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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3일 대한민국, 보수의 ‘저질 코미디’가 만개하다

23일 대한민국, 보수의 ‘저질 코미디’가 만개하다
(양정철닷컴 / 양정철 / 2011-01-25)


1.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코미디

사진 출처 : 뉴시스

이명박 대통령과 안상수 대표를 비롯한 한나라당 지도부가 23일 저녁, 삼청동 안가에서 회동을 했습니다. 당이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에 대해 사퇴를 요구하면서 당·청은 최악의 관계에 놓였었는데, 이날 안상수 대표와 김무성 원내대표는 대통령에게 사과를 했다고 합니다. 김무성 원내대표는 “(정동기 파동은) 잘못된 일입니다. 심기일전해서 잘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용서를 구한 걸로 전해집니다. 안상수 대표의 구체적인 사과 발언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장난합니까? 이게 뭐 하는 짓들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미 지적한 대로, 한나라당의 사퇴요구는 방법이 무책임하고 비겁한 행태였습니다. 그러나 방법이 잘못된 것이지 정동기 후보자의 사퇴과정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사과의 내용이 틀렸습니다. 그걸 왜 당이 대통령에게 사과할까요? 국민에게 한다면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그런 인사 난맥상에 대해 왜 대통령은 국민에게 사과 한마디 없이 당에 유감만 표명하는 것으로 봉합할까요.

당이 대통령에게 사과를 했어야 할 일이면 항명을 하지 말았어야 했고, 대통령이 당에 유감을 표명할 일이면 자진사퇴를 시키지 말았어야지요. 일 저질러서 나라를 혼란에 빠뜨리고 국민에겐 좌절감만 줘 놓고, 자신들끼리 마무리하는 걸로 끝이라니요.

대통령과 당 지도부가 국민은 안중에도 없이, 안가에서 모여 자기들끼리 북 치고 장구치고 다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안하무인입니다. 코미디가 따로 없습니다. 이에 대한 아무 비판도 없이 시시콜콜 전하는 언론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2. 박근혜 전 대표의 코미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23일, 한 불우아동 후원모임에 참석해 정치권의 복지 논쟁에 대해 모처럼 말문을 열었습니다. 거기서 “복지에는 돈이 필요하고 돈이 많을수록 더 많은 혜택을 줄 수 있는 것이지만, 나는 왜 모든 것을 돈으로만 보고 생각하는지 안타깝다”고 말했답니다.

그녀는 특히 “정말 중요한 것은 (돈보다는) 사회적 관심”이라면서 “따뜻한 관심을 갖는 게 먼저이고, 그다음에 말만 하는 게 아니라 상황과 능력에 맞게 작은 일이라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대안도 말씀하셨더군요. “자발적으로 나눔과 봉사의 문화를 만들고, 그것이 쌓여 함께 사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복지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이야말로 진정한 복지의 한 부분을 실천하고 있다.”

일국을 경영하시겠다고 하는 분의 인식이 이런 수준이면 걱정입니다. 정책은 캠페인이 아닙니다. 법과 제도와 시스템과 예산으로 책임 있게 하는 게 정책입니다. 박 전 대표가 말한 것은 정책이 아니라 민간영역의 ‘문화’이고 ‘전통’입니다. 그걸 정책과 헷갈리면 안 됩니다. 유럽이나 미국에서 차기 지도자가 이런 얘길 했다면, 웃음거리가 됐을 겁니다.

만일 박 전 대표가 이렇게 말했으면 어땠을까요? “국방을 왜 돈으로만 생각하는지 안타깝다. 국민들이 관심을 갖는 게 먼저이고, 민간인들이 상황과 능력에 맞게 작은 일이라도 실천하는 것이 국방에서 중요하다.” 난리가 났을 것입니다.

반대로, 이렇게 말했으면 어땠을까요? “4대강을 왜 돈으로만 생각하는지 안타깝다. 국민들이 환경과 치수에 관심을 갖는 게 먼저이고, 주민들이 상황과 능력에 맞게 작은 일이라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박수를 받을지 난리가 났을지 모르겠습니다.

미담처럼 소개한 언론보도 역시 같은 수준이니, 우리 아이들의 미래 복지가 걱정입니다.


3. 군과 언론의 코미디

23일은 ‘아덴만 데이’였습니다. 우리 군의 노고에 아낌없는 박수와 경의를 표합니다. 자랑스럽습니다.

문제는 정부와 언론의 오버입니다. 노루 잡은 몽둥이 3년 써먹는다더니, 얼마나 우려먹으려고 이리 호들갑을 떠는지 모르겠습니다. 작전성공과 성공적인 구출 사실을 알리고 이를 치하하는 일은 좋습니다.

그런데 드라마나 예능도 아닌데, 장병들을 동원해 재연화면까지 찍게 하고 구출작전의 모든 과정을 공개하면서 홍보도구화하는 건 심할 뿐 아니라 무모하기까지 합니다. 군사작전과정의 세세한 기밀을 이렇게까지 노출시키면 향후 해적의 보복 행위에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느 나라 군 지휘부나 언론도 특수부대의 작전 과정을 이렇게까지 세세히 공개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적당히 절제하길 바랍니다.


4. 테러범 김현희의 코미디

1987년 ‘KAL 858기’ 폭파 사건 범인 김현희 씨가 23일, 한 신문과 인터뷰를 했습니다. 읽다가 기절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녀의 말을 들어보시죠.

“천안함 연평도 사건이 났을 때 국민의 한 사람으로 울분을 토하기도 했고, (남한이) 보복을 못해 화가 났었다. 일부에서 자작극 주장이 나오는데 이런 종북(從北)주의자들과 맞서서 싸우는 게 내 운명이 아닌가 생각한다. 남한 사람 중에는 KAL기 사건을 진짜 모르는 사람도 있지만 알고도 부인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건 결국 통일을 방해하는 일이며 이런 내부의 적이 더 무섭다고 생각한다. 천안함 연평도 사건이 남한 국민의 안보의식을 고양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그녀는 (자신의 주장대로면) 테러범입니다. 무고한 생명 115명을 죽였습니다. 뭘 잘했다고 이 나라 국민을 가르치려 듭니까. 자신이 언제부터 반공투사고 애국자여서 종북주의자들과 싸우고, 대한민국 국민의 안보의식을 고양시키겠다는 것입니까.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실정법의 용서 여부를 떠나 평생 속죄하고 자숙하는 게 유족과 국민에 대한 도리입니다.

알 카에다의 항공기 폭파 테러범이 수백 명을 죽이고 나서 체포된 뒤 미국에서 용서를 받았다는 보도를 본 적이 없습니다. 관타나모 기지에 수감됐다 풀려난 (풀려날 리도 없지만) 1급 테러범 누가 미국 국민들의 안보의식을 훈계했다는 소식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 나라, 참 웃기는 나라입니다.

 

양정철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2&uid=2294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