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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언제까지 주고받으며 키울 것인가

언제까지 주고받으며 키울 것인가
17일 재판에서 또다시 드러난 검찰과 수구언론의 공생관계

(노무현재단 / 강기석 / 2010-03-18)


특정 정책을 추진하는 쪽이 이에 관한 정보를 슬쩍 흘리면, 언론이 마치 특종이나 한 것처럼 이를 대서특필하고, 그런 보도에 따른 여론의 향배를 살펴 정책추진에 참고하는 것은 정치학 혹은 언론홍보학 개론에 나올 정도의 가장 초보적인 언론이용술에 속한다. 이 경우 대부분의 기자들은 자신이 쓴 특종기사가, 자신이 평소에 잘 관리해온 인맥이나 스스로의 끊임없는 취재노력 또는 아이디어에서 비롯된 응분의 댓가라고 믿게 된다. 때로는 자신이 이용당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자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끝까지 이를 애써 부인하려 드는 것은, 이를테면 인지상정과 맞먹는 기자지상정(記者之常情)이라 이해할 수도 있겠다.

문제는 기자가, 혹은 특정언론사 전체가 속거나 이용당해서가 아니고 적극적인 의지를 갖고 정치권력과 정보를 주고 받으며 특정사안에 대한 부풀리기, 진실왜곡하기에 나선다는 것이다. 이런 행태는 지난 민주정부 아래에서도 일부 수구언론들을 중심으로 한나라당, 그리고 검찰, 국정원 등 곳곳에 박혀있는 수구세력들의 담합을 통해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에 대한 공격수단으로 동원됐었다. 이제 모든 권력과 정보를 독점한 이명박 정권 들어서는, 과거 유신시절이나 군사독재시절처럼 더욱 거침없이, 더욱 효과적으로 자행되고 있음을 우리는 온 몸으로 느끼고 있다. 여러가지 예를 들 것도 없다. 바로 노무현 대통령이 이 덫에 걸리지 않았던가! 그리고 이제, 우리는 한명숙 전 총리의 재판과정에서도, 노 대통령 때와 마찬가지로 검찰과 수구언론들이 주고 받으며 없는 사실을 있는 것처럼 만들고, 조금 있는 사실마저 교묘하게 뒤틀어 사안의 경중과 본질을 혼란에 빠뜨리면서 결국 한 총리의 도덕성에 먹칠을 하려는 저들의 변치않는 행태를 매일매일 목격하고 있다.

17일 한 총리에 대한 오후 공판에서다. 증인으로 나온 골프샵 여성 B전무를 신문하던 검사가 갑자기 13일자 동아일보 기사 하나를 들이댔다. 이종식 기자가 바로 이 B증인을 인터뷰한 단독기사였다.(나중 기사내용을 확인해보니 한 전총리가 매장에 온 게 맞나, 한 전총리가 골프채를 선물 받았나, 골프백에 한명숙이란 이름표를 붙였나, 골프채 세트 등을 한 총리 집으로 배달하지는 않았나 등등을 질문하고 그에 대한 B씨의 답변을 쓴 것이다) 검사가 증인에게 기사를 보았는가라고 묻자 증인은 기사를 보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그 동아일보 기자와 인터뷰한 사실도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증인은 계속해서, 기자가 찾아 온 적은 있으나 몇 가지를 물었을 뿐 자신이 인터뷰를 거부하자 명함을 놓고 간 사실이 있을 뿐이며, 그 후 자신의 인터뷰가 기사화되어 나왔다는 소리를 들었으나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해서 읽어 보지도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는 동아일보 기사가 나간 후 너무 많은 곳에서 전화가 와서 장사를 하지 못할 정도라고 짜증스럽게 덧붙였다. 머쓱해진 검사가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지만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당사자가 답변한 적이 없는 발언들이 버젓이 기사화되어 나올 수가 있는가. 그것도 단독 인터뷰기사로 말이다. 그렇다면 이 기사내용은 모두 이종식 기자의 작문이란 말인가.

이후 B증인에 대한 신문이 계속되면서 기사 내용은 B증인의 입도 아니고 이종식 기자의 작문도 아니며 모두 B증인에 대한 검찰조서에 나오는 내용과 일치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렇다면 결론은 다음 둘 중 하나다. 이종식 기자가 재주를 부려 조서를 훔쳐 보았던지, 아니면 검사들이 직접 보여 준 것이다! 그것도 아니면 이번에도 정체불명의 이른바 빨대가 개입한 것인가?

최소한 순수작문은 아니라는 것이 밝혀진 이종식 기자의 기사 중에 눈여겨 볼 대목이 한 군데 있다. 골프채를 받았는지의 여부는 공소시효(5년)가 지났기 때문에 기소내용에 들어가 있지도 않지만 검찰이 한 전 총리와 곽 전 사장의 친분관계를 뒷받침하는 정황증거로 보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재판과정은 문제가 되는 5만달러 수수여부에 더욱 집중되어야 하고 언론의 초점은 5만달러를 제공했다는 곽영욱의 진술이 계속 헷갈리고 있는데 맞추어 져야 하는 것이 옳다. 검찰은 돈을 받았다는 의자에 대한 증인 혹은 피의자 소환이 가능한지를 검토해야 하고 언론은 이런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한 검찰상황을 취재하고 이에 대한 여론의 동향을 전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왜 언론과 검찰은, 정황이 입증하고자 하는 사안의 본질이 이미 크게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여전히 골프채라는 주변 정황에 집착하면서 주고받기를 통해 사안부풀리기에 몰두하고 있는 것일까.

참여정부 시절, 수구언론들이 골프를 들먹임으로써 정부측 인사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던 사례들이 여러 번 있기는 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범죄요건 성립여부와 상관없이, 여전히 일반서민들에게는 귀족스포츠로 여겨지고 있는 골프와 한 총리를 결부시키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질 나쁜 경제사범 곽영욱에게서 그런 골프채까지 받아 챙겼을 수도 있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것만으로도 저들의 음모는 반 이상 성공이기 때문이라는 정답은 이제 너무 빤하다보니 재미가 없다. 오히려 폐정 후 한 방청객이 건넨 농담이 더 와 닿는다.

"기자나 검사나 골프를 쳐 보니 역시 재미있었던 모양이야. 벌 준다고 나서놓고 저렇게 죄도 안되는 골프채에 집착하고 있으니 말이야."


강기석 / 노무현재단 홈페이지 편집위원장
(전 경향신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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