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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님께서 봉하방앗간은 ‘누드’로 하자케서”

“대통령님께서 봉하방앗간은 ‘누드’로 하자케서”
봉하방앗간 탄생 비화…. 경남서 GAP 첫 인증 “봉하쌀 밥맛은 과학”

혹 유통을 하는 대기업에서 ‘봉하쌀 구매에 대한 문의가 있었느냐’란 물음에 <영농법인 봉하마을> 김정호 대표는 특유의 몸짓으로 고개를 흔들며 검지 손가락으로 엑스자를 그리며 답했다.

“그런 연락은 많았지만 봉하쌀을 어떻게 소비자를 현혹하는데 쓸 수도 있는 대기업의 ‘미끼상품’으로 제공하겠습니까. 이 쌀에는 대통령님의 유지와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의 땀이 담겨 있습니다.”

봉하쌀은 철저히 도-농 직거래방식이 원칙이란 설명이다. 그런데 대규모 유통망을 이용하지 않는 데는 보다 더 확실한 이유가 있다. 바로 봉하쌀 품질에 대한 강한 자부심이다.

봉하쌀은 올해 ‘농산물품질관리원’으로부터 경상남도에서 쌀 품종으로는 처음으로 GAP(농산물우수관리) 인증을 받았다. 그만큼 품질에 관한 한 확실한 공인을 받은 것이다.

김 대표는 “봉하쌀은 노무현 대통령님의 이름과 얼굴을 담고 있습니다. 대통령님의 정체성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정직과 신뢰죠. 전문기관으로부터 품질을 검증받은 게 큰 의미”라고 소회를 표현했다.

봉하쌀을 구입한 소비자라면 책상 앞에서도 바로 이 제도의 효력을 알 수 있다. www.gap.go.kr 사이트에 들어가 올해 출하된 봉하쌀 포장지 뒷부분의 GAP 인증번호를 치면 제품의 ‘족보’를 볼 수 있다. (사진 참조).


봉하쌀 밥맛은 과학이다?

언젠가 집을 방문한 한 지인에게 봉하쌀로 밥을 지어준 적이 있었다. 별다른 반찬이 없는 저녁이었지만, “진수성찬 못지않게 맛나게 먹었다”는 고마움을 전해 들었다. 비결은 밥맛. “밥맛이 참 좋다”는 소리를 몇 번이나 들었다. 이른바 ‘블라인딩 테스트’에 통과한 것이다. 무엇이 봉하쌀을 맛있게 하는 걸까?

그 이유로 <영농법인 봉하마을> 이성호 이사는 우선 ‘완전미’를 꼽는다.

“쌀은 달걀하고 비슷합니다. 달걀을 삶을 때 터져 있으면 내용물이 흘러나와 망치잖아요. 쌀도 꼭지 부분이 터져 있거나 표면에 금이 가 있다면 쌀의 영양분과 즙들이 흘러나와 밥의 질감이나 맛이 많이 떨어집니다. 모양이 완전한 쌀로 밥을 해야 씹히는 맛도 쫄깃쫄깃하죠. 일반미는 보통 완전미 비율이 92~93% 정도지만 봉하쌀은 최소 97%에 이릅니다. 바로 봉하쌀이 맛있는 이유죠.”

그는 이 밖에도 쌀의 성분, 그중에서도 단백질과 수분함량, 특히 아밀로스 함량이 밥맛(식감)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말한다.

“한국식품연구원에 따르면 단백질의 적정 함유량은 6.5%입니다. 그 기준을 넘으면 밥이 딱딱해지고 씹는 맛이 떨어져요. 또 질감(아밀로스)의 기준 강도(치)는 18% 수준입니다. 적정 수분량은 16%, 그런데 정부가 수매할 때는 13~15% 기준을 적용합니다. 작은 수치인 것 같지만 3~4개월 지난 후 식미가 떨어집니다.”

이때 옆에 있던 김 대표가 중요한 한마디를 거들었다. “다른 쌀로 밥을 할 때보다 물을 조금 적게 붓는 게 좋습니다.”


대통령님이 제안한 ‘누드’ 방앗간

봉하마을에서 대통령님 묘역으로 따라가는 길 오른쪽에 커다란 곡물창고처럼 보이는 건물이 있다. 봉하쌀을 건조하고 가공하는 RPC(미곡종합처리장, Rice Process Complex)다. 그런데 봉하 사람들은 RPC란 단어보다 정감 있는 방앗간이란 말을 즐겨 쓴다.

봉하방앗간은 대통령님께서 첫발을 내디뎠다. 이 이사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한다.

“대통령님은 귀향하시면서 친환경쌀에 대해 많은 관심을 기울이셨어요. 장흥쌀, 오대쌀 등 10여 종류의 쌀을 두고 식미나 밥의 향을 연구하셨습니다. 그 친환경 농법을 연구하시며 첫 번째 플랜으로 나온 게 바로 ‘봉하방앗간’입니다.”

이어 그는 방앗간을 짓게 된 가장 직접적인 이유에 대해 언급했다.

“친환경쌀의 신뢰에 대한 문제가 컸습니다. 근처 여러 곳의 RPC에 가서 문의를 했는데, 친환경쌀을 일반적으로 농약을 치는 관행농법의 쌀과 별도로 분리해서 도정해줄 수 없다고 하더군요. 혹시라도 다른 쌀과 섞이면 신뢰에 큰 타격을 입잖아요. 친환경 농법을 통한 생산도 중요하지만 소비자들이 신뢰할 수 있는 가공 공장과 저온보관을 통한 쌀의 품질을 보증할 수 있는 별도의 시설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신 거죠.”

이 이사는 봉하방앗간이 다른 RPC와 구별되는 특징 중의 하나로 ‘누드방앗간’이란 점을 강조한다.

“대통령님은 RPC 건설 초기 단계부터 ‘누드’ 방앗간을 구현하시고자 했습니다. 방문객들이 직접 작업공정을 다 들여다보고, 체험할 수 있는 가공시설을 만들려고 하셨죠. 아이들과 어른들이 손잡고 교육할 수 있는 체험교육장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원하셨습니다.”

“한국에 RPC가 건립된 지 20년이 넘었고, 300여 곳 이상의 RPC가 있지만 학습과 체험의 공간으로 발전된 RPC는 없습니다. 비용 등의 문제로 대통령님께서 제안하신 100% ‘누드’까지는 못 갔지만, 내부 유리벽을 통해 다 볼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봉하방앗간 내부 벽은 대부분 유리로 되어 있다. 방문객들은 방앗간 2층의 학습장의 유리벽을 통해 벼가 쌀로 도정되는 모든 과정을 직접 볼 수 있다.


대통령님의 ‘약속’

봉하쌀은 비싸다?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는 사안이다. 사실 가격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수매가다. 영농법인 봉하마을은 친환경 봉하쌀을 다른 일반미에 비해 30%가량 높게 수매한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대통령님이 귀향하신 뒤 친환경 농법을 도입하고자 했을 때 봉하 농민들의 반응은 썩 호의적이지 않았다. 품은 많이 드는데, 수익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대통령께서는 직접 농민들을 찾아가 쌀수입 개방에 대비하고, 농촌이 지금보다 더 잘 살려면 반드시 친환경 농사로 가야 한다고 설득했다. 그러면 수매가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 농민은 “농약 한 번 치면 끝날 제초작업도 오리농법으로 하니깐 오리들을 아침에 출근시키고 저녁에 퇴근시켜야 됩니데이. 밥도 따로 챙겨줘야 하고…”라며 친환경 농사의 어려움을 털어놨다.

영농법인 봉하마을은 친환경 농업이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수매가를 다소 높게 책정하고 있다. 김정호 대표는 “한마디로 고품질 쌀, 안전한 쌀을 위해 원가가 많이 든다”며 “그러나 분명히 그만한 가치가 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대기업 상품들은 생산지가 각기 다른 곳에서 가져와 자기 브랜드만 붙여서 판매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봉하쌀은 저희들이 직접 다 관리합니다. 또, 가공과정에서 완전미(96% 이상)를 실현하기 때문에 도정수율이 다른 RPC보다 낮아 상대적으로 쌀의 생산량이 적습니다. 더구나 소량 단위로 판매하다 보니까 포장재 비용도 상대적으로 많이 들어가요. 그리고 주문이 올 때마다 바로 도정해서 보냅니다. 도정된 쌀은 한 달 이상 두면 맛이 떨어지거든요.”

김정호 대표는 밝은 표정으로 각오를 밝혔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원가절감도 이뤄져 1kg당 300원 정도 가격을 낮추었습니다. 앞으로도 회원 여러분께 품질과 맛, 안전과 영양, 가격과 포장 등 모든 면에서 만족하고 믿을 수 있는 친환경 봉하쌀을 제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완전미’를 향한 봉하방앗간의 도전

봉하방앗간은 올해 농산물품질관리원 같은 전문기관에서 보유하고 있는 첨단기기인 ‘품위분석기’와 ’성분분석기’를 도입했다. 이를 통해 벼 수매 때부터 원료곡(나락)에 대한 등급(품질)을 정밀하게 검사한다. 손대중으로 등급을 매기는 재래식 방법과 큰 차이가 난다.

‘품위분석기’로 쌀의 모양을 실시간 체크해 완전미와 병든 쌀, 가공 중 부서진 쌀 등을 사진으로 찍어 직접 볼 수 있다. 또 ‘성분분석기’로 쌀의 질감과 단백질 함유량을 판독한다. 이 과정을 통해 검증된 고품질의 나락들만 누드화된 공정을 돌며 깨끗하고 위생적으로 도정되어 각 가정에 배달된다. ‘완전미’를 향한 봉하방앗간의 도전은 이렇게 실현되었다.


봉하방앗간의 이모저모

○봉하방앗간은 24시

봉하마을이 추수에 들어가면 한 달간은 말 그대로 ‘봉하방앗간 24시’라고 할 정도다. 밤새 쉴 틈 없을 정도로 나락을 수매하고 건조하는 작업으로 종일 바쁘다. 자원봉사자들의 발길도 잦아진다. 몇몇 자원봉사자들은 상근자에 맞먹는 실력을 지닐 정도가 됐다.

○봉하쌀에 멸치액젓이 들어간다?

한 자원봉사자에게 지난해 제일 힘들었던 과정을 묻자 “비료로 쓸 멸치액젓을 제조하는 과정”을 꼽았다. 멸치액젓을 비료로 쓴다? 김정호 대표가 “액젓이 아닌 생선 아미노산”이라고 설명했다. “식물도 아미노산이 필수에요. 유기농 흑설탕으로 단백질과 DHA(불포화지방산)가 풍부한 등푸른생선을 발효해 식물에 공급합니다.”

○미강(쌀겨), 미용팩이나 이유식으로 인기

주말에 봉하방앗간을 직접 찾아 쌀을 구매하는 분들도 적지 않다. 현장까지 찾아오는 주부들 중에는 미강(쌀겨)을 찾는 분들이 있다. 피부미용을 위한 팩으로 쓰거나 아기들의 이유식 재료로 쓰기 위해서다. 믿음이 가는 ‘무농약 친환경’ 생산물이기 때문이라는 게 그분들이 찾는 이유라고.

○현미와 백미의 판매 비율?

거의 6대4 비율로 주문한다고. 지지난해 5대5 비율에서 현미를 찾는 분들이 점점 늘고 있다. 참살이 바람이 우리 회원들한테도 불고 있는 듯하다.

○목장과 친환경 연대?

친환경 유기농 농사를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을 꼽자면 역시 유기질 퇴비다. 영농법인 봉하마을에서는 내년부터 주변 목장(축산농가)의 소들에게 봉하에서 나오는 유기농 사료(짚과 쌀겨)를 먹이고, 그 축분(소똥)을 발효시켜 유기질 퇴비로 만든다. 그리고 그 퇴비를 논의 땅심을 높이는 데 다시 쓰는 이른바 ‘선순환 시스템’을 정착시킬 계획이다. 봉하에서 친환경 소고기를 맛볼 수 있는 날도 오지 않을까.

 

2010년 11월 30일
노무현재단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2&uid=217290