못한건 잘못한 거잖아.

그래서 난 노빠를 그만둔거야. 하지만 정치적 지지는 접었을지 몰라도 개인적으로 인간 노무현에 대한 애정은 멈출 수가 없는 거지. 아니 멈출 필요가 없지 뭐. 그렇게 멋진 사람을 살아 생전에 또 만날 수 있을까 몰라.

근데 그 자리에서 오간 얘기가 뭐냐면 말야.

그 끔찍했던 날, 그날 우리가 느낀게 뭐였을까... 하는 얘기였던 거야.

산하형(나이는 내가 더 많다. 학번도 빠르고. 험~)이 전에 자기 글에서도 썼었지만, 그랬다는 거야. 막상 당일날 소식을 듣고도 아무 생각이 없었다는 거지. 할 일 차분하게 다 하고, 사람들하고 얘기도 하고, 그러다가 볼일 보다가 여유가 되어서 그래도 가는 길에 절이라도 한번 해야지 싶어서, 시청앞 분향소에 줄을 서 있었다는 거잖아.

산하가 누구야. 골수 진보면서도 주사파 끔찍하게 싫어하는 골수중의 골수 PD잖아. 오죽 뼛속까지 PD면 직업까지 PD겠어. 참여정부 임기내내 무지 갈궜던 사람중의 하나잖아. 나도 기억난다고. 내가 노사모 하면서, 산하 글 읽고 무지 서운했었던 기억도 나고 그래.

근데 그런 산하가 그렇게 덤덤하게 줄을 서 있다가 막상 차례가 되어서 절을 하려고 엎드리는데, 그냥 저 깊은 곳에서 통곡이 터져 나오더라는 거야. 어헝헝~ 하고 다큰 남자가 울음을 터뜨려 버린거야.

 


무엇이 그 친구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난 또 어땠는 줄 알아? 나도 당일날은 멀쩡했다고.

올 여름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그 때는 살아계셨었지. 새벽에 거실에 나왔더니 어머니가 방에서 나오시면서 나보고, "노대통령이 돌아가셨단다." 라고 말씀을 하시길래, 잘 죽었네, 죽을 때가 지났지 뭐. 라고 했다니까. 난 당연히 노태우가 죽은 줄 알았거든.

그런데 어머니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시면서 그러시더라구.

"너 노무현 대통령 좋아하지 않았니?"

그 순간 나는 무슨 몰래카메라나 깜짝쇼 하는 줄 알았어. 아니면 어머니가 뭘 잘못들으신 걸로 생각했지. 아니더라구. 실제 상황이더라니까.

그래도 난 어안이 벙벙했지만 별 감흥이 없었어. 근데 막상 하루 지나고 나서 밤중에 거실에 혼자 앉아서 소주 몇병 사다가 술을 먹었던 기억이 나. 그리고는 그 뒤로 아침까지 기억이 없어. 그저 울음이 날 거 같아서 참으려고 연짱으로 술을 들이켰던 기억까지 뿐이지.

마눌님이 다음날 얘기해 주는데, 내가 소파에서 내려 바닥에 앉아서 그렇게 술을 먹으며 울더라는군. 그러다가 정신을 잃고 잠이 든거지 뭐.

또 있어.

필진모임 때마다 참석해서 좋은 술을 공급해주시던 의사선생님이 한 분 있는데(그 자리에서 첨 알았어. 학교 후배더라구.) 그 의사선생은 그 때 그랬다더군.

환자를 앞에 두고 멍하니 서 있는데, 환자가 물어 보더라는 거야. 선생님 괜찮으시냐고. 뭐 정신이 나간거지.

다른 동료 의사가 노무현 잘 죽었다는 식으로 하는 얘기를 듣고 살의를 느꼈다던가.

무엇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그 때 우리는 뭘 느낀걸까.

산하형은 이렇게 얘기하더라구. 절망이라는 거야.

노무현 같은 사람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열정을 담아 이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자리에까지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안된다면, 그런 사람의 힘과, 그 사람을 중심으로 모였던 사람들의 힘으로도 이 사회의 부조리가 고쳐지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으로 고칠 수 있겠는가 하는 절망 말야. 이젠 진짜 어떤 방법으로도 안 고쳐지는 거 아닌가 하는 절망을 느꼈다는 거야.

의사선생님은 그저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고 했어. 뭔지 알수 없는 충격, 습관처럼 오랜 시간을 이어온 일상을 그대로 이어가지도 못하게 만들 정도의 충격이라는 거지.

난 마눌님이 얘기해 주던데. 내가 바닥에 퍼질러 앉아 소주병을 들고 울면서, 잘못했다고 그렇게 반복을 하더래. 내가 잘못했어, 내가 잘못해서 이렇게 된거야. 내 잘못이야.

난 죄책감을 느꼈던 거야.

 


좀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조금만이라도 더 했어야 되는건데, 이 정도면 된 거라고 섣불리 힘을 빼지 말았어야 하는데, 이런 거야. 내가 살아온 인생에서 내가 사회생활하면서 저질렀던 모든 잘못들이 머릿 속을 스쳐 갔던 거 같아. 노무현의 힘, 그를 중심으로 모였던 사람들의 힘으로도 못 고치는 이 사회의 부조리, 그 부조리 안에 내가 저질렀던 죄도 쌓여 있는 거 같았던 거겠지.

이게 과연 노무현과 그의 지지자들만이 겪은 일일까?

내가 아는 어떤 교수님이 서거 직후에 나한테 전화를 했어. 그 분은 노빠 아냐. 오히려 나보고 자기랑 친한 한나라당 정치인 일을 좀 도와주면 안되겠냐고 제안까지 했던 사람이라고. 웃으면서 거절했긴 하지만 그 호의는 기억이 나.

그 분이 전화해서는 용건도 말 안하고 그저 소주 한잔 하자고 해서 가봤더니, 그 얘길 하시는 거야. 가족을 데리고 봉하마을에 한번 가야 겠다고. 그래서 왜 그러시냐고 그랬더니, 노무현이 옳았다는 것을 이제사 깨달았다는 거야. 그리고 그가 왜 그래야 했는지 왜 당신이 그걸 깨닫지 못하고 외면하고 있었는지 아주 후회가 된다고.

이런 변화를 겪은 사람들이 무척 많아. 오히려 난 거기서 어떤 희망을 본거지.

우리는 모두 잘못했어. 좀 더 잘할 수 있었는데 하질 못했어. 그리고 우리가 했어야 하는 일, 바로 뜯어 고쳤어야 하는 벽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강해. 절망적일 정도로 강해. 그리고 우리는 그 벽에 부딪혔고, 좌절했어. 그리고 충격을 받은거지.

그러나 세상은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야. 이제 다시 새로운 시작이거든.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을 하나 소개해줄께.

"근거 없는 낙관이 역사를 움직인다."

이제 올해도 저물어가고 새로운 한해가 시작되는 이 시점에 난 이 글이, 내가 딴지에게 써 보내줄수 있는 올해의 메시지가 되었으면 해.

나 포함해서,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 모두에게 서로를 위로할 수 있는 얘기가 되었으면 한다는 거지.

21세기 들어서 이미 십년이 지났어. 그 십년간 진짜 정신없이 달려왔다고. 이제 2011년 새해가 다가오고 있어. 그 동안 겪었던 좋은 일 궂은 일, 그 중에서 혼을 쏙 빼버릴 만한 슬픈일, 그리고 그 슬픈 일에 뒤이어 찾아온 끔찍한 세월들..

다 털어버리고 새롭게 시작해보자.

수십 수백년간 쌓여온 부조리들이 고작 몇년만에 해결되길 바라는 것도 욕심이야. 우리 세대가 못하면 다음 세대가 이어서 또 하는거지 뭐.

오미터가 넘는 거대한 청새치를 혼을 다한 사투끝에 사로잡고도 상어에게 다 뜯겨버린 노인이 집에 돌아와 사자의 꿈을 꾸고, 다시 일어나 고기잡으러 나가는 것 처럼. 그렇게 다시 해 나가는 거잖아.

난 우리 모두에게 다가오는 한해가 그런 시간이 되었으면 해.

모두들 즐거운 연말 보내고 말야. 술 너무 많이 먹지들 말고.

다들 새해 복 많이 쟁취하세요.

뱀발 :

전에 올렸던 노무현 추모앨범 있잖아.




이 동영상 만들었던 그 팀이 새로 만든다는 앨범말야.

그거 제작하는 과정에 딴지가 어떤 식으로라도 참여하게 될 수 있길 바랬는데, 잘 안된 거 같아.

뭐 여러가지 실무적인 문제들이 많거든. 그게 조율이 잘 안된거지 뭐. 그래도 제작은 지속되고 있으니, 관심있는 딴지스들은 귀찮더라도 이 카페에 가서 직접 도와줬으면 좋겠어.

카페주소 : http://cafe.daum.net/culture.people

그것 봐.. 세상에는 아직도 이런 일에 미친듯이 도전하고 있는 아직 지치지도 않고 쓰러지지도 않은 사람들이 많다고.

그렇게 해가는 거지 뭐.

정치불패방장 물뚝심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